1835년 1월 8일, 7대 미국 대통령 앤드류 잭슨은 미국의 국가 부채를 전액 청산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합니다. ‘대출이든 채권이든 빚을 다 갚아’ 미국은 채무에서 벗어났습니다.1월 8일은 잭슨이 전쟁영웅으로 부상한 뉴올리언스 전투 승전 20주년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국가 부채가 없는 경험을 했고,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를 촉발하기도 했습니다.
국가 부채 청산은 잭슨 개인의 문제이자, 오래된 정치적 목표였습니다. 혁명 이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국가의 부채에 대해 논쟁을 벌였습니다. 독립 후 연방 정부는 이전 식민지 통합의 일환으로 개별 주의 전쟁 부채를 떠맡는 데 동의했습니다. 또한 강력한 중앙 정부를 선호하는 연방주의자 들은 국립 은행을 설립하고, 부채가 새로운 국가의 경제를 부양하는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반대자들, 특히 토머스 제퍼슨은 이러한 정책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미국인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부채를 국가 수치의 원천으로 보았습니다. 제퍼슨과 마찬가지로 포퓰리스트인 잭슨은 젊은 시절에 토지거래에서 사기를 당한 경험때문에 부채에 대한 개인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32년 재선을 위해 캠페인을 벌이던 잭슨은 국립 은행의 재허가를 거부하고 부채를 “도덕적 결함”과 “흑마술”이라고 불렀습다. 잭슨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국가부채를 유발하는 철도와 운하 등의 건설이 중단되었습니다. 잭슨은 서부에 있는 막대한 양의 정부 토지를 매각하여 부채를 갚았고, 1835년에 부채를 완전히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기간은 2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건국 이래 처음인 ‘채무 제로(debt free)’ 를 발표한 1월 8일은 잭슨이 전쟁영웅으로 떠오른 뉴올리언스 전투 승전 2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전쟁영웅 잭슨의 승리는 안타깝게도 경제 파탄의 씨앗을 품고 있었습니다. 연방 토지 매각은 부동산 버블로 이어졌고, 국립 은행의 패쇄로 지역은행들의 무분별한 지출과 차입으로 이어졌습니다. 세계경제가 침체국면으로 들어가면서, 잭슨의 과격한 정책이 더해져 1837년 공황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은 그 이후로 계속 빚을 지고 있습니다. 부채는 남북 전쟁 중에 급증했지만 20세기 초에 거의 갚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다시 부풀어 올랐습니다. 수많은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부채를 비난하고 심지어 그것을 없애겠다고 약속했으며,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은 자주 잭슨을 반향했습니다. 그렇지만, 알랙산더 해밀턴은 말했습니다. ‘ 국가의 부채는 과도하지만 않다면, 국가의 축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