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텔러] 이승렬

근대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

저자 이승렬은 한국 근대사를 다시 쓰고 있다. 한국 사회가 걸어온 근대화 과정에 관한 통설을 뒤집어 놓았다. 이 책은 식민주의와 민족주의라는 ‘풍경’을 넘어, 자유주의와 의회주의라는 ‘눈’을 통해 한국 근대사를 재조명한다. 그의 남다른 역사해석으로 교과서의 역사서술이 다시 쓰여질 수도 있다.

한국 근대사는 식민지, 분단, 전쟁이라는 난관을 넘어왔고, 한국 사람의 자존감은 무너져갔다. ‘조선의 정체성’은 과장되었고, 성공한 ‘일본의 근대화’와 비교되었다. 자본주의와 근대화는 오로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서만 가능했다고 쇄뇌되었다.

혹독한 식민의 경험때문에 항일무장투쟁을 신성시하는 민족주의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했기에 외세와 친일파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 스스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만들어온 한국 사람은 이제 뭔가 다른 역사서술이필요했다. ‘근대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가 반가운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주류로 ‘타협적인 온건한 민족주의’세력에 주목한다. 그들이 타협과 통합을 통해 3·1운동을 주도했고, 분단국가 대한민국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고 해석한다. 비타협적 급진주의적 민족주의가 오히려 뜻과 다른 결과를 가져왔고, 온건주의가 사회의 진보를 이끌었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근대사의 숨겨진 사실이라고…

개항이후 관료제로부터 자유로운 호남지역의 진취적 지주는 온건한 민족주의를 주장했다. 조선왕조의 엘리트인 기호지역의 관료적 지주들이 식민지 지배체제 내로 편입될 때, 호남지역 지주들이 실질적으로 한국의 근대화를 담당하는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독립적인 부르주아지로 성장했다.

타협적 민족주의 세력은 국제질서의 변동에 유의하면서 독립을 준비했고, 현실은 그들이 희망대로 진행되었다. 그들은 전체주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의회주의와 공화주의를 견지했다.

이러 시민적 민족주의는 제헌헌법 그리고 농지개혁에서 잠재력을 발휘했다. 온건한 민족주의 정당인 한민당은 모스크바삼상회의 합의를 기반으로 통일국가를 수립하려고 했다. 또한 이승만정권이 독재에 대항하는 반독재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반면 신탁통치를 거부하고 미소공위를 실질적으로 파탄시키면서 당장의 독립을 외친 급진적 민족주의는 분열과 분단의 길, 나아가 전쟁의 길을 열었다.

[저자소개]

이승렬은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시민의 역사교육을 위한 강연 및 교재 편찬을 기획했다. 주요 연구 주제는 한말과 일제시기 부르주아지 형성과 관련된 사회경제와 식민정책이었다. 저서로는 근대 이행의 상인적 기원을 검토한 <제국과 상인>(2007)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강제병합 100년과 성장의 공공성>(2010) 외 다수가 있다.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대림대학교 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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