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몰레이슨(1926년~2008년)은 뇌전증 치료를 위해 측두엽 절제술을 받은 후, 새로운 기억 형성을 못하게 된 환자이다. 신분을 감추기 위해 HM이라는 약자로만 불려졌던 그는 50여년에 걸쳐 기억 형성에 관한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사후에도 뇌 조직과 기능에 대한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헨리는 뇌전증 환자로, 발작 증상은 9살 때 자전거 사고로 머리에 충격을 받은 후 시작되었다.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16살 때는 하루에 10차례 이상 양쪽 뇌 모두 심한 대발작을 겪게 되었다. 당시 쓰였던 가장 강한 약인 항경련제가 듣지 않자 그는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밖에 없었다.
헨리는 27세에 최후의 수단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집도의 윌리암 스코빌은 이미 정신병 환자 뇌의 일부를 제거해본 경험이 많은 의사였다. 수술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측두엽의 일부를 제거하면 헨리의 끔직한 발작이 멈출 것이라 희망하였다. 그러나 수술 이후 발작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사라지게 되었다.
심리학자 브렌다 밀너는 포괄적인 신경심리학 검사를 했다. 헨리는 몇 초에 걸친 단기 기억에는 문제가 없었고, 수술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기억도 잘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헨리는 새로운 정보와 경험을 기억의 일부로 저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밀너 박사가 헨리를 매일 만날 때 마다 헨리는 처음 만나는 것처럼 인사하였다. 식사를 마친지 30분 후에 다시 권하면 그는 처음인 것처럼 식사를 하였다. 결국 헨리가 그때까지 기록된 것 중 가장 완결한 형태의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헨리는 소수의 연구자들에게만 위치가 알려진 채, 수십 년 동안 코네티커트 주의 빅포드 건강관리센터에서 살았다. 브렌다 밀너 박사의 제자인 수잔 콜킨에 의하면 헨리는 상냥한 사람이었고 늘 협조적이었다고 한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으나, 본인에 대해 연구자들이 알아낸 것이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에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2008년 사망 후 헨리의 뇌를 보존하는 계획에 따라 그의 사체는 샌디에고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의 뇌 관측 연구소로 옮겨졌고, 뇌는 적출되어 스캔 된 후 2401개의 종잇장처럼 얇은 조각으로 절편 되었다. 53시간에 걸쳐 힘들게 이루어진 절편과정은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전달되어 40만 명이 보았다. 이로부터 만들어 진 자료들은 개별 뉴런 차원까지 보여주는 자세한 디지털 지도를 만드는데 활용되었고 전 세계의 연구자에게 2014년 공개되었다.
같은 해 샌디에고 뇌 관측 연구소의 아네시의 팀은 처음으로 헨리의 뇌 내 손상을 3차원적으로 재현해 냈다. 측두엽 내 해마 조직의 앞부분은 흡입 과정을 통해 양쪽 다 제거 되었으나 뒷부분은 온전했었다. 또한 대뇌피질과 피질하부 뇌 조직에서부터 해마로 연결되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후각피질이 거의 전부 사라졌다는 것을 밝혀졌다. 헨리의 편도체가 수술용 메스로 완전히 제거 된 것도 확인하였다.
헨리의 수술을 이루어졌던 시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기억은 대뇌피질 전체에 분산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헨리의 뇌에 관한 연구는 측두엽 특히 해마와 편도체가 기억 형성과 저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생전에 그리고 사후에 헨리는 12,000건의 논문에서 거론되었고, 100건 이상의 심리학과 신경과학 연구과제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기억 형성에 대해 많은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 주었다.
헨리는 까다로운 기술인 경영묘사를 배울 수 있었다. 경영묘사는 특정 모양을 거울에 비친 자기 손을 보며 그리는 어색한 작업이다. 물론 기억은 전혀 남지는 않았다. 헨리 몰레이슨의 기술이 향상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절차기억체계, 예를 들면 우리가 자전거를 탈 때 동원하는 유형의 기억은 온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자기 집의 설계를 자세히 그림으로 재현할 수 있었다.
연구자들은 헨리가 또한 통증에 대한 내성이 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헨리의 통증 내성은 편도체가 없어진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편도체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기억하는 역할을 한다. 통증 지각은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이 많은 부분 기여하는 심리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역시 헨리로부터 알게 된 것이다.
그림. 측두엽 내 해마(하늘색)의 위치 (출처: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Hippocampus#/media/File:Gray739-emphasizing-hippocampus.png) By Henry Vandyke Carter – Henry Gray (1918) Anatomy of the Human Body (See “Book” section below)Bartleby.com: Gray’s Anatomy, Plate 739,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907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