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본부에 전시된 사이러스 실린더(Cyrus Cylinder)를 아시나요? 실리더는 발견된 고대 유물 중 가장 유명한 아이콘 중의 하나입니다.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진 실린더는 일반적으로 다원주의와 관용을 일깨운 “최초의 인권 선언”으로 간주되며, 유엔본부에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879년 바빌론에서 발굴된 원기둥은 BC 539년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이 바빌론을 함락시킨 후, 승리의 역사를 바빌론의 설형 문자로 기록한 것입니다. 페르시아 통치의 시작을 기념하고, 키루스가 어떻게 신전을 복원하고, 추방된 민족을 다시 귀국하게 했는지를 기록했습니다.
대영제국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소위 ‘키로스의 점토판’은 피정복민의 학살을 금지하는 등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을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왕은 바빌론으로 무혈입성하면서 ‘평화를 원하기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노예제도를 금하노라’ 라고 선포했습니다. 이 내용이 당시의 문자로 새겨져 있으며 1879년 이라크 바빌론 폐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키루스 대왕은 아키메네스조의 왕이 된 후, 주변국을 차례로 정복하여 페르시아를 세계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유능한 전술가였을 뿐만 아니라, 고결한 성품의 지배자였다고 알려졌습니다. 관대하며 자비심이 많아, 정복한 영토를 하나의 종교와 이념으로 가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국교는 조로아스터교였으나 각 민족의 종교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피지배민족들에게 관용 정책을 베풀고, 토착세력이 지역 후계자가 되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키로스 대왕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키루스 대왕이 바빌로니아를 공략하여 유다 왕국을 점령했을 때, 바빌론에 포로가 되어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켰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구약성서 ‘이사야서’에는 키루스를 고레스 왕으로 표기하고 목자이며 야훼께서 기름 부은 자로 찬양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키루스 대왕은 사망 후에도 페르시아의 적이었던 그리스인들 까지 그의 업적을 인정합니다. 키루스 대왕이 죽은 지 150여 년이 지난 후, 그리스 작가 크세노폰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는 신하들을 존경하고 마치 그들이 자신의 자녀인 것처럼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키루스를 아버지처럼 존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