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 역사를 소환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2월, 동독 드레스덴에 파견되있던 젊은 KGB 장교 푸틴은 성난 군중이 곳곳을 습격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동독 비밀 경찰의 사무실 뿐만 아니라 내부 성역인 KGB까지 진입하려고 했다. 푸틴은 민감한 정보를 지키기 위해 모스크바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모스크바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는 밖에 나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총을 쏘겠다고 소리쳤다. 총도 쏠 사람도 마땅치 않았는데… 그의 허세에 군중은 사라졌고, KGB의 파일은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그리고 1991년, 소비에트연방은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푸틴은 가장 한심하고 굴욕적인 방식으로 무너지는 조국을 지켜보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더 이상 그 나라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일어나길 원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1990년대 빠르게 승진하면서 푸틴은 영향력 있는 인물로 부상했다. 1991년 푸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 되었고. 1996년에는 옐친 대통령의 크렘린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는 러시아가 얼마나 약해졌는지 권력의 핵심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1998년,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세르비아를 공습’을 옐친에게 통보했다. 옐친의 의견은 들을 필요조차 없었다.

푸틴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러시아가 세계 강대국 3위로 강등될 수 있는 실질적인 위험에 직면했다”고 경고하고, “일류국가”로 남기 위해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 푸틴은 역사에 눈을 돌렸다. 

가까운 과거는 모순되고 고통스럽고 피투성이였지만, 푸틴은 러시아 국민을 향해 “자신들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위대한 애국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새로운 러시아를 위한 일종의 건국 신화가 되었다.  

푸틴은 자신을 새 국가와 동의어로 만들었다. 나아가 국가 내러티브와 개인 이미지를 연계해 히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2016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 바로 옆에 키에프 공국의 영웅 블라디미르 대공의 동상이 세워졌다. 푸틴 대통령은 제막식에서 “블라디미르 대공이 받아들인 기독교는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국민의 공통된 정신적 원천”이라고 했다.

마침 그의 이름은 ‘블라디미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