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바오로 2세, 카톨릭의 현대화

1978년 교황에 임명된 요한 바오르 2세(1920~2005)는 최초의 슬라브계 교황입니다. 455년 동안 교황은 언제나 이탈리아 출신인 것을 감안하면, 독특한 배경을 가진 그가 교황에 올라다는 것 자체가 어떤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배출된 266명의 교황 중, 가장 인기있는 교황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의 장례식에 200만 명의 사람들이 바티칸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큰 장례식 중 하나라고 합니다. 세상을 떠난 지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교황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 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그의 시대적 역할 때문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20년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크라쿠프’ 소재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극단에서 공연하는 평범한 젊은이였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 나치가 대학을 폐쇄해, 그는 채석장과 화학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합니다. 1941년 그는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습니다. 나치 전쟁의 참혹함,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종교탄압, 위성국가 폴란드의 서러움 모두를 그는 겪어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신학을 공부해, 1946년에 사제가 되고, 1958년에 주교가 되고, 1967년에는 추기경이 됩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그의 인생에 아마 가장 중요한 모멘텀은 1962년에 2차바티칸 공의회(바티칸 II)에 폴란드 대표로 참석한 것입니다.

당시 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바티칸 공의회를 네차례 소집합니다. 바티칸 II의 모토는 ‘현대화’ 또는 ‘업데이트’의 의미를 지닌 ‘아조르나멘토’입니다. 바티칸 II는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어, 카톨릭 교회도 변모할 것라는 선언입니다. 이런 개혁 정신에 따라 3년간 진행된 공의회는 열띤 토론을 거쳐, 혁신적인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여기 지금'(here and now)에 초점을 맞추고, 오늘 이 세상이 변화하는 물결에 발맞추어, 복음도 변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라틴어만을 사용했던 전통을 버리고 자국어를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서로 싸우고 분열된 교회를 ‘이단’이 아닌 ‘형제’라 생각합니다. 평신도도 교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요한 바로르 2세는 이미 사제시절, 현재 교회의 문제점과 변화를 주장하는 일련의 논설을 발표했습니다. 그 덕분에 성직자로서 그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그의 메세지는 분명했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전통을 단지 보수하는 수구세력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변화하는 개혁세력이다. 카톨릭 교회의 현대화를 위해, 그는 이미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지런했고, 게다가 무대체질입니다. 그는 전세계 129개국 방문한 ‘날아다니는 성좌’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명사와 동사로 이뤄진 쉬운 메세지로 대중을 휘어잡았습니다.대학 때 연극을 했던 그는 무대 체질이었습니다. 한국을 방문할 때도 비행기에서 내려 땅바닥에 입맞춤 하는 등 극적인 효과를 연출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카톨릭교회가 저지른 죄를 참회하고 용서를 청합니다.‘선교’를 빌미로 묵인한 곳곳의 원주민 학살, 오래전 저지른 십자군 전쟁과 종교전쟁, 이단재판과 마녀사냥, 갈릴레오 사건과 금서목록 같은 죄과들도 고백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끌어안고 ‘죄의 고백과 용서의 청원’이라는 특별예식을 거행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슬람교도들과의 만남을 시도했을 뿐 아니라 이들을 ‘형제’로 불렀습니다. 1986년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에 있는 유대인 교회를 방문했고, 기독교 각 종파들을 초대해 만납니다. 1981년 5월에 터키인 청년에 총을 맞고 2년후, 감옥에 있던 청년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눕니다.

  유다교, 이슬람교 지도자와 만남을 갖고 있는 요한 바오로 2세.

요한 바오르 2세는 가톨릭교회가 새로운 시대와 대화하며, 시대의 필요에 맞추어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렸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카톨릭 교회의 현대화 메세지는 대중에게 극적으로 전달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96년부터 파킨슨병, 만성 무릎관절염, 여러 합병증 등으로 10년 이상 시달리다 2005년에 선종합니다. 그에게도 넘지 못한 오점은 남아있습니다. 그는 추기경 시절 폴란드 교단에서 발생한 아동 성 학대 사건을 알고도 이를 은폐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