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까지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은 단백질이라고 생각했다. 단백질은 종류도 많고 생물체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니 수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단백질은 수백 개의 아미노산이 반복적으로 이어진 중합체 즉 폴리머이다. 아미노산은 20종이 있기 때문에 20의 수백 승에 달하는 다양한 단백질이 존재할 수 있다. 단백질 별로 아미노산의 서열에 따라 독특하고 복잡한 구조를 이룰 수도 있다.

이에 반해  DNA나 RNA 같은 핵산은 말 그대로 세포핵 속에 있는 산성의 물질일뿐이다. DNA는 4종의 핵산으로 구성된 간단한 중합체(폴리모)였다. 구조와 기능도 알려진 바가 없었기에 유전 현상에 관여할 것으로 상상되지 않았다.

다윈이후 현대의 유전학의 역사는 단백질이 아니라 DNA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가는 역사였다.

시작은 1928년 영국의 그리피스 박사였다. 그는 폐렴연쇄상구균의 병원성 특성이 형질전환하여 비병원성 박테리아로 전달됨을 보여주었다. 1944년 미국의 애버리 박사는 DNA가 형질전환의 원인 물질이라고 발표했다. 병원성 물질이 단백질이 아니라 DNA를 분해하는 효소에 의해서만 파괴된다는 실험 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대 다수의 과학자들은 DNA가 유전적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라 믿지 않았다.

그러나 후속연구들은 점점 DNA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미국의 앨프리드 허시와 마사 체이스의 실험은 인상적이다. 그들은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유전적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은 ‘단백질’이 아니고 ‘DNA’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실제로 바이러스 단백질은 박테리아 표면에 붙어있기만 했다. 감염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믹서기를 이용해 강제로 박테리아와 분리시켜도 후손 바이러스가 생성되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1952년에 발표된 허시와 체이스의 실험은 믹서기 또는 블렌더 실험으로도 알려져 있다.

1953년에 왓슨과 크릭은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제시하였다. 유전적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은 단백질이 아니고 핵산 특히 DNA라는 것이 마침내 밝혀진 것이다. 이로써 현대 유전학이 시작되었다.

믹서기 실험 이후

허시 박사는 1969년 노벨상을 수상한다. 허시 박사는 자신의 노벨 수상 연설에서 마사 체이스의 기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사 체이스연구원은 1964년에 이르러서야 박사학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녀는 이후 여러 어려움을 겪었으며 끝내 과학자로서의 경력은 단절되고 말았다. 말년에는 단기 기억 고정을 못하게 되는 뇌질환을 앓다가 2003년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현대 생물학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 실험 중 하나였던 믹서기 실험의 두 주인공이 이후 걷게 된 길에 너무나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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