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총리 헨리 존 템플은 1848년 하원에서 “우리에겐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하고 영구하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이다”라고 연설한다. 그가 강조한 ‘국익 추구’는 주권 국가의 절대불변의 진리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외교현실은 오히려 그리 단순하지 않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향한 미국의 입장은 국익에 부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우크라이나전쟁의 원인제공자는 미국이라고 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는 나토, 경제적으로는 유럽연합(EU)에 편입하고, 이념적으로는 친미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전략을 가졌다고 했다. 결국 미국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2014년 2월 ‘메이단 혁명’으로 친러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하다. 이에 반발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 내전을 부추겼다고 봤다.

그런데 주류세력은 푸틴은 독재자이며 망상가라고 비난하고 악마화할 뿐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의 공급망이 무너지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미어샤이머는 지금 미국에 가장 큰 적은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며, 러시아를 대적하는 데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것은 미국 국익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중국과 전략적 경쟁에 전념할 것을 주문했다. 빠른 종전을 위해서는 우크라이나의 중립 선언이 해법이라고 제안한다.

푸틴을 독재자이며 망상가로 여기는 미국의 주류는 미어샤이머의 주장에 크게 반발했다. 원인이 무엇이든 21세기의 문명사회에서 침략전쟁은 범죄다. 국제적 고립은 푸틴읙 책임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질서가 선이고, 이에 도전한 푸틴은 악이기 때문에 처벌해야 한다. 실용주의와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은 국가적으로 이로운 의사결정과는 확연히 다른 의사결정 메카니즘이 또한 존재한다. 그것의 정체 혹은 연원이 무엇일까?

정태식의 『거룩한 제국』은 미국 사회를 종교와 국가주의를 통해 조망한다. 저자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전쟁과 테러의 배경에는 미국의 기독교 국가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도교 이주라는 건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 종교는 “탈제도화되는 대신에 공공화” 되어왔다. 특히 부시 정권은 근본주의적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아 9.11 테러라는 참극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통해 되갚으려 했다. 더불어 테러와의 전쟁을 종교적 성전으로 승화시키고 세계를 선과 악의 세력으로 양분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이슬람 극단세력에 힘을 실어주면서 IS와 같은 새로운 골칫거리의 출현을 낳았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 수사에 그치지 않고,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 되었다. 전쟁에 종교와 도덕의 잣대가 가미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은 성전으로 승격했다. 전쟁을 이데올로기를 넘어 선과 악의 대립 구도를 상정하는 종교적 차원으로 격상시켰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다.

실제 미국 외교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면 바로 적대국의 ‘악마화’일 것이다. 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규정했고, 조지 부시 대통령도 2003년 연두교서에서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이라 불렀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중의 전략 갈등을 ‘선악 구분’이 전제돼 있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로 말한다. 그러나 ‘악마’나 ‘괴물’이 외교 용어일 수는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외교분야에서 도전에 직면했다. 본래 성스러운 영역에 속하는 종교와 세속의 정치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럼 여겨지기 쉽지만, 현실에서는 서로 끊임없이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밖에 없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외교의 진리’인 국익추구를 주장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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