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한 가운데 있는 노보시비르스크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생물학 실험이 일어나고 있는 도시다. 1959년부터 진행중인 인류의 이른바 ‘가축화’ 실험이다.
이 실험은 구 소련 과학자인 드미트리 벨야예브 박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다윈의 저서를 탐독했던 벨야예브는 모든 가축화 된 동물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가축들은 자연에 있는 친척에 비해서 짧은 주둥아리, 고뿌라진 꼬리, 얼룩진 털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가장 쉬운 예로 늑대와 다양한 개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오늘 날에는 이른바 가축화 증후군이라 불리고 있다.
벨야예브 박사는 이러한 공통점이 같은 메커니즘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동물을 대상으로 이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동물의 유용성보다는 인간 친화성에 기반한 선택이 가축화 증후군의 원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의 실험대상은 시베리아 야생에서 사는 은여우였다. 실험의 방법은 포획된 여우 중 가장 순한 개체를 골라 번식을 시키고, 태어난 새끼들 중에 다시 가장 순한 개체를 골라 번식을 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는것이었다. 불과 6 세대가 지나지 않아 인간을 잘 따르는 여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이름을 붙여주어 부를 수 있었으며, 안심하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둘 수도 있었다. 벨야에브 박사의 가설대로 이들은 인간 친화성을 가짐과 동시에 가축화 증후군을 ‘앓기’ 시작했다. 주둥이는 짧아지고 몸에 점과 얼룩이 생긴 것이다. 일부는 귀가 처지고 꼬리가 말리기도 했다. 즉 여우가 ‘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애완 동물이 된 여우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이제 유전자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공격적인 여우와 순한 여우는 백 개 이상의 유전자가 대뇌 전두엽 부위에서 차이를 보인다. 여우의 염색체 15번의 특정 부위가 가축화 변이의 핫 스폿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또한 안면 골격, 털 색깔, 그리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까지 결정짓는 신경능세포라는 특이한 세포가 가축화 증후군과 관련 있다는 것도 밝혀지고 있다. 벨야예브의 실험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노보시비르스크의 세포학유전학 연구소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실험은 시작하자마자 중단될 뻔 한적이 있다. 트로핌 리셍코라는 엉터리 과학자때문이다. 1920년대부터 소련의 공산당은 교육은 받지 못했으나 ‘올바른’ 사상을 가진 프롤레타리아 과학자를 정책적으로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해 출세를 한사람이 바로 트로핌 리셍코였다. 자신이 개발한 농경법과 수확량을 과대 포장하여 스탈린의 신임을 얻은 그는 멘델의 유전학과 다윈의 진화론을 공격했다. 한 학회에서는 유전학을 반동적이고 서유럽적인 가짜 과학으로 몰아세우고 그 자리에 있었던 유전학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유전학을 부인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1959년 벨야예브의 실험의 시작과 동시에 리셍코는 감히 ‘유전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연구소에 평가단을 파견하여 이를 저지하려고 시도하였다. 우연찮게도 당시 소련의 리더였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세포학유전학 연구소를 직접 방문하기로 결정하였다. 흐루쇼프도 리셍코의 지지자로서 벨라예브의 실험에는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흐루쇼프의 딸 라다가 그와 함께 연구소를 방문하였다. 라다는 생물학 교육을 받은 실력있는 기자였고 리셍코가 가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벨랴예브의 실험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였다. 흐루쇼프는 무언가는 해야 했기 때문에 연구소장을 파면했고. 부소장이었던 벨라예브가 소장이 되었다. 소장이된 벨라예브는 그의 뜻대로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