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서울과 인천을 잇는 한국 최초 전신선이 개통됐으며 한성정보총국이 이를 관리했다. 한국의 첫 전화기는 특별한 사람들만 사용했고, 1896년 고종이 그 주인공이다.특히, 고종은 인천 감리에게 직접 전화해 백범 김구 선생 사형 집행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서울과 인천 사이 전화가 가설된 것은 사형 집행 불과 사흘 전이었다. 당시 전화를 사용하려면, 교환기가 필요했다. 교환기는 사람이 직접 회선을 손으로 접속하는 수동식 교환 방식이었다. 마지막 황태자 의친왕은 교환원과 사랑에 빠져, 후실로 들이기도 했다.
한일 통신협정을 강제 체결한 후, 1905년이후 일제시대 전화는 특권의 대상이었다. 전화를 가입하기 위해선 지급전화 신청서를 제출하면 체신국에서 매년 설정한 지급전화 가입신청 순번에 의해 전화를 가설해 주었다. 물론 늘 수요가 넘쳐,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전화선의 가설 등의 일체비용을 가입자가 직접 부담하면 가설해 주는 ‘특설전화’ 제도가 있었다.
1937년에는 전화개설 수가 총 5천대였고, 그중 1380대는 경성의 개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