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황정수가 말하는 ‘경성의 화가’는 그들이 살던 지역적 네트워크를 의미합니다. 마치 몽마르트 언덕에 모인 인상파 화가들 처럼…그들은 서촌이나 북촌에 살면서 서로 밀접하게 교류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경향성을 가진 그룹도 만들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근대를 거닐던 경성화가들에 미친 일본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경복고, 중앙고보 등 공립학교에서 근무했던 일본인 미술선생들이 서구적인 미술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도쿄미술학교 출신의 제대로 된 화가이자 미술선생이었습니다.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도 도쿄 미술학교 출신입니다.
이런 움직임들이 모여, 1918년 최초의 근대미술 단체인 서화협회가 결성됩니다. 한국의 동양화가들과 서양화가들이 도무 모여 결성한 단체입니다. 이들은 서화협회전(1921년)을 이끌었고, 마침내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의 출범되었습니다.
황정수 작가의 <경성의 화가들>에는 흥미로운 화가들의 삶과 그림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두 점을 소개합니다.
우선 서촌에 진짜 잠깐 살았던 이중섭의 <벗꽃위의 새>입니다. 널리 알려진 ‘소’ 시리즈 보다 더 좋다는 황작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동십자각>이란 김용준의 그림입니다. 중앙고보 학생이었던 김용준(1904-1967)이 총독부 공사가 진행되던 1924년 당시 동십자각을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은 1924년 제3회 조선미술 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을 했습니다. 인촌 김성수가 이 작품을 구매했고, 그 돈으로 김용준은 도쿄미술학교로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 김용준 ‘동십자각'(좌), 현재의 동십자각(우) ⓒ 황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