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1책]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세비야의 소설가 편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은 팬데믹시절에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입니다. 소재가 신선했고, 작가의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불편한 편의점에 자극받아 그의 데뷔작인 망원동 브라더스를 찾아서 읽다가 배를 잡고 마음껏 웃기도 했습니다. 옥탑방이라는 공간에 모인 사람들의 다양한 캐릭터간 충돌과 화해 과정이 유쾌했습니다.

김작가의 새 작품이 언제 나오나 하고 기다리다가 우연히 전자책 서점에서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를 만났습니다.

이 책은 김호연작가가 2024년에 펴낸 ‘나의 돈키호테’소설의 탄생기 또는 제작기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김작가는 망원동 브라더스를 쓰고 파우스터 등 세 권을 썼는데 흥행에 그리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작가로서 슬럼프에 빠져 있다가 2019년 원주 토지문학관의 해외 교류 프로그램에 당선되었습니다. ‘돈키호테’를 테마로 소설을 쓰는 조건으로 스페인 세 달 체류 비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김작가는 그때의 심경을 “소설 쓰기를 포기하려던 내게 스페인에 가 소설을 쓸 기회가 생겼다. 나는 호기롭게 트렁크 하나에 짐을 때려 넣고 마드리드의 작업실에 왔지만, 바뀐 건 환경일 뿐 소설을 다시 쓰기 위한 단단한 마음을 벼리진 못한 듯했다”라고 썼습니다.

김작가는 스페인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나의 돈키호테’를 2024년에 출간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김작가는 스페인을 다녀와서 2022년 불편한 편의점을 펴내 180만원이 팔리는 대박을 터뜨린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의 ‘세비아의 소설가’편을 골라서 읽고 나서 결국 에세이의 대상인 ‘나의 돈키호테’를 구입해 읽었습니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 스페인행 배낭을 꾸릴 지 모르겠습니다. 돈키호테를 찾아서!

1.소설을 쓰기 전 카피 구상

나는 소설을 쓰기 전 미리 카피를 고민해 본다. 이는 작가의 창작력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작품의 방향을 정조준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도무지 카피가 떠오르지 않았다.

《망원동 브라더스》 김호연 작가가 발로 뛰며 쓴 한국판 돈키호테!”

유일한 히트작 《망원동 브라더스》를 내세워 보지만 이 작품과 《돈키호테》 간의 연관성을 찾기 쉽지 않다.

2.객지에서의 고립

아내도 없고 친구들도 없다. 지인도 없고 동료도 없다. 글쓰기는 고립이 기본이라지만 한국어가 하나도 안 들리는 이런 객지에서의 고립은 처음이다.

문득 아내와 신혼여행 때 들른 스페인 도시들이 그리워졌다. 세비야 대성당이 떠올랐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역시 잊을 수 없다.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시장의 해물 한상과 몬세라트 수도원의 검은 마리아가 그리워졌다. 그리하여 나는 떠나기로 했다. 체류 중 여행을.

3.세비야 행

돈키호테 역시 떠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고향 라만차를 벗어나 세비야로 향하다가 돌아오고야 마는 내용이 1편이다. 그래서 나는 세비야로 떠나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에 대해 살피기로 했다. 다시 나만의 로드 무비 주인공이 돼 잔잔했던 심장 박동을 요동치게 하기로 했다.

4.산 세바스티안 거리

4년 만에 산 세바스티안 거리에 다시 서자 실로 깊은 감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허니문의 여정에 오롯이 자리한 세비야! 공짜 타파스에 인심이 푸짐하던 세비야!

기대 이상의 숙소에 절로 감탄이 쏟아진 세비야! 4년간의 결혼 생활을 무사히 지속해 왔다는 것에 대한 경외

4.1 안달루시아의 거점 도시

고대부터 이슬람 시절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거점 도시였기에 역사와 관광의 중심지 그 자체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들이 도시 중심부를 장악한 채 정신을 놓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4년 전에도 그랬는데, 그 와중에도 볼 건 다 보려고 아내와 열심히 관광을 다닌 기억이 있는 도시다.

6.돈키호테의 흔적을 찾아서

도시의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흔적을 찾아 집필의 새 기운을 얻기 위해서다.

나는 과감히, 다시 봐도 감탄을 머금을 게 분명한 대성당과 알 카사르를 건너뛴 채 스페인 광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서 이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돈키호테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6.1 타일 모자이크

스페인광장 건물 벽면에는 돈키호테 스토리를 묘사한 타일 모자이크를 찾았다.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와 당나귀를 탄 산초 판사의 뒷모습이 보이고 멀리 라만차의 평원 위에 여러 대의 풍차가 서 있는 타일 모자이크였다.

나는 숨은 계시라도 찾을 기세로 타일 그림 속을 뚫어져라 살폈다.

6.2 “QVE YO VOY A ENTRAR CON ELLOS EN FIERA Y DESIGVAL BATALLA”

타일 모자이크엔 시우다드 레알 Ciudad Real이라는 라만차 지방 주요 도시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림 왼쪽 아래 두루마리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파이어와 데미지 배틀에서 그들과 함께 들어갈 것”이라는 뜻이었다.

뭔가 굉장히 굉장한 게 나왔다!

7.세르반테스 흉상

퀘스트를 수행하듯 타일 모자이크에서 셀카를 찍은 뒤 시내로 향했다.

관광지는 들르지 않겠다면서 시내로 향한 건 그곳에 세르반테스의 흉상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타일 모자이크는 세비야에 온 목적의 전식에 불과하다. 본식은 바로 이번 세르반테스 흉상 알현이다.

7.1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에서는 세르반테스 동상이 공사 천막에 둘러싸인지라 마주할 수 없었다.

대신 세르반테스 길 끝의 광장에서 간신히 그를 알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세비야에 그의 흉상이 있다는 첩보는 나를 세비야로 오게 만든 큰 동인이었다.

8.세르반테스가 갇혀 있었던 감옥

세르반테스 흉상이 위치한 곳은 과거 세르반테스가 갇혀 있었던 감옥 건물 바로 앞이다.

세르반테스는 세금징수원으로 일하다 횡령죄를 선고 받고 감옥까지 가야 했다. 나이는 이미 50대에 접어들었고 한쪽 팔은 성하지 않은 상태. 그 상태로 갇힌 감옥에서도 그는 꿈꿨다.

8.1 감옥은 은행으로 변신

은행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이 은행이 바로 4백 년 전 세르반테스가 갇혀 있던 감옥 건물이었다고 한다. 감옥이 은행이 됐다니,

마치 세르반테스의 영혼이 평생 없이 산 자신을 위해 은행 가까운 곳에 머무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8.2 썰렁한 풍경

나는 그를 찾아 은행 앞을 살폈고 곧 대로변에 자리한 세르반테스의 흉상이 눈에 들어왔다. 오! 이렇게나 빨리.

그런데 큰 기대를 품고 온 내 예상과 달리 주변은 소박하다 못해 썰렁하기까지 한 풍경이었다.

너무도 초라한 세르반테스의 흉상이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며 자신 대신 돈이 갇힌 은행이라는 감옥 앞에 서 있었다.

9.세르반테스의 꿈

초라한 동상에 눈도장을 찍고 묵념을 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남겨 기억할 것이다.

감옥에서조차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죽어서도 다다를 수 없는 곳에 다다른 당신을 세상 모두가 기리고 있음을 잊지 마시라.

10.전율을 느낀 공간

돈키호테가 잉태된 세비야 대성당 어느 뒷골목이야말로 내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찾아 스페인에 온 뒤 가장 전율을 느낀 공간이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소설가로 겪은 수많은 좌절, 아니 작가로 살며 쌓여 온 실패와 부침, 그 온갖 풍상을 이겨내고 세르반테스처럼 다시 꿈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