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에서 가장 강력한 캐릭터는 역시 피쿼드호 선장 에이해브입니다. 에이해브는 모비 딕에 한 다리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 모비딕을 쫓아 전 세계 대양을 뒤집니다.

피쿼드 선원들은 에이해브의 영혼에게 모비딕이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신중한 성격의 항해사 스타벅은 다리를 잃은 복수심에 피쿼드 선원을 모비딕 사냥에 극한으로 몰아가는 에이해브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모비 딕을 해마다 여름에 다시 꺼내면서 에이해브에 대한 이미지도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처음에는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광기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에이해브에게 모비딕이란 존재가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던지다보니, 에이해브의 정신 세계가 조금씩 다가왔습니다.

올 여름에는 허먼 멜빌이 묘사한 에이해브 관련 문장을 뽑아봤습니다. 한 문장씩 소리내어 읽으면 에이해브 선장이 제 눈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 솟아납니다. 멜빌이 왜 19세기 최고의 문학가로 꼽히는지를 알 수 있는 묘사력입니다.

1.낸터컷 특유의 험상궂고 헝클어진 모습

우리의 선장 에이해브는 여전히 낸터컷 특유의 험상궂고 헝클어진 모습으로 내 앞을 거닌다. 그리고 황제와 제왕을 언급하기는 했어도 여기서 다루는 인물이 단지 에이해브 같은 늙고 불쌍한 고래잡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장엄한 치장이나 덮개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 에이해브여! 당신을 위대하게 해줄 것들은 하늘에서 따고 깊은 바다에서 건져 올리고 형체 없는 허공에 그려 내야 하리!

피쿼드호의 우울한 선장만큼은 이런 얄팍한 허세를 멀리 했으니, 그가 요구하는 존경이란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복종뿐이었다.

2.에이해브와 모비딕

「그래, 타슈테고. 녀석은 돌풍에 찢어진 삼각돛처럼 꼬리를 흔든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자네들이 본 게 바로 모비 딕이야. 모비 딕, 모비 딕!」

「에이해브 선장님.」 여태껏 스터브, 플래스크와 함께 선장을 바라보기만 하던 스타벅의 얼굴에는 갈수록 놀라움의 기색이 더해졌는데, 마침내 이 모든 의문을 해소해 줄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 듯했다.

「선장님, 저도 모비 딕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선장님의 다리를 앗아간 게 모비 딕 아니었나요?」

「누가 그러던가?」 에이해브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맞다, 스타벅. 맞아. 전부 잘 들어라. 내 돛대를 부순 건 바로 모비 딕이었다. 내가 지금 딛고 선 이 죽은 다리를 선사한 것도 모비 딕이었다. 그래, 맞다.」

3.’지옥의 불구덩이를 돌아서라도’

그는 마치 심장을 찔린 사슴마냥 큰 소리로 짐승처럼 소름 끼치게 울부짖었다. 「그래, 맞아! 나를 파괴하고, 나를 죽는 날까지 의족에 의존해야 하는 불쌍하고 한심한 놈으로 만든 게 바로 그 빌어먹을 흰 고래다!」

그러고는 두 팔을 번쩍 쳐들고 한없는 저주를 담아 외쳤다. 「그래, 맞다! 그리고 나는 희망봉을 돌고, 혼 곶을 돌고, 노르웨이 앞바다의 큰 소용돌이를 돌고, 지옥의 불구덩이를 돌아서라도 녀석을 잡고야 말겠다.

그리고 자네들이 이 배에 탄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대륙의 양쪽에서, 지구 구석구석에서, 그놈이 먹피를 뿜으며 지느러미가 다 빠지게 몸부림칠 때까지 추격하기 위해서다. 어떤가, 나와 힘을 합칠 텐가? 모두 용감해 보이는데.」

4.나를 바싹 에워싸는 벽「다시 말할 테니 잘 듣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고.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종이로 만든 가면에 불과해. 하지만 어떤 행동이든, 살아가는 행위라는 의심할 나위 없는 그런 행동일 경우에도, 알 순 없지만 그래도 이성적인 뭔가가 허무맹랑한 가면 뒤에서 이목구비를 내미는 법이거든. 일격을 가하려면 가면을 뚫어야 해! 죄수가 벽을 뚫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나?

나한테는 이 흰 고래가 나를 바싹 에워싸는 벽이라네. 가끔은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해.

놈은 나를 제 손아귀에 넣고 못살게 굴어. 나는 놈에게서 포악한 힘을, 그 속에 불끈거리는 불가사의한 악의를 느낀다네. 내가 증오하는 건 무엇보다 불가사의한 그것이야. 흰 고래가 앞잡이든 주범이든, 나는 놈을 상대로 내 원한을 풀 거야

5.스타벅에게 에이해브란?

영혼은 버거운 상대를 만나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미치광이한테! 이런 싸움에서 제정신을 가진 자가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건 참기 힘든 상처다.

하지만 상대는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와서 내가 가진 이성을 모두 몰아내 버렸다! 그의 불경한 목적이 빤히 보이지만, 그런데도 왠지 도와야만 할 것 같다.

좋든 싫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그에게 붙들어 맸고, 밧줄에 묶어서 끌고 가는데 그걸 자를 칼이 나에겐 없다.

무서운 노인네! 누가 자신을 조종하느냐고 그는 외친다. 맞다. 그는 위의 존재들을 상대할 땐 민주주의자인데, 아랫사람에게는 군주처럼 군림한다! 아, 내 초라한 처지가 눈에 선하구나. 속으로는 반항하면서 겉으로 복종하고, 더 심한 건 일말의 동정심을 품은 채 증오한다는 것

6.에이해브와 모비딕의 악연연

어떤 선장은 보트 세 척이 모두 부서지고 노와 부하들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빙빙 돌아가는 상황에서, 아칸소의 결투사가 상대에게 달려들듯 부서진 뱃머리에서 단검을 움켜쥔 채 고래에게 돌진했다. 15센티미터 칼날로 한 길 깊이인 고래의 목숨을 끊겠다고 덤빈 것인데, 그 선장이 에이해브였다.

낫처럼 구부러진 아래턱이 그의 발밑을 훑는가 싶더니 초원의 풀을 베듯 에이해브의 다리를 싹둑 잘라 버린 것도 바로 그때였다. 터번을 두른 터키인, 베네치아나 말레이의 용병이라도 그보다 더 잔인하게 그를 공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한 대결 이후 에이해브가 그 고래에게 억누를 수 없는 적의를 품어 왔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더 심한 건 병적인 광기에 빠져든 나머지 급기야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지적이고 정신적인 분노까지 모두 흰 고래와 결부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7. 페르세우스 동상같은 풍모

나는 고물 난간 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불길한 예감에 몸서리를 쳤다. 현실이 불안을 앞질렀으니, 에이해브 선장이 뒤쪽 갑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의 몸에서는 이렇다 할 병의 징후를 찾아볼 수 없었고, 회복의 조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화형대에 묶여 불길이 팔다리를 휘감았지만 몸이 타버리지도 않고 여러 해 동안 사지에 다져 넣은 강건함도 전혀 잃지 않은 채 줄을 끊고 도망친 사람 같았다.

크고 다부진 체구는 첼리니가 만든 페르세우스 동상처럼 불변의 거푸집에 넣어 틀을 잡은 청동상 같았다. 회색 머리에서부터 황갈색으로 그을린 얼굴을 거쳐 목덜미를 따라 옷 속으로 사라지는 가느다란 막대 같은 흉터가 보였는데, 희끄무레한 납빛 흉터는 윗부분에 떨어진 벼락이 맹렬하게 아래로 관통하면서도 나뭇가지 하나 떨어뜨리지 않은 채 우듬지부터 밑동까지 나무껍질을 벗겨 홈을 새기며 땅으로 흘러 들어가, 나무는 여전히 푸르게 살아 있지만 벼락의 낙인이 찍힌, 그런 아름드리나무의 곧고 고결한 줄기에 새겨지곤 하는 수직 솔기와 비슷했다

8.상아로 만든 다리

에이해브의 섬뜩한 모습과 거기에 그어진 납빛 낙인이 너무 충격적인 탓에 처음 얼마 동안은 이 압도적인 섬뜩함이 거의 전적으로 그가 몸의 한 부분을 의지하는 거칠고 하얀 다리 때문이라는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상아빛 다리를 항해 중에 향유고래 턱뼈를 다듬어 만들었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았다

그가 서 있는 독특한 자세도 놀라웠다. 피쿼드호의 뒤쪽 갑판 양쪽에는 뒤 돛대 밧줄 근처의 널빤지에 1센티미터 남짓한 송곳 구멍이 있었다. 에이해브 선장은 고래 뼈로 만든 다리를 그 구멍에 꽂고, 한 팔을 들어 밧줄을 움켜쥔 채 똑바로 서서 끊임없이 들썩이는 뱃머리 너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9.에이해브의 동기부여

그의 신경질적인 걸음이 더 깊은 자국을 남겼고, 움푹 팬 그의 주름도 더 깊어 보였다. 에이해브가 어찌나 생각에 몰두했는지 주 돛대와 나침반 함에서 일정하게 방향을 틀 때마다 그의 생각도 머릿속에서 방향을 틀고, 그가 걸을 때면 생각도 머릿속에서 걸어가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

스타벅에게서 망치를 건네받은 그는 한 손으로 그걸 치켜들고 다른 손으로는 금화를 내보이며 주 돛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누구든 이마에 주름이 지고 아가리가 비뚤어진 흰머리 고래를 발견하면, 누구든 오른쪽 꼬리에 구멍 세 개가 뚫린 흰머리 고래를 발견해서 내게 알린다면, 그에게 이 금화를 주겠다!」

10.스타벅의 항변

스타벅? 자네는 흰 고래를 쫓지 않을 건가? 모비 딕에 맞설 담력이 없는 거야?」

「저는 녀석의 굽은 아가리쯤은, 아니 죽음의 아가리라도 겁나지 않습니다, 에이해브 선장. 그게 우리의 정당한 용무라면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고래를 잡으러 여기 왔지, 선장님의 복수를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그래서 복수에 성공하더라도 기름을 몇 통이나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걸 잡아 봐야 낸터컷 시장에서 큰 벌이가 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말 못하는 짐승을 상대로 복수라뇨!」 스타벅이 소리쳤다. 「고래는 단지 맹목적인 본능에 따라 공격했을 뿐이라고요! 에이해브 선장님, 그런 짐승에게 원한을 품는 건 신성 모독이나 다름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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