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교열중>>은 미국을 대표하는 잡지중 하나인 뉴요커 교열 최고 책임자인 메리 노리스가 쓴 책입니다. 출간 연도는 2018년으로 챗지피티가 등장하기 전입니다. 챗지피티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은 여러 일자리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 출판계에서는 교열 기자가 직격탄을 맞았고, 편집기자도 일자리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에서 교열기자의 에세이가 주는 느낌이 남다릅니다.
메리 노리스의 뉴요커에서 직책은 오케이어(OK’er)입니다. 말 그대로 원고가 인쇄되기 직전에 마지막 단계에서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병주작가의 <<행복어 사전>>속 주인공이 신문사 교열기자라는 점이 떠올랐습니다.
교열기자는 기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외부에는 전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취재기자와 작가의 실수를 바로 잡고 또 미세한 터치를 통해 더 빛나게 만드는 조력자 역할을 묵묵히 맡습니다. 일반 독자가 접하는 명문장은 바로 교열기자의 재능과 노력이 그 안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매일 머리가 핑 돌 정도로 기술발전과 그로 인한 사회 변화 속도가 빠른 시대에 잠시 아날로그의 매력과 가치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평생 남의 글을 보고 고치며 산 노리스가 자신의 펜으로 쏟아낸 입담과 유머가 보통이 아닙니다.
노리스의 책에서 허먼 멜빌의 <<모비딕 Moby-Dick>> 제목에 왜 하이픈(-)이 붙었는지를 조사한 대목으르 골라 읽었습니다.
1. 『모비딕Moby-Dick』에 있는 하이픈
문학에서 가장 신성한 하이픈은 『모비딕Moby-Dick』에 있는 하이픈이다. 인쇄물에서 이 책이 언급될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정작 그 고래에는 하이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왜 제목에 하이픈을 붙였을까?
나는 멜빌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모비딕』을 읽은 이후 멜빌은 계속 나를 곁따랐다. 난 영어를 전공해서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그 전까지 멜빌의 작품을 읽은 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할 때까지, 내가 클리블랜드로 돌아와서 부모님과 같이 살며 의상업체에 다니던 해에 난 『모비딕』을 읽었다
1.1.“오, 시간, 체력, 돈과 인내!”
“오, 시간, 체력, 돈과 인내!”라는 표어가 마음에 쏙 들었다. 고래 분류법을 서술한 제32장 「고래학」의 맨 끝에 나오는 말이다.
큰코돌고래부터 향유고래,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외뿔고래와 범고래를 거쳐 만세돌고래와 잿빛고래까지 살펴보는 “육중한 과업”을 수행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2.멜빌의 흔적을 찾아서 나는 낸터컷미국 북동쪽 코드 곶 근해의 섬을 여행하는 동안 『모비딕』을 다시 읽었고, 『고래The Whale』의 작가 필립 호어 Philip Hoare가 주관하는 프로젝트에 초대받아 참여했을 때에는 대강 훑어봤다.
하루에 한 장씩, 매일 다른 사람이 낭독한 각 장을 미술품과 함께 온라인에 올리는 프로젝트였다. 한 장씩 맡은 낭독자 개개인의 음성과 열성 덕분에 이야기가 생기로웠다.
2.1
필립 호어는 멜빌과 연관된 명소, 특히 멜빌이 그 거대한 바다 생물을 연구한 곳을 빠짐없이 방문했었다. 그는 용연향 향유고래에서 얻은 향료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고, 고래의 뼈에 남아 있는 기름 냄새를 맡았으며, 프로빈스타운코드 곶 끝에 있는 휴양지 근해에서 고래 구경도 했다.
나는 그의 발길을 따라가 보기로 결심하고, 코드 곶으로 가는 길에 뉴베드퍼드에 들러 장미의 향기를 느꼈다
3.모비딕 탄생지, 애로헤드Arrowhead
나는 애로헤드로 갔다. 멜빌의 명저 제목에 박혀 있는 작살 같은 그 불멸의 하이픈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애로헤드에서 당장 해소하리라는 기대를 품진 않았지만 그곳은 내가 탐색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장소로 보였다.
3.1 애로헤드는 메인주 피츠필드 남쪽 홈스 로드 780번지에 있는 큼직한 노란 집이다. 그 앞에 향유고래 모양의 파란 표지판이 있다.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는 차량 진입로를 따라 질척한 주차장에 도착하니 그레이록 산이 눈에 들어왔다.
4.“Call Me Ishmael”
애로헤드에서 버크셔스 양식의 부속 건물─헛간, 차고─몇 채를 지나 본채로 갔는데, 정문이 마치 자동문처럼 열렸다. “전시회 보러 오셨어요?” 꼿꼿한 백발의 여인이 물었다.
책상 하나와 그 뒤편의 선반들에는 『모비딕』의 다양한 간행본과 머그잔, 고래 모양의 각종 상품, 옷걸이에 걸린 “Call Me Ishmael”『모비딕』의 첫 문장 티셔츠가 있었다.
5.멜빌의 서재
그는 나를 데리고 당대의 벨벳 드레스를 걸친 마네킹들이 있는 전시실 몇 개를 지나, 좌우 난간 사이로 “닫힘” 표지가 걸려 있는 계단 앞으로 갔다. 윌이라는 그 소년은 표지를 치우고 나를 계단 위로 안내했다. 나는 곧바로 멜빌의 서재에 들어섰다.
6.문학계의 고갱
멜빌은 뉴욕시티에서 태어났다. 그의 초기 저서 『타이피Typee』와 『오무Omoo』는 성공적이었고, 모두 원주민 소녀들과 식인종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는 문학계의 고갱 같았다. 초기 저서의 성공에 힘입은 그는 버크셔스로 이사해 집필을 계속했다.
7.『모비딕』의 흥행 실패
『모비딕』은 실패했다. 멜빌은 부양할 처자가 있었고 더구나 그의 처가에 빚을 지고 있었기에 피츠필드에 있던 그의 재산을 정리해서 맨해튼의 이스트 26번가에 위치한 집을 얻었다. 그의 처가 식구 중 한 사람이 저당권을 설정해놓은 건물이었다.
그는 계속 글을 썼지만 문학으로 다시 성공하지 못했다. 『빌리 버드』는 그의 사후에 출간됐다. 그의 유고를 그의 아내가 빵 상자에 보관해뒀다.
8.『멜빌: 그의 세계와 작품Melville: His World and Work』
나는 차 안에서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데 걸린 시간을 만회하려고 애쓰며 흰 고래의 하이픈을 다시 궁리하기 시작했다. 멜빌에 관한 방대한 전기가 몇 권 있는데, 나는 그중 출판과 관련된 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앤드루 델방코Andrew Delbanco의 책을 선택했다.
8.1
현재 『모비딕』의 원고는 남아 있지 않다. 델방코의 서술에 따르면 멜빌은 자신의 글이 사전에 유출되는 것을 무척 꺼려서 풀턴 거리에 있는 인쇄공에게 그 원고를 손수 전달했고 교정도 직접 했다. 이때가 1851년 8월이었다.
8.2
멜빌의 동생 앨런은 런던 소재 출판사에 편지를 보내, 나다니엘 호손(작가)의 헌사를 책에 추가하고, 책 제목을 ‘Whale’에서 ‘Moby-Dick’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또 “새로운 제목이 더 잘 팔리는 제목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새 제목에 하이픈을 붙였다.
9.『고래The Whale』로 먼저 출간
영국 간행본의 제목을 변경하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1851년 9월, 미국 간행본이 나오기 두 달 전에 그 소설은 영국에서 『고래The Whale』로 출간됐다. 이를 출간한 영국 출판사는 주로 품위 유지, 종교적 양심, 혹은 민족주의에서 기인한 이유로 본문을 많이 고쳤고, 마지막 문장에서 이탤릭체를 쓰며, 퀴퀘그의 관에 의지한 이스마엘을 물에 띄워놓은 채 끝냈다.
허먼 멜빌은 이 줄 어디선가 손을 뗐다
10.하이픈 비밀 그동안 다양한 종류의 『모비딕』 간행본이 나왔는데, 노스웨스턴뉴베리 간행본을 참조한 라이브러리오브아메리카 간행본에 내가 찾던 정보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1428쪽, 토마스 탠셀의 기록 중에 있었다.
“앨런 멜빌(허먼 멜빌의 동생)은 그의 편지에서 하이픈이 있는 “Moby-Dick”을 썼고, 이는 미국 간행본의 속표지와 소제목 페이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하지만 본문에선 그 이름이 쓰인 수많은 경우 중에 딱 한 번만 하이픈이 붙는다.
노스웨스턴뉴베리의 편집자들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간행된 책의 제목에 하이픈이 붙는 것은 관습적이었다고 주장하며 그 표제의 하이픈을 남겨둔다. 따라서 하이픈이 있는 형태는 그 저서를, 하이픈이 없는 것은 그 고래를 지칭한다.”
‘모비딕’에 하이픈을 넣은 사람은 교열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