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기록한 경영서적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박소령 전 퍼블리 대표의 ‘실패를 통과하는 일’은 2015년 창업에서부터 2024년 회사 매각까지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로서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결정을 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회사를 매각하고 자유인이 된 시점에서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서 경영행위를 분석합니다.
즉, 이 책은 당시 상황에 대한 ‘나의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현재 시점의 반성및 분석격인 ‘지금의 생각’을 짝으로 하여 독자들에게 스타트업 경영 10년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박소령 작가가 세운 퍼블리는 크게 프리미엄 유료 콘텐츠, 커리어리, 하이커리어 등 3개 사업을 전개하였습니다. 처음에 유료 콘텐츠서비스를 시작해 링크드인과 같은 전문직업 소셜미디어와 인재채용솔루션으로 확장을 하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디어 콘텐츠 비즈니스에 오랫동안 경험한 입장에서 박작가의 시각에 좀 이의를 제기하고 토론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박작가가 이런 저술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의 ‘자기개발 종단’이 만들어지고 교주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기도 합니다.
‘부자 아빠,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가 대표적으로 그러했고, 현장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비평가 내지 해설가로서 성과를 내려고 책을 쓰고 강연하는 유사 사업가들이 국내외에 수두룩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책이 화제를 모으면서 박작가는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인기 강연자의 반열에 오를 것입니다.
‘창업자가 그만 둘때’ 편중 ‘지금 생각’을 골라서 10문단으로 요약했습니다.
1.후회는 없다
2023년 6월부터 12월까지, 내 결정들은 지금 돌아봐도 후회되는 부분이 별로 없다.
조언자 그룹을 두고 상의했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다양하게 들어보려고 했고, 급하게 결론으로 점프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들으려고 했다.
2.유일한 후회
2023년 6월에 상의했던 조언자 그룹이 좀 더 넓었더라면 좋았겠다.2025년 5월, 정보라 님(현 크래프톤 사외이사)에게 “만약 2023년 6월에 뵙고 제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했더라면, 어떤 조언을 주셨을까요?”라고 물어보았다.
정보라 님은 미국 기업문화처럼 창업자 CEO가 물러나고 새 CEO가 회사를 맡는 옵션도 열어두고 진행하라고 조언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창업자로서만 남고 떠나더라도, 회사는 계속 운영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 고민해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3.새로운 CEO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투자 빙하기인 스타트업 시장과 BEP에 도달하려고 오만가지 수를 써야 했던 우리 상황을 모두 고려할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고통스러운 일을 대신하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국의 스타트업에서 창업자 CEO가 물러나고 새 CEO가 회사를 맡는 경우를 봤더라면 이런 선택지도 있구나 하고 인지라도 했을 텐데, 내 레이더망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나리오였다. 그래서 시작도, 끝도 내 손으로 직접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3.1 상황 구분이 필요
모 투자사 대표님에게도 질문했다. 만약 당신이 우리 회사 주주였고, 2023년 6월에 내가 찾아가서 솔직히 이야기했다면 어떤 조언을 했겠냐고. 그는 창업자가 이 사업을 잘하고 싶은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지, 아니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를 잘 구분하기 위한 대화를 먼저 했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더 경영을 하고 싶지 않다면 회사를 청산해 남은 현금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는 새 CEO를 데려오는 옵션에 대해서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전문경영인 풀이 제한적이라 안타깝게도 실현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고 답했다.
4.컨피던트 confident를 찾아라
로널드 하이페츠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정신과 의사이자 첼리스트이며, 리더십을 연구하고 코칭해온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졸업하는 학생들을 위해 그가 마지막 수업에서 해준 세 가지 조언을 하면서 ‘컨피던트confidant를 꼭 만들라’고 말했다.
리더가 겪는 고통은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이 많다면서,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으면서도 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믿을 수 있는 조언을 해줄 사람을 꼭 만들라고 했다.
5.119 시스템
위급 상황에 119에 바로 전화를 하듯, 나만의 119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결정적 상황이 닥쳤을 때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볼지, 어떤 것을 도와달라고 할지 평소에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긴급하고 어려운 문제는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르고, 막상 그런 일이 생기면 시간도 없고 경황도 없기에 시야가 좁아지기 쉽다는 사실을 절실히 배웠다.
6.본성을 건드리는 사업을 하라
2020년 가을, 전시 戰時 CEO 모드로 한창 일하던 무렵 ‘마스터스 오브 스케일Masters of Scale’ 팟캐스트를 자주 들었다.
어느 날 프로그램 진행자인 리드 호프먼이 자신은 어떤 사업을 판단할 때 이 사업이 인간의 본성 중 어떤 것을 건드리는지 혹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인지를 중요하게 본다고 했다.
6.1 성경에 나오는 7가지 죄악과 성공한 서비스 매칭
– 교만Pride: 인스타그램
– 시기Envy: 페이스북
– 분노Wrath: 엑스(구 트위터)
– 나태Sloth: 넷플릭스
– 탐욕Greed: 링크드인
– 탐식Gluttony: 옐프
– 색욕Lust: 틴더
7.나의 사업은 계몽에 가까웠다
큰 성공을 거두는 사업일수록 인간의 본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머리가 번쩍 트이는 듯했다. 그전까지 우리가 해온 사업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즉 우리의 콘텐츠로 고객을 ‘계몽’하려는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창업 초 ‘문화를 바꾸고 습관을 바꾼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 후 고객 환영인사 이메일에도, 고객들에게 보내는 중요한 이메일에도 이 표현을 종종 사용했다.
8.계몽사업이라면 다른 목표 설정 필요
인간의 본성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업과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업은 시장의 크기도, 도달 가능한 사업 규모도 다르다. 사업을 크게 키우고 싶다면 인간의 본성에 올라타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계몽주의 사업 노선을 선택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지만, 이때는 목표를 현실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8.1 계몽주의 사업, 글로벌 1%를 상대해야
계몽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큰돈을 벌 수 있는 건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할 때다. 전 세계 인구 중 1%는 계몽주의에 돈을 낼 의향이 있다. 그리고 그 1%를 고객으로 끌어들이려면 압도적인 브랜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하버드는 전 세계 1%를 상대로 비즈니스하는 교육 브랜드다.
뉴욕타임스도 전 세계 1%를 상대로 비즈니스하는 미디어 브랜드다.
9.나의 목표는 이율배반적
창업 초 내가 계몽주의를 기반으로 시장의 크기와 사업의 구조까지 고려했더라면 과연 어떤 회사가 만들어졌을까?
나는 문화와 습관을 바꾸려는 사업을 하면서도, 팀과 주주에게는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사업이 가질 법한 커다란 목표를 제시했다.
당시엔 이것이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창업한 지 5년이 지나서야 그동안 해오던 사업의 한계를 인정하고 고객의 니즈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겨우 살길을 찾았다.
10.계몽주의 사업의 마지막 교훈
2024년 초, 위하이어 경쟁사 중 한 곳이 M&A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광종이 말했다. 시장에서 패스트팔로어로 2등만 해도 M&A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우리는 시장을 계몽하려고 했기에 고객도 확보할 수 없었고 M&A조차 될 수 없었다고. 이것이 내가 배운 계몽주의 사업의 마지막 교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