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도시 베를린

손관승 작가의 ‘베를린에서 나를 찾았다’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MBC 독일 특파원을 시작으로 베를린에 대한 사랑과 역사를 키워왔습니다. 독일 베를린은 2000년대 중반이후 지구촌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었습니다. 특히 구 동독지역이었던 동베를린은 음악, 패션, 가구, 건축,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젊은 예술가와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또 유럽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베를린 스토리는 타헬레스(Tacheles)의 1990년 스쾃운동(Squat:예술가들의 건물 무단 점거 운동)에서 시작합니다. 예술공동체인 타헬레스는 베를린의 중심부인 미테지역 시너고그 유대인 성전 건너편에 있던 옛 백화점 건물을 점거하면서 뉴 베를린 건설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젊고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은 그 건물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세상 어디에서도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는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기성의 질서와 가치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데 동베를린은 최적의 공간이었습니다.  그 공간은 사회주의가 무너진 상태에서 자본주의가 미처 뿌리를 못 내린, 일종의 진공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 서유럽과 동유럽 문명의 교차로이기도 했습니다. 타헬레스는 이런 특수한 공간에서 무제한 자유를 누리며 그들만의 작품, 그들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했습니다.

손작가는 그라운드 제로로 변한 베를린이 무서운 속도로 세계 예술 시장을 잠식하는 저력에 주목합니다. 그는 스쾃운동의 발상지 근처 ‘How long is Now?’라는 문구를 벽면에 그린 빌딩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이건 뭐지?’ 뉴욕 타임스퀘어식 대형 광고에 익숙한 여행자에게 철학적 질문은 낯설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문구를 다시 곰곰히 씹어보면서 베를린의 진짜 매력을 뽑아냅니다.  

베를린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며 질문하는 거대한 공간입니다. 조각, 벽화, 스트리트 퍼니처 등 베를린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베를린은 각각 고유의 메시지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도시, 서울은 어떤가요?!.

수년전부터 매주 토요일 서울 성곽길을 순환도로 삼아 서울 곳곳을 걸었습니다. 그러면서 북촌, 서촌, 익선동, 창신동, 해방촌 등 성곽 안팎 마을의 변화를 생생하게 지켜봤습니다. 일제 시대에 지은 개량한옥과 콘크리트 단독 주택이 다닥 다닥 붙은 구 도심 마을이 변신하는 메카니즘은 베를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독립 예술가들이 작업 스튜디오, 공방을 이 곳에 만들고 개성이 강한 카페, 갤러리,식당이 속속 들어섰습니다.  

베를린의 재생이 꼭 서울의 재생과 같지는 않습니다.   베를린과 서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베를린을 가보지 않고 두 도시를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손작가의 책을 통해 어렴풋이 차이점을 짐작해봅니다. 서울의 도시재생은 빠른 속도로 타올랐다가 차갑게 식는 장작같습니다. 한 동네 재생 메카니즘은 그대로 다른 곳에 복제되기에, 겉이 조금 다를 뿐 속은 거의 같습니다. 그래도 ‘섹시한 도시’ 베를린의 재탄생 스토리에서 희망을 봅니다. 언제가 평양이라는 공간이 열리는 것을 꿈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