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존슨이 영국의 해적을 소재로 쓴 ‘인류 모두의 적’이 한국어로 출간됐습니다.
과학저널리스트 존슨은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감염 도시’ 등을 통해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숨어 있는 맥락과 의미를 재미있게 빚어내는 솜씨를 발휘하여 명성을 얻었습니다.
존슨이 이번에 잡은 테마는 전설적 해적인 ‘헨리 에브리’입니다.
헨리 에브리는 1695년 해적선 팬시호를 지휘하여 무굴제국의 메카 순례선인 건스웨이를 공격하여 막대한 보물을 약탈하고 건스웨이 탑승객을 악랄하게 고문했습니다.
또 메카 순례길에 올랐던 왕실 여인들을 대상으로 악행을 저질러 무굴의 아우랑제브 황제를 격노케 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한 해적의 약탈로 인해 무굴제국와 분쟁에 휩싸인 영국 정부는 에브리에게 당대 최고액의 현상금을 걸고 인간 사냥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부를 거머쥔 에브리는 아일랜드에 상륙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헨리 에브리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다양한 사람에 의해 다양한 시각으로 각색되면서 인구에 회자되었습니다. 보물과 해적선 스토리는 지구촌 누구나 흥미를 갖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스티븐 존슨은 어쩌면 뻔한 해적 이야기에 자신만의 관점을 덧붙여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시도합니다.
즉, 해적왕이 자신도 모르게 대영제국 시대를 여는 방아쇠를 당겼다고 봅니다.
존슨은 이런 관점아래 마치 추리 소설을 쓰듯이 대항해 시대의 역사속을 파집고 들어갑니다.
그의 시도 덕분에 한국인에게 다소 생소한 영국과 무굴제국, 그리고 동인도 회사의 실체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1695년에 어떤 일이 있는지 연표를 찾아보았다. 흥미롭게도 1695년은 조선과 일본사이 독도 소유를 놓고 분쟁이 있었다.
3부 약탈 편 10줄 요약
1.케이프세인트존 서쪽 인도양 1695년 9월 7일. 새로이 결성된 해적 함대는 계절풍이 불기 시작할 때를 한 달이 넘도록 기다렸다. 그때는 남서풍이 불며 상선들이 바브엘만데브해협을 통해 수라트로 돌아가는 게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에 선원들은 헨리 에브리의 계획에 잘못이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점차 깊어졌다.
에브리는 자신이 지휘하는 배가 적어도 인도양에서 가장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슬림 상선단을 추적해 앞지를 수 있는 배가 있다면 단연코 팬시호였다.
2.열흘째 되던 날, 망꾼들이 처음으로 육지가 보인다고 소리쳤다. 봄베이 북쪽에 위치한 케이프세인트존의 윤곽이 아스라이 보였다. 무슬림 선단이 정박후에 화물을 내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가장 큰 배는 마트마흐마마디호로,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압둘 가파르가 주인었다. 에브리는 이 배를 공격하라고 명령했고, 6만파운드 가치가 넘는 금과 은을 찾아냈다. 에브리와 선원들에게 삶을 바꿔 놓을 만한 재산의 획득이었다. 그러나 은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계산을 해냈을 것이다.
3.팬시호는 건스웨이호(무굴제국의 메카 순례선)를 추적했다. 이 배는 1000명 수용능력과 80문의 대포, 수백정의 머스킷총을 갖추고 있었다. 에브리와 그의 선원들은 굶주렸고 용맹무쌍했다. 그들은 ‘넘치는 보물’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4.팬시호의 공격 과정에서 세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건스웨이호 대포가 폭발하여 6명 포수가 즉사하고 갑판은 불바다가 되었다. 팬시호의 포격이 건스웨이호 돛대를 때리며 주된 돛과 그에 연결된 모든 삭구가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으로 배에는 금 은 장신구와 상아 몰약과 유향 샤프란 등 숱한 향료가 가득했다.
5.건스웨이에는 순례에 나섰던 궁녀들이 타고 있었고 그중에 아우랑제브 왕의 손녀가 있었다. 에브리가 공주를 어떻게 대했는가를 놓고 다양한 이야기가 지어졌다. 그중에 에브리가 공주에 연민을 느끼고 청혼했다는 러브스토리와 강제로 공주를 능멸했다는 스토리가 섞여 있다.
6.당시 수라트에 머물던 카피 칸이라는 특사는 사람들을 조사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들이 건스웨이와 압둘 가파르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심히 야만적으로 학대했고, 돈을 감춘 곳을 알아내려고 온갖 고문을 가했다고 확신합니다.
메카를 순례하고 돌아오던 위대한 움브로의 아내가 그 배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 여자가 왕의 친척이었습니다.
해적들이 지체 높은 여자를 욕보였고 다른 여자들도 학대했습니다.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남편에게 보이지 않으려 자결한 여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7.무함마드의 눈에 왕실 순례선 포획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신성모독이었다. 무슬림에게 가장 신성한 행위로 여겨지는 성지 순례에 참여한 여인들에게 끔찍한 성폭력을 저질렀던 것이다.
아우랑제브는 수라트 동인도 무역 사무소의 자산을 압류하고 봄베이캐슬 공격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동인도회사는 아우랑제브의 통치를 위협하고 그의 종교적 믿음을 훼손하려는 침략군이었다. 이제 그들을 축출할 때였다.
8.에브리의 약탈 사건과 관련해 영국의 핵심 관계자들은 각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몰랐다. 해적, 기업, 국가라는 뚜렷히 구분되는 세 범주가 있었지만 각 범주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헨리 에브리의 행동이 야기한 세계적인 위기는 결국 이런 근원적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9.에브리의 약탈로 인해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영국의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이 무력화될 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대 인도 무역망을 유지하기 위해 동인도회사의 지원을 받아 현재 가치로 5만달러 상당의 현상금을 걸었다. 에버리 일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것도 허용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촌 차원의 범죄자 체포를 시도한 것이다.
10.세계 전역에 주둔한 군사력, 지역 법 집행관들, 외딴 식민지 전초기지의 총독들, 상선 서선원, 아마추어 현상금 사냥꾼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 명의 지명 수배자를 추적하고 나섰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에브리의 머리에 가격표를 붙이고 본격적으로 인간 사냥을 시작한 때는 헨리 에브리가 수라트를 떠난지 10개월이 지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