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7월 31일 오후[a] 6시 59분 신행주대교가 무너졌다. 사고 원인을 취재하기 위해 교량 전문가를 급하게 찾아갔다.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박사를 받은 그 교량전문가는 기자들에게 교량 사고 유형을 설명하면서 신행주대교붕괴의 원인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취재 기자들은 모두 교량관련 용어를 처음 들어본 탓에, 용어를 반복해서 물었다.이 전문가는 짜증을 내기 시작하더니 “이 무식한 기자들아, 공부 좀하고 와서 물어”라면서 그 곁에 바짝 붙어 취재하는 나의 머리를 손으로 때렸다.
기분이 무척 상했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실제 무식한 질문을 반복하는 잘못을 느낀터라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편집국으로 돌아왔다.
신행주대교 붕괴 사고 이후 기자로서 숱한 사건 사고를 직접 취재했다. 그중에서 인천 및 부천 세도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노태우전대통령비자금 사건, 12.12및 5.18 재수사, IMF사태, 1.21 인터넷 대란 등이 머리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다.
대형사건 사고를 취재할 때마다 교량전문가에게 머리를 맞은 일이 기억에 났다. 취재 패턴이 신행주대교때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취재건이 터지면 전문가와 담당공무원들을 붙잡고 무식한 질문을 반복했고, 그렇게 취재한 결과물을 지면에 담기에 바빴다. 특히 다른 언론사들보다 한발 더 빨리, 그리고 하나 더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고 나머지는 그 목표를 위해 희생됐다.
그런 관행 탓에 대형사건 사고를 취재하는 것은 늘 고통스러웠다. 처음 대하는 분야에서 용어부터 이슈를 파악하는 작업을 늘 반복해야 한다. 사고의 경우 원인을 제대로 밝히는데 몇 개월이 소요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알지만 경쟁 때문에 뭔가를 써내야 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보도라는 점을 잘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점은 사후약방문을 쓰는 식의 취재였다. 대형참사를 취재하면 대부분 사고가 나기 꽤 오래전부터 여러 징후들이 나타났던 점을 알 수 있다. 언론이 이런 문제를 사전에 포착해 취재하고 보도했더라면 사고를 방지하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언론들은 숱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언론 보도 기조를 놓고 언론사끼리 서로 다툰다. 일부 언론사 내부에서는 간부와 기자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다수 여론 주도층도 ‘기레기(기자쓰레기)’말을 인용하면서 언론을 싸잡아서 비난하고 있다. 심지어 외국의 보도를 공정한 보도라고 추켜 세우면서 국내 언론을 깎아내리고 있다.
현 언론계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대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현재 모습이 어떤 구조에 기반을 둔 것인지를 살피고 대안을 찾지 않으면, 세월호 사건 보도에서 드러난 언론 행태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난 한국언론의 문제점 대부분은 수습기자 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 현장에 투입된 기자 대부분은 경력 5년 미만의 사회부 소속 젊은 기자들이다. 22년 전 필자가 당직을 서다가 교량 붕괴사건 취재에 갑자기 나섰던 처럼 이들은 아마도 선박관련 기초용어나 이슈를 전혀 모르고 세월호 취재에 투입됐을 것이다.
그리고 10년 뒤 이들은 아마도 다른 부서에서 흩어져 근무할 것이다. 각자 소속부서에서 회식을 할 때 세월호 취재를 무용담처럼 후배들에게 말할 것이다. 유사한 선박 사고가 터지면 사회부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젊은 후배 기자들이 취재를 할 것이다. 그들은 또 낯선 분야에서 헤매면서 특종과 속보 경쟁을 벌일 것이다. 선박안전과 관련된 공무원 사회에 뿌리 깊은 문제와 언론사 내부의 묵은 문제와 뭐가 다를까.
순환보직 관행으로 인하여 안전과 재난 전문 공무원이 없듯이, 수습기자 제도와 순환 보직제로 인하여 안전과 재난 전문기자가 없다. 20년치 각종 재난사고 기사를 모아서 보면 어찌 그렇게 제목들이 비슷한지 모르겠다.
언론의 사회적 존재가치는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그로 인한 사고의 위험을 감지해 햇볕 아래 드러내는 일이다. 공동체에 위험을 미리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조기경보시스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금융, 외교, 국방,과학기술,교육,안전,식품 등 주요 분야에서 매의 눈처럼 해당 분야를 보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공급하면서 문제점들을 추상같이 드러낼 수 있는 전문기자 제도를 제대로 도입해야 한다.
전문기자제도는 90년대 초반부터 거론되기 시작했으나 의학, 국방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뿌리를 못 내리고 있다.
전문기자제도의 미성숙은 백지상태나 마찬가지인 대학졸업생을 수습기자로 뽑아서 도제식으로 키우는 인재육성 관행 때문이다. 아울러 전문기자와 기존 데스크라인간 갈등이 전문기자제도 뿌리내리기를 가로막고 있다.
즉, 하루 단위로 경쟁하는 기존 데스크라인은 인력을 늘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싶어하기에 전문기자가 일상기사를 다루지 않으려 하는 태도를 극도로 싫어 한다. 반대로 전문기자가 일선 취재현장에서 멀어져 홀로 움직일 경우 이슈를 놓치거나 해당 업계와 유착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언론사가 수습기자제도를 없애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몸으로 때우기식 현장 취재에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둘째,자사의 전통과 문화를 잘 이해하는 인력을 확보하고 싶어한다.
전문기자제-수습기자제는 결국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두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안은 10년차 이상 숙련 기자의 취재를 보좌해주는 공통 지원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공통 지원시스템에는 보조 취재자를 비롯해, 자료조사원, 일정 담당 비서 등이 포함돼야 한다.
숙련 기자들은 이런 지원시스템을 활용하면 현장을 담당하면서도, 자신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전문기자화할 수 있다. 수습 제도 아래에서는 고참기자가 필요로 하는 허드렛 일을 신참 기자가 담당하고 있다. 언론사 뉴스룸 인사 제도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우병현님이 다음 문서를 첨부했습니다.

펜맨_칼럼_위험 경보할 수 있는 기자를 키우려면_20140515
|
|
Google 문서: 온라인에서 문서를 만들고 수정해 보세요. Google Inc. 1600 Amphitheatre Parkway, Mountain View, CA 94043, USA 다른 사용자가 Google 문서의 문서를 나와 공유하여 발송된 이메일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