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화 교수님이 이번주 ‘문학의 길’을 안내해 주셨다. 박철화 교수님의 간결한 저음의 보이스가 워킹서울 여인들로 하여금 보름님을 부러워하게 했다. 목소리가 듣는 이를 편안하고 신뢰할 수 있게 한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시인부락’ 잡지를 창간하면서 시인 친구들과 함께 머물렀던 보안여관이다. 문학 역사와는 상관없이 미술 갤러리로 변해 있다.

아쉽다. 문학의 역사를 살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덩그러니 남아 있는 보안여관 간판이 문화를 깊이 있게 보존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내려보며 비웃는거 같다.

신교육을 받은 이상 시인이 현실과 이상속에서 권태와 무기력함 속에 결핵으로 죽어 갔다는 이야기와 봄봄이라는 단편소설로 유명한 김유정 소설가가 결핵에 걸려 고향인 강원도에서 생명을 연장하고 싶어 뱀을 잡아 먹었다는 이야기와 지인들에게 징징대며 돈을 구걸하는 편지를 썼던 김유정은 친구인 이상보다 먼저 죽었다는 안타까운 사실…

현진건의 집터가 훼손되어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역사와 공간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한다. 현진건의 문학 코드는 ‘빈곤’이란다. 양계장을 하며 생활고를 해결했어야 하는 문인들의 고달품을 느꼈다.

윤동주 시인은 이상과 마찬가지로 신교육을 받았다. 윤동주의 문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부끄러움’이란다. 신문물과 신교육을 받은 자신이 식민지 조선에서 아무것도 할 수없음을 부끄러워 했단다. 같은 신교육을 받아도 어떤 이는 삶을 권태 속에 헤메다 죽고 어떤 이는 부끄러움을 지닌 자기성찰 속에 죽어갔다. 역사는 어떻게 볼까?

춘원 이광수의 별장터는 개인 사유지가 되어 볼 수는 없지만 집 앞에 안내 표지판은 있다. 가난한 시인들은 모두 수성동 계곡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광수는 ‘계몽’과 ‘자유연애’를 주장했다고 한다. 신교육을 받고 조선에 돌아온 엘리트가 글도 잘쓰고 자유연애를 주장했으니 얼마나 인기가 좋았을까?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이광수를 그냥 두지 못했을 것이다. 끝까지 회유해서 조선 청년들에게 전쟁에 나갈 것을, 일본 천황께 충성을 맹세하는 운동에 앞서게 해 오늘날 이광수를 친일 문학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프랑스 작가 오드제 르 발자크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평민인 발자크가 왕정당파였고 프랑스혁명 후 계급 사회가 붕괴됨에도 귀족이 되고 싶어 백작 부인과 결혼했다는 사실과 인쇄술의 발달로 인쇄소를 운영한 다른 이들은 많은 부를 가졌는데 발자크만 망했다고 한다.

빚을 갚기위해 여기저기 신문, 잡지에 글을 연재하느라 많은 글을 남길 수 있었다는 재미난 뒷이야기와 모든 꿈(백작 부인과 결혼해서 귀족이 되고 빚을 탕감)을 이룬 그 순간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도 굴짬뽕 맛을 더했다.

순수문학을 새로이 접해 보았던 있는 시간.


10월 18일 낮 12시 문학의 길을 걷고 난 워킹서울팀이 ‘팔선생’에서 점심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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