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우물 /개구리 뛰어들어/물풍덩 소리

일본 17세기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의 대표작중 하나입니다. 하이쿠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형식으로 유명합니다. 일본어 기준으로 5/ 7/ 5 모두 17자로 세상만사를 문학으로 담아내는 것이 하이쿠입니다.

살아오면서 시와 같은 운문에 감성을 담고 싶을 때가 왕왕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풍경을 만났을 때, 벗들과 평생기억하고 싶은 추억을 만들었을 때가 그런 순간입니다.

하지만 어느 새 운문 감각을 잊어버린 탓에 마음속에서 시적 감성을 닫고 맙니다.

우연히 하이쿠 세계를 만나고 나서 하이쿠는 인간의 본능에 잠복된 운문감성을 가장 쉽게 끌어낼 수 있는 형식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문화풍토에서 홀수 운율이 낯설어 우리 시조에서 초장의 3/4/3/4를 따서한 줄 시조 짓기를 시도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정수윤작가의 ‘한 줄 시 읽는 법’은 하이쿠의 세계로 안내하는 책입니다. 정작가는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하이쿠를 소개하면서 하이쿠 짓기를 권합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는 운문 본능을 되살리는 것이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길이지 싶습니다.

이 책에서 ‘들어가는 말 – 피고 지는 계절에 마음을 담아요’편을 골라 읽고 10문단으로 요약했습니다.

1.봄에 만난 엄마의 쑥

봄을 맞아 엄마와 단둘이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숲길을 내려와 엄마가 문득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풀밭에 쪼그려 앉아 “여기 어린 쑥이 무성하네.

오늘 저녁엔 이거 넣고 된장국 끓여 줄게”라고 말했습니다.

1.1 한 줄 시에 담은 여행 장면

사나흘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이 장면을 한 줄 시로 지어 보았습니다.

어린 쑥 향기

자식에게 주고파

무릎을 꿇네

2.한 장의 봄날 스케치

이렇게 시를 짓고 보니 그날의 알싸한 쑥 향기와 쪼그려 앉은 엄마의 뒷모습,

아직 꽃샘추위로 사방에 싸늘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새 생명이 앞 다투어 잎을 틔우는 초봄의 들판

이런 장면이 한 장의 스케치처럼 눈앞에 어른어른 떠오릅니다.

3.하이쿠는 사생문

일상 속 인상적인 어느 한 장면을 그림 그리듯 쓰는 글쓰기를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는 ‘사생문’寫生文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생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물이나 경치를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일을 말하지요.

이 회화 기법처럼 있는 그대로를 집요하게 묘사하는 작문법이 일본의 근대화 초기에 도입되었습니다.

3.1 지구상에서 가장 짧은 한 줄 시 이 글쓰기 기술은 마사오카 시키와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해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키는 하이쿠로, 소세키는 소설로 사생문을 쓰면서 시와 소설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갑니다.

현대 일본의 다양한 장르 작품들이 마치 눈앞에 떠오를 듯 정교하고 집요한 묘사로 이루어진 것도, 이 사생에 기반을 둔 하이쿠와 관련이 있습니다.

4.하이쿠의 법칙 한 줄 시 하이쿠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4.1 지금 이 순간을 노래

먼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감각으로,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해야 합니다. 작고 소박할지라도 지금 여기, 이곳에 살아 있는 나의 눈과 코와 귀와 살로 느낀 것을 적어 내려갑니다.

4.2 5·7·5 리듬 두 번째 법칙은 5·7·5 리듬입니다. 다섯 자, 일곱 자, 다섯 자의 음수율이 있어요.

열일곱 자 안에서 나를 둘러싼 소소한 우주를 노래하는 것이지요. 아예 이런 법칙을 부숴 음수율을 고려하지 않고 자유율(비정형) 하이쿠를 쓰는 시인도 더러 있지요.

4.3계절어 사용

계절어가 여러 개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하나가 딱 좋습니다.

계절어란 말 그대로 우리를 에워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담은 단어를 말해요. 일본어로 키고季語라고 한답니다.

5.일본어 사전, 계절어 표기

사계절 외에 신년의 계절어도 있습니다. 일본에는 약 6천 개의 계절어가 있다고 해요.

일본 국어사전을 펼쳐보면 각각의 계절어가 사계절 혹은 신년 가운데 어느 분류에 해당하는지 표시되어 있습니다.

6.사계절 특성을 담은 계절어

일본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사전 『고지엔』広辞苑을 펼쳐 보겠습니다. 제가 쓴 한 줄 시의 계절어는 쑥입니다. 쑥은 대표적인 봄의 계절어지요.

땀은 여름의 계절어입니다.

달도 매일 밤 뜨지만, 그 쓸쓸하고 영롱한 자태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계절은 가을이기에 가을의 계절어에 속하죠.

겨울의 대표적인 계절어는 펄펄 날리는 눈이겠지요. 눈이 붙은 단어도 대부분 겨울의 계절어입니다.

7.계절어 사전, 하이쿠의 동반자

계절어를 모아 놓은 ‘사이지키’歳時記라는 계절어 사전도 있습니다.

각각의 계절마다 기후, 동식물, 음식, 연중행사 등의 범주에 따라 단어를 분류하여 그 뜻을 설명하고 한 줄 시 예문을 실은 사전입니다.

이런 책으로 다양한 계절어를 익히고 하이쿠 짓기를 배웁니다.

7.1 합본 하이쿠 사이지키』 제4판

저는 가도카와 학예출판에서 나온 『합본 하이쿠 사이지키』 제4판을 갖고 있습니다.

천 페이지가 넘는 사전에 개미 같은 글씨가 빼곡해요.

겨울의 장을 여니 기후, 천문, 지리, 생활, 행사, 동물, 식물로 항목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8. 다른 나라 언어를 통한 여행

나라와 지역에서 그곳 사람들이 쓰는 고유한 단어들을 기억하고 알아 가는 과정은 훌륭한 인문학 공부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의 문화를 경험하면서 차이점과 동질성을 맛보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 아닐까요.

8.1 이웃나라 언어 배우기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그 나라의 단어를 안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를 아는 일입니다.

이웃 나라를 알아 가는 언어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우리의 사고와 생각도 유연하게 확장될 거예요.

9.계절어의 힘

계절을 품은 단어 하나하나에는 힘이 있습니다. 계절어의 이름은 하나의 우주를 끌어당기는 밧줄이라 할 수 있겠죠.

길을 걷다 우연히 본 꽃과 나무와 곤충과 구름의 이름을 아는 일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대화를 나누는 첫발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시를 쓰는 첫걸음이기도 하지요.

9.1 사계절 계절어 느끼기

봄의 언어와 여름의 언어, 가을의 언어와 겨울의 언어를 알아보고, 각각의 계절어에 해당하는 한 줄 시를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각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각을 선별하여 하이쿠를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9.2 공감각적 세계관

이처럼 다양한 한 줄 시를 감상하다 보면 공감각적 세계관이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하이쿠 시인과 그 시대, 그리고 하이쿠 쓰는 기법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10.한 줄 시 짓기 도전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 오던 사시사철의 풍경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거예요. 보던 색이 더 진하게 다가오고, 늘 곁에 있던 꽃과 나무가 말을 걸어 오는 신비를 느낄 것입니다.

10.2 지금 이 시간 여행하는 한 줄 시짓기

지금 바로 이 시간을 여행하는 우리의 계절에 오래오래 기억될 한 줄 시를 지어 보는 건 어떨까요.

10.1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흘러나오게 하면 됩니다.

시와 함께하는 생활은 우리에게 짧지만 오랜 여운을 줍니다. 차분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자연에서 지혜와 재치를 발견하며, 하루에 한 번쯤 은은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따스한 한 줄 시의 공간.

한 줄 시는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선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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