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퀘스천(더글라스 케네디)을 처음 만났을 때 빅 히스로리류의 거대 담론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에 발을 디디고 나서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빅 퀘스천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는 꽤 인기가 많은 소설가입니다. 대표작으로 ‘빅 픽처’를 꼽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다시 분단되는 가상 세계를 담은 ‘원더풀 랜드’는 최근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빅피처라는 소설을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들었지만 원더풀 랜드를 통해 더글라스를 처음 만났습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닌 논픽션이면서 소설처럼 읽힙니다. 더글라스는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결혼과 이혼, 작가로서 성장과 좌절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고 있습니다. 또 좌절과 고통을 겪은 주변 지인 스토리를 가명으로 담고 있기도 합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던지고 싶은 화두(빅 퀘스천)은 역시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부모와 배우자, 그리고 자녀와의 관계란 과연 무엇인지 갈등의 뿌리는 무엇인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합니다.

제가 끌린 대목은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유대계 어머니와 얽힌 사연이었습니다. 아버지와는 금전문제로 9년동안 교류를 끊었고, 어머니와는 어린시절부터 남이나 마찬가지인 소원한 관계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신의 학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글라스의 고백을 통해 부모와 관계에 대해 유교적,도덕적 가치관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All The Big Questions (2015년)

1.유대계-아일랜드계

우리 어머니는 독일 출신 유대인이고, 아버지는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 인이다. 내 부모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각자 자신의 출신지와 종교에 전형적으로 딱 들어맞는 분들이었다 아버지는 스스로 성인이 되고나서부터 종교 활동을 게을리 한 가톨릭 신자로서 생각했다. 아버지는 늘 심한 의무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버지의 ‘나만의 길이 아니면 고속도로’라는 삶에 대한 접근법과 엄격한 태도는 아일랜드인들 특유의 정서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유대인 자체였고, 40대 후반이 되어서도 자기 자신을 편히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뉴욕 보석상의 딸로 태어난 문화적 심리적 정체성은 잘 유지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뉴욕사람의 관점은 결코 확보하지 못했다.

2.모계 혈통, 유대인

유대교의 법칙에 따르자면 나 역시 유대교 신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어머니가 유대교를 믿으면 아들도 유대교도가 되어야 하니까. 몇 년 전 이스라엘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난 70대 노인이 나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대교는 모계로는 분명하게 이어지지만 부계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어머니가 유대인일 경우 그 자식은 유대인으로 친다. 아버지가 유대인인 경우에는 자식을 유대인으로 치지 않는다. 그 아들이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2.1 어머니의 유산

내 어머니가 유대인인 만큼 내 몸 안에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삐딱한 유머 감각, 타인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하는 점,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믿음, 삶은 너무 많은 문제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만 봐도 유대인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걱정과 죄책감이라는 두 가지 선물을 물려받았다. 실패했을 때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도 어머니를 닮았다. 가령 나의 자기합리화는 이런 것이다.

3.아버지의 죄책감

아버지에게도 죄책감이 많았다. 아버지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뒤로 무릇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었다. 아버지는 순응주의가 만연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며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 애썼다.

아버지의 잠재의식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가톨릭 정신 탓인 듯 약속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유난히 강한 책임감 때문에 심리적으로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3.1 아버지의 외도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여러 차례 외도를 했다. 어머니의 심한 신경증을 생각할 때 아버지의 외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들들 볶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결혼생활을 깰 수 없었기에 불륜을 선택했다고 본다. 아버지는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덫을 치고 살았다. 짐을 벗어던질 수 있는 일도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결정하고 고통을 감수하곤 했다. 아버지가 스스로 덫에 빠지게 된 건 지나친 자존심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3.2 아버지의 숨구멍, 예술 공연

나는 아버지로부터 예술 공연을 감상하는 취미를 물려받았다. 내가 비교적 어린 나이에 발란신 발레의 힘찬 미학, 베토벤 교향곡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깊은 고뇌, 모차르트의 <돈지오반니>에 들어 있는 모호한 도덕관 등을 감상할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다.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 신자였기에 어머니와 헤어질 수 없었던 아버지는 ‘인생은 눈물의 계곡’이라는 인생관을 갖게 되었다. 삶의 슬픔을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죗값이라고 여겼다.

4.나의 죄책감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은 내 작품에 산재해 있는 죄책감에 대해 지적하곤 한다. “저는 독일 출신 유대인 어머니와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 신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소설에서 인간의 죄책감을 주제로 삼는 건 당연한 일이죠.”

부모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나님과 우리 가족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천국의 존재를 믿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 여기 주어진 생이 우리의 유일한 삶이라 믿는다. 우리 가족은 여기에 주어진 유일한 삶을 행복하게 이어가지 못했다.

5.도서관 나들이

소설 《모멘트》에는 이혼하고 메인 주에 사는 주인공 토마스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자세히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부모의 계속되는 싸움에 지친 토마스는 아버지에게 도서관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선다. 그 부분은 내가 겪은 이야기에 기초해 썼다. 당시 나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서 네 블록 떨어진 곳에 뉴욕 공공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것도 나에게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요즘처럼 자녀들을 보호하는 시대라면 여덟 살짜리 아이가 혼자 네 블록이나 떨어진 도서관에 다녀오겠다고 말할 경우 아무도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다.

5.1 독립적 삶에 눈뜨다

아버지는 콜라를 사 마실 돈 1달러를 주며 한 시간만 도서관에 있다가 돌아오라고 말했다. 만약 시간약속을 어길 경우 다시는 혼자 가지 않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한 시간 안에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혼자 도서관으로 갔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독립적인 삶을 맛보았고, 그 즉시 매료되었다. 나는 여덟 살에 불과했지만 길을 건너기 전 반드시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양쪽을 잘 살피며 건넜다.

혼자 길을 걸을 때에는 어머니의 간섭이 없었고, 아버지와 걷는 속도를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고, 동생의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전혀 새로운 눈으로 거리를 볼 수 있었다. 아주 익숙한 장소라도 혼자 그곳에 가면 신기할 정도로 느낌이 달라진다.

5.2 관찰 습관의 탄생

내가 주변을 제대로 관찰하기 시작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나는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 22년 뒤에 주위를 관찰하는 법을 마스터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내가 첫 책을 쓰기 위해 이집트를 여행할 때 모험, 사건, 색, 사회, 정치, 종교에 대해 관찰한 이야기들을 효과적으로 책에 담아낼 수 있었다

6.나의 숨구멍, 도서관 사서

할머니는 나에게 자기 이름이 그린이라고 소개하며 내 이름을 물어보았다. “더글라스, 오늘 혼자서 도서관에 왔고, 책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걸 보니 정말 대견하구나.”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어릴 적 기억 중 한 가지다. 어른이 어른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나를 반겨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괴로운 ‘집’에서 벗어날 곳을 구했다. 사서 할머니는 몰랐겠지만 나는 난생처음으로 부모의 불화로부터 탈출할 방법을 찾아낸 셈이었다.

7.또다른 숨구멍, 예술

나는 예술 공연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나의 초기 영웅이었다. 10살 때 처음으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필하모닉의 ‘청소년을 위한 연주회’에 가게 되었다. 그때 번스타인의 뛰어난 해석이 빛을 발하는 <베토벤 5번 교향곡>을 들을 수 있었다.

6.1 파스칼리아와 푸가 C단조

2년 뒤, 나의 훌륭한 스승이었던 음악교사 티나 호프가 바흐의 <파스칼리아와 푸가 C단조> 연주를 들려주었다. 호프 선생님은 오르간 연주자가 애드가 앨런 포 같은 이름의 E. 파워 빅스라고 말했다.

음울한 베이스 코드로 시작해 점점 중심 주제로 상승해가는 그 작품은 열두 살짜리 소년이 느끼기에는 무섭기도 하고 혁신적이기도 했다

8.음악은 초월적 존재

호프 선생님 덕분에 내가 바흐의 푸가를 처음 들었던 1968년에는 사실 음악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그 뛰어난 곡을 듣는 동안 기절하다시피 매혹됐던 것만큼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바흐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한 그날의 충격과 감동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때 나는 음악을 통해 깊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고, 내 영혼을 위무해주는 초월적 존재를 만난 느낌이었다.

9.깊은 외로움의 뿌리

몇 십 년쯤 세월이 흐른 뒤에 만난 여자와 나눈 대화를 인용해 보겠다. 여자가 말했다. “당신은 사교적이고 편안한 성격에 작가로도 성공한 사람인데, 여전히 깊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듯 보여요. 가령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녀가 정말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대꾸했다. “당신 말대로지만 나는 음악이나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위안을 얻죠. 바흐의 <파스칼리아와 푸가 C단조>를 들었을 때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곤 해요.”

10.바흐의 음악, 위안과 위로를 얻기 위해

내가 바흐의 음악을 듣는 진정한 이유는 형이상학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짊어진 비탄과 의심, 고통 속에서 위안과 위로를 얻기 위해서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자면 예술작품은 마치 종교처럼 우리의 영혼에 위안과 위로를 주는 힘이 있다.

관련 링크:뇌가 젊어지는 독서급관, 귀독서(좋은 습관 연구소, 우병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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