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우리는 과연 디지털 기술 덕을 보면서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을까요?

자신이 맡은 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도전하고 싶은 일을 목표한 마감 시한안에 깔끔하게 끝내고 여가를 즐기고 있을까요?

군대부터 중앙 언론사, 스타트업까지 모든 구성원의 일하는 행태를 관찰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려고 애써왔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 혁명을 보면서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임으로써 하루 4시간 노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차적이거나 절차적인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정작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직시했습니다.

덴마크에서 출간된 ‘가짜 노동’(Pseudo Work)은 21세기 디지털 문명아래에서도 사람들이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낭비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슬로우 워크’ ‘딥 워크’저자 칼 뉴포트 역시 이메일과 메신저가 생산성을 갉아먹고 집중해서 성과를 내는데 방해로 작용하는지를 분석하면서 천천히 깊게 일하는 법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제 AI가 등장하면서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범용AI가 하루 4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해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냉철하게 미루는 습관, 불안감, 완벽에 대한 강박증으로 인해 스스로 가짜노동의 늪에 빠뜨리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1.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미래 도시

2014년, 복원 작업을 마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브로드에이커 시티’ 3차원 모형이 뉴욕에 다시 전시되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조그맣고 표준적인 주택들에는 모두 과하게 큰 정원이 딸려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텃밭임을 알 수 있다.

미래에는 텃밭에서 먹을 걸 마련한다고?

1.1 주 3일 근무 전망

1930년 프린스턴 대학교 강의에서 라이트는 미래 도시를 풍부한 공간과 여유 시간이 있는 곳으로 전망했다.

일과 사생활이 엄격히 분리되고 “노동자들은 오전 10시에 도시로 몰려왔다가 오후 4시면 쫙 빠져나갈” 것이다. 일주일에 사흘만 그렇게 일하고 나머지 4일은 ‘브로드에이커 시티’에서 정원을 돌보며, 삶을 즐기고 자연과 교감한다.

1.2 라이트 구상, 당연한 것

1930년대 미국에서는 텃밭이 딸린 목가적인 미래 주거지에 대한 발상이 유행했기에 라이트의 구상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그런 미래는 불가피해 보였다.

고층 빌딩이 들어선 대도시의 품위 없는 환경에 등을 돌린 최초의 건축계획이 ‘브로드에이커 시티’였을 수도 있지만, 짧은 노동시간과 풍부한 여가라는 미래 삶에 대한 전망 자체는 독창적인 게 아니었다.

2.케인스의 미래 전망

라이트가 프린스턴 연단에 섰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스페인 마드리드 무대에 섰다.

그는 미래에 여가 시간이 너무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라이트 못지않은 잘못된 예측으로 보인다.

2.1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학적 예측’

이 논문에서 케인스는 1930년까지의 추세에 근거해 “100년 내로 경제적 문제는 해결될 수 있거나 적어도 해결 방법이 보이게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2030년까지 평균 노동시간은 주15시간이 될 것이며 그 시간조차 경제적이기보다는 인간적 필요를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앞으로 다가올 많은 시대에도 고대 인간의 본성은 우리 안에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며 모두 만족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케인스는 말했다.

3.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 In Praise of Idleness

1932년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60세에 에세이를 냈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단 하나의 요소를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 건설을 궁리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의 생각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러셀을 경악시킨 것은 전쟁 자체라기보다는 전쟁 기간 동안 증대한 번영이었다.

3.1 하루 4시간 노동 도입되지 못한 까닭

1932년 러셀은 하루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했고 당시 많은 지식인이 동의했다. 그러나 종전 이후 러셀의 제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왜 하루 4시간 노동이 도입되지 못했을까?

러셀에 따르면 ‘노예 상태의 법칙’과 종교 때문이었다. 개신교는 노동을 그 자체로 숭배하며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로 보았다. 할 일이 적으면 어른은 술을 마시고 아이는 못된 짓에 빠지게 된다는 주장도 많았다.

3.2 열심히 일하는 것은 미친 짓

러셀은 사람들이 집에서 놀지 않고, 굳이 일터에 나와 일하려 하는 것을 의아해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4시간 근무 후 집에 가는 사회가 더 멋진 삶을 가져올 뿐 아니라 더 고상한 문화를 낳는다고 보았다.

러셀은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데도 문화와 교양을 즐길 시간을 없애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계들이 발명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노동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멍청한 짓이었다. 영원히 어리석은 짓을 할 이유는 없다.”

4. 놀지 못하는 이유

하루에 4시간만 일하게 되면,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질 것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러셀도 그 부분을 인정하지만 늘 그랬던 건 아니라고 반박했다.

“속 편하게 놀 수 있었던 과거의 능력이 효율성을 숭배하는 풍조에 의해 어느 정도 억제돼왔다.”

4.1 과도한 노동탓

그런 이유로 자유 시간은 수동적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그 시간에 영화관이나 축구장에 가거나 라디오를 듣게 됐다.

러셀은 이를 과도한 노동 탓으로 돌린다.

러셀은, 우리의 일이 줄어들면 탐구심이 더 많아지고 공부를 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생계의 필요에 얽매이지 않아서 공부가 혁신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5. 오랜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현실

러셀이 1932년에 쓴 에세이에 오늘날 우리에게 해당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만일 라이트, 케인스, 러셀이 본 ‘2020년은 상황이 어떤가?

우리는 그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도시에서 오랜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며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6. 벤저민 클라인 허니컷

19세기와 20세기 노동에 대한 태도를 깊이 연구해온 미국 역사가 벤저민 클라인 허니컷은, 노동에 쓰는 시간의 축소가 인류의 진보라는 관념이 분명 존재해왔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정치가들은 이를 자연스러운 목표로 간주했으며 이것은 곧 노동조합 운동의 주목적이 되었다.

7.헨리 포드의 주5일제 도입

자동차 생산자 헨리 포드는 이미 1926년에 주5일제를 도입했다. 포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생산력이 증진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최초의 경영자 중 하나였다.

그는 또한 자신의 노동자들이 늘 일만 하면 언제 자동차를 사서 몰고 다닐 시간이 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7.1 월터 기퍼드의 전망

1928년 거대 전화 회사 AT & T의 임원 월터 기퍼드는 ‘지겨운 노동의 나날은 곧 끝날 것’이라는 제목의 인터뷰에서 “기계들이 점점 인간의 어깨에서 짐을 덜어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게 될 것이고 삶의 기술을 기르고 예술을 더 잘 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8.주15시간 노동, 불가능할 것

세기 전 케인스, 라이트와 달리 이제는 아무도 주15시간 노동이 당연한 미래라고 보지 않는다. 전일제 직장은 아직도 37시간이다.

상황은 다른 서구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미국에서 주당 근무시간은 1980년대 이래 증가해왔다. 20세기 들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8.1 ‘대체 온종일 뭘 그렇게 하는 겁니까?’

시간 여행자가 이 소식을 라이트, 러셀 등에게 전한다면 틀림없이 대체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받을 것이다.

‘어떻게 우리 기대를 저버릴 수 있습니까?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이 일합니까?’

더욱 의미심장한 질문도 받을 것이다. ‘대체 온종일 뭘 그렇게 하는 겁니까?’

8.2 문명화는 노동시간 증가를 촉발

미국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는 현대의 고전이 된 논문에서 석기시대는 ‘풍요 사회의 원형’이라고 결론짓기도 했다.

살린스는 현존하는 대부분의 원시적 사회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 분야에 영향력이 컸다.

오래지 않아 다른 학자들도 그의 견해를 따랐고, 석기시대에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충분했다는 그의 발견에 동의했다.

9.변화는 농업의 도래와 함께 시작

정착지를 이루니 땅을 더 잘 사용할 수 있고, 훨씬 많은 식구를 먹일 수 있다니 끝내주는 발상 같다. 하지만 식량 생산이 늘어난다는 것은 훨씬 더 많은 힘든 노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나자 새로운 농업 계급은 두 배로 일해야 했다. 많은 면에서 농업은 근시안적 전략이었다. 농부의 조상들은 자기 오두막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열 명의 식구들을 보면서 쟁기질이 과연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할까?

9.1 석기시대보다 늘어난 노동시간

인류 최초의 농부들에게 농사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처럼 느껴졌을 테지만, 그것이 그들을 더욱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 시기 유골에 관한 연구를 통해 너무나 명확히 드러난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13세기 영국 농부는 1년에 평균 1620시간 노동을 했다고 추정되어 석기시대의 700시간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10.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904년 자본주의에 대한 지적 역사학 고전인 을 출간한 베버는 대담한 결론에 도달한다. 종교개혁이 근대 자본주의 산업의 길을 닦았다는 결론이다.

신앙심 깊은 금욕적 개신교도들은 검소한 삶을 살았으며 세속의 쾌락을 거부하고 신을 섬긴다는 추상적 이상으로 자신의 욕구를 승화시키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것은 지속적인 고된 노동에 대한 산업혁명의 필요에 잘 맞아떨어졌다.

10.1 게으름은 모든 악의 근원

16, 17세기 미국과 영국에서 칼뱅주의, 퀘이커파 등 독실한 개신교 분파들이 방직, 주물 공장과 조선소에서 초기의 노동 조직화를 주도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이 독실한 신자들은 게으름을 모든 악의 근원으로 보았다. 1850년 영국 산업에서는 주70시간쯤, 미국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오래 일하게 됨에 따라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일하게 되었다.

11. 증기기관, 인간을 느긋하게 해줬나?

고된 노동이 눈부신 진보를 낳았고 진보는 신세계에 대한 대담한 희망을 고양시켰다. 증기기관과 이후에 등장한 디젤엔진이 엄청난 양의 수작업을 대체했으니, 마침내 인간이 좀 느긋해질 수 있는 날이 곧 다가올까?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대량 이탈을 막고 계속 회사에 붙잡아둘 방법들이 새롭게 고안되었고, 결국 인간은 여전히 그물침대에 누울 수 없었다.

12.사무직의 등장

19세기 말 산업 노동자들은 더러운 작업복을 벗고, 점차 손톱까지 다듬고 펜을 들기 시작했다.

겉보기에 그들은 예전과 달라진 것처럼 보였으나 자본주의 정신은 온전히 유지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일해야 했다. 다만, 이제는 사무실에서 노동할 뿐이었다.

12.1 내 아들은 사무원이 될 수 있나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사회민주주의자 포울 뉘루프 라스무센은 노동계급에서 자란 청소년기를 회고했다.

한번은 그의 어머니가 학교 선생님을 만나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내 아들이 사무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가요?” 이는 시대의 결정적 전환을 보여주는 질문이다.

12.2 노동계급의 꿈, 사무직

지저분한 프롤레타리아의 자손이 사무실에서 일하게 될 재능을 가졌는지 묻는 것은, 노동계급의 꿈이 사무직이었음을 상징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1950년대의 발전된 세상에서는 여전히 현장에 나가 이마에 구슬땀 흘리며 생계를 꾸리는 사람과 ‘사무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 사이에 구분 선이 존재했다.

그러나 중산층의 꿈인 사무직에 대한 숭배는 작가와 지식인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조롱돼왔다.

12.3 사무직에 대한 조롱

실질적 생산에 아무런 이바지도 하지 않는, 하루 종일 펜과 종이를 굴리는 이 이상한 직업에 대해 작가와 지식인들은 회의적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는 19세기 중반에 발표한 단편소설 「군중 속의 사람」에서 ‘서기라는 족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꼭 맞는 외투, 밝은 부츠, 매끄럽게 기름 바른 머리, 거만한 입매의 젊은 신사. 마차의 특정한 말쑥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더 나은 단어의 필요를 위해 ‘책상주의’라는 용어를 만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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