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읽을 거리로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로버트 파우저 저)를 선택했습니다. 발췌독 챕터는

‘평화의 상징을 꿈꾼 히로시마, 그 희망은 과연 이루어졌을까’를 골랐습니다.

파우저 작가는 서울대에서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언어와 도시에 대한 책을 여러권 저술하였습니다. 그는 모국어인 영어외에 여러 언어에 능통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책을 쓸 정도로 네이티브 한국인보다 더 한국어를 잘 구사합니다.

현대 한국 지식산업에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론이 꽤 인기가 있습니다. 서울주재 특파원, 대학교수등이 쓴 한국 사회론은 늘 서점가에서 꽤 오랫동안 진열되고 국내외 주요 언론에 중요하게 다뤄지곤 합니다.

한국에 깊이 뿌리를 내린 파우저 교수의 한국사회 비평도 꾸준하게 인기가 있습니다. 파우저의 저술은 크게 ‘외국어 학습담’ 등 언어학습론과 ‘도시독법’ 등 도시론를 핵심 테마로 다룹니다.

파우저는 지난 6월 ‘문자 전파담’이라는 제목을 신간을 출간하였습니다. 신문 신간소개 코너에서 이 정보를 접하고 바로 전자책 서점을 뒤졌으나 아쉽게 전자책 버전을 구하지 못했습니다.(7월 14일 기준으로 전자책 버전이 업로드됐습니다.)

아쉬움을 달래며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를 골라 히로시마 부분을 귀독서를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의 화려한 성중 상당수가 화재나 피격으로 인해 시멘트로 복원된 점을 알았습니다.

1.히로시마의 뿌리, 조카마치

일본은 중세 이후 성을 중심으로 한 마을이 많이 생겼는데 이를 두고 성 밑 마을이라고 했다. 일본어로는 성 밑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조카마치’城下町로 지칭한다.

히로시마는 강이 많고 독특한 지형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 성을 중심으로 한, 대표적인 성 밑 마을로 발달했다. 에도 시대에는 종교와 상인 세력을 관리하기 위해 사찰과 상업지를 성에서 조금 먼 곳으로 모이게 했다.

에도 시대에는 일본 전역에 각 지역 권력의 중심인 번(藩)을 두었는데 약 250개의 번 가운데 히로시마 번은 여덟 번째로 꼽혔지만, 또다른 성 밑 마을 가나자와(金沢)나 가고시마(鹿児島)보다는 큰 규모가 아니었다.

2.정체성의 상징, 히로시마 성

히로시마는, 원자폭탄 투하 이후 평화의 도시라는 정체성과 이미지를 내세우긴 했지만, 일본의 다른 많은 지방 도시처럼 워낙에 성 밑 마을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다.

원자폭탄의 피해를 딛고 복구 사업을 통해 희생자를 애도하고 평화를 기원하려는 의지도 강했지만, 성 밑 마을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도 굳건했다

정체성의 상징은 바로 히로시마 성이었다. 1590년대 지은 히로시마 성은 오랫동안 히로시마 번 권력의 중심이었다.

3.낡은 체제의 상징으로서 히로시마 성

히로시마 성은 이런 곡절 많은 시대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불에 타거나 훼손되지 않았다. 전략적 위치로 인해 군대 시설로 사용되었다.

청일전쟁 때는 천황이 직할한 육해군 통수 기관 대본영大本營 본부로 변신, 메이지 천황이 전쟁 중에 머물기도 했다.

20세기 이후로 일본 내 군국주의와 애국주의가 점점 더 강해지면서 낡은 체제의 상징인 성을 일본의 군사적 전통으로 새로 해석했다.

4.원자폭탄에 맞아 한순간에 불타다

오랜동안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던 히로시마 성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1931년 국보로 지정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까지 연합군의 일본 침략에 대비하는 군 시설로 쓰던 히로시마 성은 원자폭탄에 맞아 한순간에 불타 사라졌다.

패전 이후 일본은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점령지가 되었다. 연합군은 일본이 다시 전쟁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헌법 제9조를 도입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군사 문화와 애국주의 그리고 민족주의 등을 없애도록 노력했다.

5.2차대전 종전후, 옛 성의 복원이 유행하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옛 성의 복원 사업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나가는 원동력 역할을 했다.

이를테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가 아닌 고향에 대한 자부심의 상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널리 퍼져나가 어느덧 옛날 성의 복원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6.와타나베 다다오(渡辺 忠雄)히로시마 시장

와타나베 시장은 1958년 열린, 히로시마 복원을 위한 히로시마부흥대박람회를 준비하면서 성의 복원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한때 군사문화의 상징이던 히로시마 성을 평화기념공원 안에, 게다가 원폭 돔과 같이 두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었다.

그러나 지역과 국가, 나아가 세계적인 상황과 요구를 함께 고려하면서 동시에 국가적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하기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7.히로시마성 복원, 현실적인 선택

불에 타 사라진 히로시마 성을 다시 복원함으로써 눈길을 끌 만한 볼거리를 내놓는 것은 이념을 떠나 매우 현실적인 선택이었던 셈이다.

이런 연유로 콘크리트로 짓긴 했지만, 비교적 꼼꼼하게 복원한 히로시마 성은 히로시마부흥대박람회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었고, 그 내부에 향토역사전시관을 설치함으로써 역사적인 의미도 부여 받았다.

8.평화 상징, 원폭 돔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전면에 내세운 것은 원폭 돔이었다. 피폭 당시의 상태로 보존된 원폭 돔의 공식 명칭은 ‘히로시마 평화기념비’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등재되었을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 이 건물은 원래 메이지 시대 히로시마의 상징이었다.

8.1 메이지시대, 히로시마 상징 건물

메이지 유신 직후 빠르게 진행된 공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히로시마는 인구가 급증했고, 상업 지역은 커졌으며 철도와 항구 주변에는 공장들이 밀집했다.

서양의 건축 양식을 도입한 상징적인 건물들도 들어섰다. 국가와 상업이 깊이 밀착된 메이지 체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 장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1915년 완공한 이 건물이다.

8.2 평화기념공원, 옛 상업 지역

1920년 무렵 히로시마 현립 상품진열소를 거쳐 마지막 명칭은 1933년 히로시마 현 상업장려관이었다.

오늘날 평화기념공원이 들어선 곳은 원래 저층 건물이 밀집해 있던 상업 지역이었다. 원폭 투하 전인 히로시마 도시 풍경 사진을 보면 오늘날의 원폭 돔의 원형 건물을 비롯한 서양식 주요 건물과 히로시마 성이 저층 건물들 사이로 눈에 잘 띈다.

9.미군정 기간, 히로시마피해는 민감한 테마

미군 중심의 연합군이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일본을 점령하는 동안 히로시마 피해 관련 논의는 매우 예민한 주제였다.

특히 점령 기간 초기 3년 동안 미군은 일본의 공산화를 우려하여, 반미 서사를 활용할 가능성이 큰 히로시마 관련 정보를 검열하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인 1948년이 되면서 미군은 일본 경제 활성화를 위해 보수 세력과 협력하면서 공업화를 추진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차츰 히로시마에 대한 정보 검열은 물론 피해 관련한 논의도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10. ‘히로시마 평화기념 도시건설법’

1949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계획을 수립하면서 ‘히로시마 평화기념 도시건설법’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 법에 따라 1950년 원폭 돔은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이후 히로시마 시가 관리하게 되었다. 구조 보존은 1967년, 1989~90년, 그리고 2002~03년 등으로 나누어 실시했고, 그뒤로도 구조적 안전은 계속해서 점검하고 있다

11.하마이 신조 (浜井 信三)시장

히로시마가 ‘평화의 도시’가 된 것은 1947년 첫 민선 하마이 시장 덕분이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시 공무원이었던 하마이는 가벼운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그는 부시장을 거쳐 1947년 첫 선거에 출마,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1947년 8월 6일 희생자를 애도하는 행사에서 최초로 평화를 선언하는 연설을 했고, 그뒤로 매년 치르는 이 행사에서는 히로시마 시장의 ‘평화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하마이 시장은 평화기념공원 건설과 원폭 돔 보존을 위해 미군은 물론 일본 정부와도 협의를 이어나갔고, 평화기념공원 안에 단게 겐조(丹下 健三)가 설계한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이 1955년 개관한 것도 그의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11.1 제대로 보존된 옛 것, 소수

그렇다고 해서 히로시마의 역사적 경관 보존이 잘 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평화기념공원 관광 안내소로 사용하는 건물은 1929년에 지은 것으로, 원자폭탄 투하 당시 기모노 가게였다. 폭격으로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남아 있는 부분을 보존하기로 했다.

이외에, 원폭 돔과 히로시마 성을 제외하면 예전 건물을 보존하거나 경관을 복원한 부분이 거의 없다.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도시 전체의 피해가 워낙 커서 남아 있는 건물이 거의 없으니 그럴 법도 하다.

11.2 평화의 도시로 새 출발한 히로시마

하지만 그보다는 ‘평화의 도시’로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는 굳이 옛것을 애써 재현하기보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관심을 더 두는 것이 좋다고 여겼기 때문은 아닐까.

관련 링크:뇌가 젊어지는 독서습관, 귀독서(좋은 습관 연구소, 우병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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