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적은 친구다.”

미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의 기세를 꺾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한국이었습니다.

일본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덤핑전략으로 미국 시장을 교란하자, 한국의 삼성을 이이제이 파트너로 삼아 메모리 기술을 기꺼이 제공하였습니다.

오늘날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시작이 바로 미국의 이이제이 전략이었던 것이지요.

패전국이 되었고 원자폭탄까지 맞은 아픔을 딛고 고도성장을 하던 일본은 1980년대 고도성장에 힘입어 언제부턴가 스스로의 성공에 도취해 자만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니의 창업주 모리타 아키오는 ‘미국인들아, 내가 경영을 가르쳐 주마’ 하는 식의 태도를 보이다 못해, 나중에는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와 함께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써서 워싱턴 정가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었습니다.

미국 리더들이 일본을 경계하고 일본을 제어하기로 마음 먹었을 무렵에 한국에서 이병철이라는 인물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식품 등 소비재를 팔다가 겨우 외제 대체용 가전제품 제조 능력을 갖춘 삼성을 이끄는 이병철 회장은 미국과 일본의 갈등 틈새에서 메모리 반도체 산업 진출의 기회를 포착한 것입니다.

1.이병철의 삼성

이병철은 무슨 일을 해도 이익을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1910년, 잭 심플롯보다 1년 뒤에 태어난 이병철은 1938년 3월 사업가로서 첫 출발을 했다. 그해 일본제국의 일부로 합병된 상태였던 그의 조국은 중국과 전쟁 중이었고 곧 미국과도 전쟁을 벌일 참이었다.

그는 미국의 반도체 산업과 한국의 정부라는 두 강력한 동맹을 끼고 삼성을 엄청난 반도체 기업으로 키워 냈다. 실리콘밸리는 일본의 허를 찌르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더 저렴한 아시아 공급책을 찾고 있었다. 이병철은 그런 일이라면 삼성이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이병철의 사업보국 事業報國

한국은 두 거대한 숙적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일을 해온 나라였다. 이병철이 삼성을 창업한 지 7년이 지난 1945년, 일본은 미국에 패배했고 이병철의 무역업은 큰 위기를 맞았다.

이병철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복잡한 정치 틈바구니를 헤치며 사업의 제국을 확장해 나갔다. 1961년 권력을 쥔 군부는 이병철의 은행 계좌를 동결했지만 그는 다른 사업가들과 손잡고 무사히 살아남았다.

이병철은 삼성이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나라의 미래는 삼성이 세계 수준의 기업으로 거듭날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변했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은 삼성의 첫 번째 경영철학이었다. 어물과 채소에서 시작한 그는 설탕, 직물, 비료, 건설, 은행, 보험으로 사업 영역을 다각화했다

이병철은 1960년대 한국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는데, 비판적인 이들은 그가 쌓은 부가 이 나라와 부패한 정치인이 이병철을 위해 일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3.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이병철은 도시바나 후지쓰 같은 기업이 D램 시장을 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국은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만든 칩의 조립과 패키징을 아웃소싱하는 중요 장소였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1966년 한국과학기술원 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의 창립에 도움을 주었고, 미국의 최고 수준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미국에서 교육받은 교수에게 훈련받는 한국인 역시 늘어났다.

1980년대 초 이병철은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4.실리콘밸리의 성공을 모방

실리콘밸리와 일본 사이에 벌어진 처절한 D램 경쟁이 그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 한국 정부는 반도체를 우선 사업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삼성의 미래를 숙고하던 이병철은 1982년 봄 캘리포니아 여행을 하면서 휼렛패커드의 시설을 방문해 그 회사의 기술을 보며 감탄했다.

그는 IBM의 컴퓨터 공장도 방문했는데,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사실에 또 한 차례 놀랐다. “당신들 공장에는 비밀이 많이 있을 텐데요.”

공장 안내를 해 주는 IBM 직원에게 이병철이 묻자, 그 직원은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런 비밀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따라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병철은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정확히 모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5.정부지원으로 태어난 반도체

이병철은 몇 달을 고심했다. 실패하면 그가 이룬 비즈니스 제국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흔쾌히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4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은행은 정부 방침을 따라 더 많은 돈을 빌려줄 것이었다. 그러니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하이테크 기업은 차고에서 태어난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은행에서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었던 거대 재벌의 산물이었다.

1983년 2월, 신경이 곤두선 불면의 밤을 보내던 이병철은 전화기를 들었다. 삼성전자 사업부를 총괄하던 수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선포했다.

“삼성은 반도체를 만들 걸세.” 삼성은 적어도 1억 달러31를 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선언과 함께 그는 회사의 미래를 건 반도체 도박을 시작했다.

6.실리콘밸리의 전폭적인 지원

실리콘밸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반도체에 모든 것을 걸었던 삼성의 도박은 성공으로 이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메모리 칩 분야에서 일본의 국제적 경쟁에 맞서는 최선의 방법은 한국에서 훨씬 더 저렴한 공급원을 찾아내는 동시에 미국의 연구개발 에너지를 이미 상품화된 범용 D램보다 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발상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인텔 공동창업자 로버트 노이스는 인텔 CEO 앤디 그로브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과 함께하면 그들이 일본 생산자들보다 더 저가로 판매할 테니, 일본이 비용에 상관하지 않고 덤핑을 하는 전략을 쓰더라도 세계 D램 시장을 독점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일본의 칩 제조사들은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될 것이라고 노이스는 예측했다.

7.실리콘밸리를 향한 일본의 위협에 대응

인텔은 떠오르는 한국의 D램 생산자들을 환영했다. 인텔은 1980년대에 삼성과 함께 합작 투자에 합의한 여러 실리콘밸리 기업 중 하나다.

삼성이 제조한 칩을 인텔의 브랜드로 판매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도움을 받아 실리콘밸리를 향한 일본의 위협에 대응한 것이다.

삼성 같은 한국 기업들의 제조 공정은 일본처럼 완벽에 가깝지도 극도로 효율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일본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오는 일에는 문제가 없었다.

8.미일 무역 갈등, 한국 기업들에게 호재

워싱턴은 일본이 미국 시장에 D램 칩을 저가로 풀어놓는 행위, 이른바 “덤핑”을 중단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1986년 도쿄는 D램의 대미 수출량을 제한하며 낮은 가격에 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더 많은 D램을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미국이 일본과의 협상으로 한국에 이익을 주자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칩을 생산하는 것이 일본을 제외한 다른 누구여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9.마이크론과 삼성의 협력 관계

실리콘밸리의 D램 생산은 거의 파탄 나 있었기에, 최고 수준의 기술을 한국에 전수하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

이병철은 현금이 부족한 메모리 칩 스타트업인 마이크론에 64K D램용 설계 라이센스 계약을 제안했고, 그 과정에서 창업자인 워드 파킨슨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아이다호의 칩 제조사는 그 계약으로 얻을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따져 본 후 기꺼이 삼성의 제안을 수용했다.

설령 그 과정에서 삼성이 마이크론의 생산 공정 중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우리가 했던 것이라면 삼성도 했다”라고 파킨슨은 떠올렸다.

10.“적의 적은 친구다.”

고든 무어 같은 반도체 산업 선도자들은 몇몇 반도체 회사가 절박한 상황에서 “가치 있는 기술을 쉽게 넘겨준다”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모리 칩을 만드는 대부분의 미국 기업이 파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D램 기술을 가치 있는 것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리콘밸리 회사들 대부분은 즐거운 마음으로 한국 기업과 협업했다. 한국이 세계 메모리 칩 시장의 선두 주자로 떠오르도록 도우면서 일본 경쟁자들의 공격을 무력화했던 것이다. AMD공동 창업자, 제리 샌더스가 한 설명을 빌리자면, 단순한 논리였다. “적의 적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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