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는 경영자의 필독서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위대한 기업의 특징과 조건을 연구했던 짐 콜린스가 이번에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기업대신 사람 탐구서를 냈습니다.

콜린스는 10년에 걸쳐 34명의 실제 인물의 삶을 파고 들었습니다. 콜린스가 이 연구를 통해 제시한 핵심 개념은 인코딩, 프레임, 고슴도치, 돈의 방향 등입니다.

콜린스는 IT 용어인 인코딩(encoding)을 사용해 사람마다 지닌 고유한 재능 또는 특성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즉, 사람마다 태어나 자라면서 특유의 능력이 코드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는데,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 실제 작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인코딩 개념은 음악, 미술, 체육, 수학 등 큰 덩어리 재능과 달리 몰입능력, 상황통제 능력 등 작은 덩어리의 능력을 뜻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여러가지 인코딩을 지니고 있다고 해석되기에 스스로 군계일학같은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콜린스는 34명의 인물 추적 연구를 통해 내재된 인코딩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프레임을 찾아서 편안하게 능력을 발휘하는 고슴도치되는 과정을 밝힙니다. 또 콜린스는 그런 프레임을 벗어났을 때 새로운 프레임을 찾아내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사례와 그렇지 못한 사례를 비교합니다.

개인적으로 콜린스의 이 책을 만나 번개를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대학시절, 공군장교시절, 언론사 기자시절, 스타트업 대표시절, 언론사 대표 시절을 돌아보면서 저의 인코딩은 무엇이었으며 저의 프레임이 무엇이었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보는 계기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기자가 되자 마자 저의 무대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제가 기자 초년병부터 IT에 관심을 갖고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탐사보도를 시도하고 독자 뉴스 웹사이트를 구축하려고 했던 것은 기자라는 일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던 것입니다.

저의 인코딩은 어떤 복잡한 사안이라도 구조를 분해하고 작동원리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또 문제를 만나면 셜록 홈즈 처럼 가설검증법으로 문제 충돌 구조를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인코딩으로 인해 논리적이며 문제해결 능력을 지닌 IT를 좋아하고, 종이 한 장에 문제의 구조를 한 눈에 펼칠 수 있는 마인드맵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또 문제를 만나면 골치아파하지 않고,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언론계를 떠나는 시점에 AI시대를 만났습니다. AI 바이브코딩은 그런 저의 인코딩에 날개를 달아줬습니다.

실제 기업 현장에서 필요한 앱과 솔루션을 AI와 함께ㅐ 직접 만들면서 개발자로서 재미와 재능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콜린스의 개념으로 저의 삶의 궤적을 명쾌하게 이해함으로써,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별자리에서 고슴도치처럼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2장 ‘인코딩의 별자리’를 통해 여러분의 인코딩과 그 인코딩이 빛을 발하는 별자리(프레임)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1. 인코딩과 프레임

프레임 밖에 있는 별들은 보이지 않고, 프레임 안에 들어온 별들만 또렷하게 빛난다. 나는 인코딩을 발견하는 과정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인코딩은 하늘의 별처럼 고정되어 있다. 삶을 살아가며 달라지는 것은 별 자체가 아니라, 프레임의 위치와 크기다. 그리고 인코딩이 밀집된 영역이 프레임 안에 들어올 때, 비로소 그 별들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1.1 프레임 안과 밖

연구에 등장한 사람들은 자신의 인코딩이 가장 밀집된 영역에서 활동할 때 삶이 가장 잘 작동했다. 나는 이를 줄여서 ‘프레임 안에 있다’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자신의 인코딩과 맞지 않는 활동에 들어가면 삶은 잘 풀리지 않았다. 이를 ‘프레임 밖에 있다’라고 표현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면 길을 잃을 수 있다. 반대로 다시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면 삶은 다시 살아난다. 이 개념을 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 존 글렌과 그와 짝을 이루는 고든 쿠퍼의 삶을 살펴보자.

2.존 글렌

존 글렌은 여덟 살이 되던 여름, 첫 번째 고슴도치의 단서를 발견했다.

조종사가 탑승 체험을 팔고 있었고, 글렌은 아버지의 배려에 의해 처음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이라는 경험은 글렌 안의 무언가를 깨웠다.

몸에 새겨진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순간, 글렌의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씨앗이 심어졌다. 글렌은 그 씨앗에 물을 주었다.

2.1 비행사 모집 공고

글렌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머스킹엄칼리지에 입학했다. 하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다. 비행을 배우고 싶었지만 수업료를 감당할 형편이 안 되었다

전공을 바꿀지 고민하며 방향을 잃고 안개 속에 갇혀 있던 그때, 우연히 게시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 상무부가 조종사 훈련 프로그램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글렌은 마침내 비행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그것도 정부 지원을 받아 전액 무료로 말이다

3.조종에서 드러난 인코딩

글렌은 지원서를 내고 마침내 합격해, 민간 조종사 훈련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그러자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글렌은 조종 훈련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륙과 착륙, 기상 변화, 난기류, 항법 등 비행에 수반되는 다양한 도전 과제를 배우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그는 수많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는 일에도 강했다.

3.1 내면의 불꽃

화학 공부나 운동에서는 자신의 인코딩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지만, 조종은 달랐다. 시간과 훈련이 쌓이면 자신이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점점 또렷해졌다. 무엇보다 그 일은 내면의 불꽃을 강하게 지폈다.

3.2 2차대전 참전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이었다. 막 조종사 면허를 딴 그는 해군 항공대 조종사가 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글렌은 군에 자원입대한 뒤, 어떻게 해서든 해군 항공 조종사 훈련 과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비행 훈련생 상위 10퍼센트 안에 드는 뛰어난 성적으로 수료했다.

4.위험을 대하는 특별한 인코딩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업을 잇거나 의대 진학을 준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실망했지만, 글렌은 전투기 조종사이자 시험 비행사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전투 임무와 이후의 시험 비행 속에서 글렌은 자신 안의 특별한 인코딩을 발견했다.

4.1 극한 상황 대처 능력

단지 비행 재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고, 극한 상황일수록 오히려 더 정확하게 움직였다. 적이든 고장 난 비행기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위험이 커질수록, 속도가 빨라질수록, 실수할 여유가 사라질수록 글렌은 더 차분하고 명료해졌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 단 한 번의 실수가 곧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불안에 휩싸이는 것은 오히려 실수할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4.2 숱한 죽을 고비

비행사로 살아가는 동안 글렌은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

글렌은 이런 일들을 그의 회고록 ‘존 글렌John Glenn’에서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마치 장을 보러 갔다가 주차장에서 쇼핑카트와 부딪힐 뻔한 일을 말하듯이 말이다.

글렌은 시험 비행 조종사 특유의 냉정함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죽음의 문턱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면서도,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넘겼다.

4.3.체크리스트와 체크광

그 과정에서 글렌은 평생 자신의 ‘행동 원칙’으로 삼게 될 다른 인코딩들을 발견했다. 그는 체크리스트와 유난히 잘 맞는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체크광”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륙 전에는 확인하고, 다시 확인하고, 또다시 확인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인코딩도 숨어 있었다. 그는 자기 일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진심으로 좋아했다. 눈에 띄는 성과 뒤에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고된 준비와 세세한 작업이 있었고, 글렌은 그런 일을 견디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 잘 맞는 사람이었다.

5.변화를 즐기는 인코딩

글렌은 또 하나의 인코딩을 삶 전체에 걸쳐 꾸준히 발휘했다. 바로 다가오는 변화의 한복판에 스스로 뛰어드는 본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는 전투기의 중심이 점점 제트기로 넘어가고 있다는 흐름을 읽었다. 동시에 공군이 해군보다 제트기 훈련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그래서 글렌은 해군에 ‘우리 부대의 누군가’를 공군의 제트기 교관 훈련 과정에 보내자고 제안했다. 해군이 이를 받아들이자, 글렌은 그 ‘누군가’로 자신이 직접 나섰다.

5.1 한국전 참전

그는 한국전쟁에서 60회가 넘는 임무를 수행했고, 적군의 미그기 세 대를 격추했다. 이런 전투 경험은 이후 제트기의 한계를 넓히던 최정예 비행사 집단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초음속 항공기 시험 비행사로 다시 자원했다.

5.2 제트기 속도기록에 도전

35세가 되었을 때도 글렌은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미국 횡단 제트기 속도 기록을 깨기 위한 특별 임무였다.

당시 최고 기록은 공군이 보유하고 있었다. 글렌은 해군의 최신형 F8U 크루세이더 초음속 제트기라면 그 기록을 깰 수 있다고 설득했다.

프로젝트를 제안한 사람이 글렌이었기에 임무 역시 그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기존 기록을 21분이나 앞당기며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5.3 미래의 한 가운데로!

단계가 바뀔 때마다 글렌은 늘 먼저 미래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누군가에게서 이런 능력을 배웠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 성향은 아주 일찍부터 나타났고, 글렌은 이를 수십 년 동안 반복해서 활용했다.

37세가 된 글렌은 ‘머큐리 계획Project Mercury’의 최초 우주 비행사 7인 가운데 유일한 해병대 출신으로 선발되었다. 동시에 최고령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40세가 되던 해, 그는 미국인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돈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이는 평생 그의 이름과 함께 평생 남을 업적이었다.

6.프레임 안에서 프레임 밖으로

결국 글렌은 자신에게 다시 비행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그는 우주 프로그램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1년 뒤에는 미 해병대에서도 전역했다. 43세가 되었을 때, 글렌은 인생의 ‘절벽’을 맞이했다.

6.1 상원의원 도전

그는 절벽이 찾아왔을 때, 이미 다음 목표를 정해두고 있었다. 바로 미국 상원의원이 되는 것이었다. 글렌이 실제로 의회에 들어가기까지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그는 로열크라운 콜라Royal Crown Cola, RC회사의 임원으로 일했다.

글렌은 사업가로서 무난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전 삶과 비교하면 그는 분명 프레임 밖에 있었다. 번개 그 자체가 아니라,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반딧불이에 가까웠다.

7.선거, 사회적 전투

1973년, 52세가 된 글렌은 다시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이미 두 번 실패한 뒤였다. 정치 선거는 일종의 사회적 전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글렌 안의 전투 본능이 정확히 되살아났다. 그는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상대 후보의 선거 캠페인을 사실상 격추시켰다.

이 전투 본능 덕분에 글렌은 오하이오주의 모든 카운티에서 승리했고, 거의 25년에 걸쳐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7.2 상원의원, 딱 맞는 옷

상원에 입성한 뒤, 글렌은 다시 확실하게 자신의 프레임 안으로 돌아왔다. 물론 상원에서는 죽음 직전의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움직이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그는 개인 비행기를 계속 몰고 다녔다. 하지만 상원이라는 공간은 그의 다른 인코딩들을 강하게 끌어냈다. 체크리스트를 좋아하던 성향, 세부 사항에 깊이 파고드는 습관, 반복적이고 고된 실무를 꾸준히 해나가는 능력 말이다.

7.3 새로운 인코딩

그는 화려하지 않은 입법 실무와 놀라울 만큼 잘 맞았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그는 취임 후 첫 2년 동안 상원 본회의에서 35건 이상의 수정안을 연속으로 통과시키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글렌은 이전에는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인코딩들을 발견했다. 특히 위원회 활동이나 소규모 입법 그룹에서 일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글렌의 정치적 인코딩은 그가 말한 “상식적인 중도”를 구현하는 데 있었다. 흥미롭게도 글렌이 상원의원으로 보낸 시간과 비행에 몰두했던 시간은 정확히 같았다. 둘 다 24년이었다. 그는 ‘연속 고슴도치’형 삶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8.프레임 밖으로, 대선 출마의 좌절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큰 실패가 하나 있었다. 그는 한 번, 스스로 프레임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바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였다.

글렌이 60세가 되었을 때, 뉴욕 타임는 “존 글렌의 대통령 카운트다운”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사람들은 그를 차세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전쟁 영웅 출신에 친근한 미소를 지닌 온건파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로, 미국의 거대한 중도층까지 폭넓게 끌어안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기대했다

8.1 아이젠하워와 다른 점

아이젠하워는 거대한 군 조직을 운영하고 지휘하는 데 강한 사람이었다. 대규모 선거 조직을 꾸리고 이끄는 일에도 잘 맞았다.

이는 대통령이라는 행정 책임자의 역할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반면 글렌은 대부분의 시간을 조종석 안에서 혼자 보냈다. 그의 인코딩은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9. 인생 최대 실패의 하나

그는 대규모 대선 캠페인에 필요한 모금 활동 자체를 몹시 꺼렸다. 출마 선언을 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글렌은 초반 경선 부진과 막대한 선거 빚을 남긴 채 공식적으로 대선 도전을 접었다.

훗날 그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인생 최대의 실패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는 프레임 밖으로 끌려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오래 헤맸다.

10. 다시 우주로!

77세가 되었을 때, 그는 또 하나의 인코딩을 다시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였다. 우주로 돌아간 것이다. 잠깐, 77세에 다시 우주로 갔다고? 글렌은 비행에 대한 사랑과 우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한 번도 잃지 않았다

글렌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주 비행사 수준의 신체검사까지 다시 통과했다. 프로젝트 불릿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구상한 임무에 가장 먼저 스스로를 투입하는 본능이 다시 작동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했고, 지구를 134바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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