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만능사원 오오마에’(원제 파견의 품격)는 한국에서도 ‘직장의 신(2013년)’으로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일본의 종신 고용문화속에서 파견제가 도입되면서 정규직과 파견직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갈등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드라마속에서 한 조직에 속해 함께 일을 하지만 신분에 따라 임금과 처우가 크게 다릅니다. 예를 들어 구내식당의 카레 가격이 사원과 파견직이 다릅니다. 파견직에 더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IMF이후 기업이 비용절감을 이유로 다양한 형태의 고용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무기계약직, 계약직, 파견직, 단기 계약직 등이 그런 고용형태에 속합니다.

복잡한 고용형태는 직장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분제로 작용합니다. 나아가 조직의 단합을 해치고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마련입니다.

김주성 노원구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의 ‘동료의 힘’은 서로 불신하고 각자 도생 문화가 만연한 조직의 장을 맡아 각자 주인처럼 일하는 조직으로 바꾸기까지 어떤 일이 있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대화가 없는 조직

2024년 3월 노원구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취임을 했다. 봄이지만 공단 안의 공기를 여전히 차가웠다.

얼어붙은 조직도 언젠가는 녹는다. 그것은 강한 힘이 아니라 꾸준한 온기와 인내로 가능하다. 나는 한 방울의 물이 되기로 했다.

첫 출근날 복도에서 만난 직원들은 어색한 인사만 건넬뿐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 않았다. 직원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기대보다는 의구심이었다.

2. 잦은 이사장 교체

직원들의 80% 이상이 노원구 전체에 흩어져 근무하고 있었고, 노상 주차장 등 에서 근무하는 1인 사업장 동료들도 많았다.

형식적인 취임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직원들의 사무실을 일일이 찾아 인사를 했고, 근무하는 현장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누었다.

외부 공모를 거쳐 들어온 이사장을 궁금해하면서도 임기나 채우가 갈까하는 의구심의 눈길도 있었다.

지난 4년동안 이사장이 세번이나 바뀌었고 두 명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취임전에 이사장 공백이 8개월이 되었고, 그동안 직원들은 방향을 잃은 배처럼 표류하고 있었다.

3.파업이 남긴 상처와 불신

2020년 파업은 조직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노원구청에서 한달동안 농성하며 싸웠던 그 시간은 조직의 기반을 흔드는 지진과도 같았다. 직원 사이에 균열이 생겼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아 아픔이 오래 남아 있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거리감이 있었고, 신뢰의 기반이 무너진째 조직은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문화속에서 침체되어 갔다.

4.새 이사장에 대한 불신

“새로 오신 이사장님도 금방 가실 거죠?” “임기 채울 수 있을까? 상급기관 눈치보느라 바쁠텐데, 우리 신경쓰겠어?”

복도에서 우연히 직원들의 대화를 들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들을 탓할 수 없었다.

4.1 불신의 뿌리, 파업

노원구시설관리 공단은 지역 유일의 공기업으로 18년동안 생활체육시설, 주차시설, 노원 구민의 전당 등 문화시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조직이다.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 복리증진에 크게 기여를 했지만 일반직, 무기계약직,계약직 등 다양한 직군이 혼재하면서 승진과 인사정책에 문제가 누적됐고, 현장 애로 사항도 개선되지 못했다.

그런 갈등으로 인해 2020년 파업사태가 벌어졌고, 노사갈등속에 리더십도 실패하는 바람에 모두 자기보호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기업인 출신인 나를 바라보는 의구심도 클 수 밖에 없었다.

5.동료라는 호칭을 제안

첫 전체 회의에서 열정적으로 동료라는 호칭을 제안하는 등 비전을 제시했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뿐이었다. 한 중간관리자가 피로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2020년 이후로 오신 이사장님 마다 혁신, 변화, 소통을 외쳤어요. 그런데 모두 중도에 그만두셨잖아요”

처음에 기대했지만 매번 실망만 했어요. 그냥 조용히 일하면서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변화의 피로감에 지친 직원들은 이미 방어막을 쳐놓고 있었다. 그들에게 나의 새로운 시도는 또 다른 이사장의 일시적인 열정으로 보였을 것이다.

6.상하간, 부서간 불신과 불만

파업이 남긴 상처는 여전했다. 고참직책자에 대한 후배들의 불만이 팽배했고, 부서와 부서간 불신이 컸다. 흡연실에서 들려오는 직원들의 대화들은 서로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었다.

파업과정에서 누적된 불만으로 인해 책임을 나누기 보다 서로를 탓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모두가 나는 억울해 하는 감정을 쌓고 있었다.

협업하자고 제안했더니 일만 더 복잡해지고 실속은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다른 부서일을 하찮게 보는 것이 10년 넘게 그래왔는데 어떻게바꾸겠어요?

심지어 같은 팀안에서도 세대간 고용형태간 갈등이 존재했다.

7.직원의 이사장에 대한 태도와 기대치

“이사장 임기는 3년이지만 구, 시의원은 길게 12년까지 하잖아요. 부장들이 퇴직하려면 길게 10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3년짜리 이사장님이 중요하겠어요.”

누구와 더 오래 일할 것인가가 중요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제도나 빠른 성과가 아니었다. 먼저 기능하는 조직이 아니라 존재하는 사람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매일 출근하면서 오늘도 한명의 마음을 얻자라고 다짐했다.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없지만 실패에서 배우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자 했다.

성급하게 강요하지 않고 상처와 불신을 인정하며 꾸준한 행동으로 신뢰를 쌓고자 했다.

7.1.치유가 먼저

복도에서 우연히 직원들의 대화를 들었다. 이사장이 직원 이름을 외우려고 하고 생일축하 전화를 직접한다고 하더라. 진심인 것 같더라는 이야기였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희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을 통해 크게 자라나고 있었다.

8.규정뒤에 숨은 사람들

“규정에 없다 전례가 없다. 소관이 아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소극성 부족으로 생각했다. 현장을 돌면서 다른 해석을 하기 시작했다.

부서간 벽치기를 분할손이라고 불렀다. 회계에 잡히지 않지만 분명 조지의 체력을 갉아먹는 비용이다. 공단의 9개 팀은 9개의 섬처럼 떨어져 있었다.

8.1 서로 공을 넘기지만 패스는 없었다.

공 떠넘기는 단절이고 패스는 연결이다.

아무도 틀리지 않는데 모두가 손해보는 상태가 분할손의 본질이다. 규정에 없다는 것은 일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었다. 사일로는 게으름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

그래서 조직은 아주 안전한 상태로 스스로를 고정시켰다.

8.2.규정을 지키는 행정의 진짜 이유, 자기 보호

행정의 4단계는 다음과 같다.

1단계 규정을 지키는 행정, 2단계 효율을 높이는 행정, 3단계 방향을 보는 행정, 4단계 책임의 행정

조직이 방어하고 있을 때 해야할 일은 돌파가 아니라 해제였다. 그래서 연설대신 질문을, 지시 대신 대화를 택했다.

9.불만이 많다면, 애정도 깊다는 뜻

불만이 많은 직원을 문제락도 보지 않고 잠재적 리더로 본다면, 조직의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2024년 여름

공단의 현장에서 17년차 김민수 과장을 만났다.

그는 현장 문제를 잘 알고 조직에 애정이 깊고 소신있고 후배 잘 챙기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또 무슨 쇼를 하려는가는 표정이었다.

9.1 변화의 시작,리더로 인정하는 것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만은 애정의 다른 표현임을 깨달았다. 조직을 사랑하기에 더 아파하고 더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경험이 담긴 조언은 조직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하자,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몇주후 그가 찾아와 건설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비효율적인 프로세스, 개선 가능한 시스템, 직원 불만고 기대 등을 담은 메모를 건넸다. 이후 김과장은 변화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를 따르던 직원들도 함께 변하기 시작했다.

조직의 변화는 한 사람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불만이 많은 직원을 잠재적 리더로 인정했을 때 정말로 리더가 되었다.

10. 동료로서 이름을 불러주기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구 처럼 서로를 오래 보고 자세히 볼때 동료라는 이름의 의미가 드러난다.

체육센터 기간제 사원으로 입사한 최영호님을 만나 “새로운 동료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험이 우리 조직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30년 직장생활에서 대표로부터 동료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처음”이라며 “아직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품질관리 분야 경험을 살려 안전 관리 시스템을 꼼꼼히 점검하고 개선안을 제시했다.

11.위계적 호칭 정리 정돈

공간에는 고용형태, 직책, 나이 등에 따라 다양한 호칭이 존재했다. 하지만 위계와 거리감을 낳는 도구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반장이라는 호칭이었다. 연배가 높은 사람은 이 호칭을 좋아했지만, 젊은 사람들은 이 호칭에 반감이 있었다. 그래서 주임으로 변경을 했다.

호칭은 형식이 아니라 철학이다.

11.1 300명 구성원 이름과 얼굴 외우기 시도

동료라는 호칭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이번에는 신뢰를 쌓기 위해 먼저 다가가는 태도를 실천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300명에 달하는 구성원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을 시도했다. 그러자 각자 자부심을 느끼며 자신의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월계센터의 한 강사는 신설 프로그램을 제안해 실제로 실행되었다.

이너 매주 현장의 소리 시간을 만들어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이 과정에서 한 젊은 직원이 주차 관제 센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 안은 큰 예산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었지만 구청과 소통하면서 7억원의 예산을 확보하였다.

11.2 잘못된 지시를 인정하는 용기

나는 잘못된 지시를 내린 것을 알자마자 이사장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랬더니 현장 직원들이 나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자신들도 실수를 인정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12. 봄이 조금씩 오는 느낌

서서히 조직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직원들이 커피를 건네는 등 먼저 다가 오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출근하는 것이 즐겁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서로 인사하고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조직의 봄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

12.1 300명 전원 한명씩 만나기

구청, 주민, 공단 구성원 공단 경영이 세 개의 축위에 균형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쪽으로 기울면 다른 쪽이 흔들린다.

구청의 방향을 좇으면 현장이 지치고, 주민 만족만 추구하면 구성원이 무너지녀, 구성원만 챙기면 공공기관으로서 책임을 잃는다.

표면적인 변화만으로 부족했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구성원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알기 위해 직접 이야기를 청취하기로 했다. 300명 전 직원을 한명 한명 만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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