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는 것처럼, 상처받지 않고 자라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내면의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마음 속 깊은 지하에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과거에도 내내 그랬습니다. 단지 그 기록이 없을 뿐이죠. 상처를 치유하려면 먼저 상처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아주 실랄하게 자신의 마음속 상처를 들여다 본 소설가이자 철학자 도스토옙스키의 고백같은 소설을 통해 우리도 각자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1. 개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Fyodor Dostoevsky, 1821-1881)
사형대에서 살아 돌아온 뒤, 인간 내면의 어두운 지하를 파고든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를 졸업한 뒤 문학에 뛰어들었다. 1849년 사회주의 사상 모임에 연루되어 총살형을 선고받았으나 형 집행 직전 극적으로 감형되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4년을 버텼다.
죽음의 문턱과 수용소의 시간을 통과한 그는 이전과 다른 작가가 되어 돌아왔다. 이상과 이념보다 더 깊은 곳, 곧 인간의 모순과 수치심, 자의식과 자기파괴의 충동을 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1864년에 발표한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아내와 친형의 죽음이 잇따르던 시기, 그는 한 인간이 스스로를 증오하면서도 인정받기를 갈망하고, 자유를 원하면서도 자기 안에 갇히는 과정을 지하인의 목소리로 써냈다. 죽어가는 아내 곁에서 그의 펜 끝은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지하인이 리자를 모욕하고 상처 입히는 장면은 그렇게 완성됐다. 이 작품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자의식, 냉소, 죄책감, 모욕감, 자기분열의 주제는 훗날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이어진다. 카프카가 도스토옙스키를 “내 진짜 혈육”이라 불렀고, 카뮈와 사르트르, 니체와 프로이트가 그에게서 현대 인간의 불안한 얼굴을 읽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한 비뚤어진 남자의 고백을 넘어,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행동하지 못하고, 타인을 경멸하면서도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는 인간의 초상을 최초로 정면에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1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시간의 순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소설이다. 먼저 독자가 만나는 제1부는 마흔 살 지하인의 현재 독백이다. 이 제목은 단순히 지하에 사는 사람의 기록을 뜻하지 않는다. 지하는 주인공의 의식과 관념이 응축된 공간이며, 실제 삶을 비틀어 비추는 거울의 공간이다. 엄밀히 말해 원제에는 ‘지하생활자’라는 뜻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디에 사는가가 아니라, 어디로부터 말하고 있는가다.
그는 이미 지하에 있다. 세상과 관계를 끊은 채, 자기 안으로 끝없이 파고들며 자신의 의식과 분노, 수치심과 모순을 기록한다. 뒤이어 펼쳐지는 제2부는 스물네 살 시절의 과거 에피소드다. 그는 한때 지상에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고, 관계를 원했으며,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매번 현실 앞에서 무너졌고, 결국 다시 자기 안의 지하로 숨어들었다.
1-2
제1부는 의식이 켜진 방과 벽 앞에 선 인간으로, 제2부는 진눈깨비 속의 지상과 실패한 구원으로 읽는다.
“인간은 어떻게 자기 안에 갇히는가.” “생각은 어떻게 삶을 잠식하는가.” “관계를 원하면서도 왜 끝내 관계를 망가뜨리는가.” 지하인은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대신 자기 안으로 내려간다. 그는 행동하지 않고 생각한다. 살지 않고 의식한다. 그리고 그 과도한 의식은 마침내 병이 된다.
2. 내용
2-1 제 1부 지하실
지하인은 누구보다 관념 속에 파묻혀 산다. 독서와 글쓰기, 몽상과 회상을 통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먼저 대본을 짠 뒤, 지상으로 올라가 그것을 연기하려 한다.
현실이 관념을 낳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현실을 앞질러버리는 것이다. 지하와 지상의 이 역전된 구조는 ‘아날로그 트윈’45이라 부를 만하다. 이때 지하실은 지하인이 동경하는―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살아 숨 쉬는 삶’(живая жизнь)을 반추하고 준비하는 공간이다. 그가 먼 친척이 남긴 유산으로 살아가며 직장을 그만두고 지하실에 틀어박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지하인이 설정한 아날로그 트윈은 지하를 꿰찬 ‘나’와 지상을 활보하는 ‘그들’ 사이의 대결 구도로 흐른다. 자신은 혼자인데 저들은 모두 한통속이다.
지하인은 늘 고독한 싸움을 준비해야 하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처절하게 승리를 위해 싸우지만 패배는 그의 몫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인의 무기는 독서와 몽상, 가면과 매번 연기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아인 데다 먼 친척의 손에 이끌려 원치 않는 기숙학교에서 불행한 유년을 보냈으며, 작고 왜소하기까지 해서 늘 따돌림을 받는 외톨이 신세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패배가 예정된 그가 ‘그들’에게 승리하려고 손에 ‘책’을 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비단 이 작품만 아니라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에게 독서는 ‘현실로부터 도피할 유일한 출구’인 동시에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들에게 행동할 모티프를 제공하는 원천이었다.
지하인에게는 그것이 뒤틀린 방식으로 나타난다. 독서는 아날로그 트윈을 구현할 대본이자 비록 망상일지라도 지상의 패배를 승리로 역전할 무기였던 셈이다. 실제로 여러 에피소드에서 그는 승리했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 승리가 오직 그의 관념 속에서만 유효하다는 점이다. 장교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지하인은 넵스키 거리의 당구장에서 한 장교에게 마치 물건 취급을 받고 자신만의 망상에 빠져 복수를 계획한다.
장교를 풍자하는 글을 써서 잡지에 기고하려 하고, 쓸데없는 ‘눈빛 결투’를 벌이고, 한껏 차려입은 채 그와 어깨를 부딪칠 계획을 세운다. 끝내 장교가 그를 ‘밟고’ 지나갔음에도 주인공은 장교가 부딪힌 뒤 보낸 눈빛 하나에 자신이 승리했다고 믿어버린다.
즈베르코프의 송별회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지하인은 세 시간 동안이나 같은 공간을 무의미하게 오가며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나 끝내 무시당한다. 실상 그는 몹시 고독했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회복해 세상으로, 지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패배를 의미했다. 결국 그는 돈도 없이 시모노프에게 손을 벌리며 유곽으로 향하는 마차에 오른다. 시모노프는 멸시하며 돈을 내던지고, 지하인은 그 돈을 주섬주섬 챙겨 마차에 오른다. 이렇듯 관념 속의 승리는 언제나 현실의 패배를 덮는다. 그날 밤 마차에서 본 거리와 보도, 그 위로 쏟아지던 진눈깨비처럼.
2-1-1 ( 첫 문장)
나는 병자다…. 나는 못된 인간이다. 영 매력이라고는 없는 인간이다. 아마 간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무슨 병인지도 모르며,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다. 나는 의학과 의사를 정말 존경하기는 하지만 현재 치료를 받고 있지는 않고 치료를 받아본 적도 없다.
게다가 난 미신을 믿는다. 하지만 적어도 의학을 존중할 만큼은 미신을 믿는다. (나는 미신을 믿지 않을 정도로 배운 축에 드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미신을 믿는다.)
여러분은 분명 내가 웃기려 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 짚은 것이다. 난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쾌한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내 수다스러움에 짜증이 나서(여러분이 짜증났다는 것은 진작 느끼고 있다) 대체 내가 어떤 인간이냐고 묻는다면 평범한 8등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난 그저 먹고살려고 근무했다(이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먼 친척 중 한 분이 나에게 6,000루블을 유산으로 남겨주자, 나는 즉시 직장에 사표를 내던지고 방구석에 들어앉았다. 예전부터 나는 이곳에 살았으나 지금은 완전히 틀어박히고 말았다. 내 방은 도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너저분하고 초라하다. 우리 집 하녀는 시골 아낙네로, 늙고 무지하고 사악한 데다가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사람들은 페테르부르크의 기후가 내 건강에 좋지 않으며 얼마 안 되는 재산을 가지고 이곳에 사는 것은 분에 넘친다고 말한다. 나도 안다. 그 잘난 척하는 조언자들과 남의 말에 고개나 끄덕이는 자들보다 내가 더 잘 안다.
하지만 난 페테르부르크에 남을 테다.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참나, 내가 떠나든 말든 대체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품위 있는 인간이 가장 신나게 떠들어댈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아는가?
2-1-2
이 모든 일은 의식이 극도로 고양되고 날카로워진 탓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진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자신을 바꾸기는커녕 손쓸 방법조차 모른다. 이를테면 고양된 의식의 결과는 이런 것이다.
‘내가 비열한 놈인 건 맞다, 하지만 내가 비열한 놈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이쯤 하자…. 말만 잔뜩 늘어놓았을 뿐 대체 무얼 해명했다는 말인가? 앞에 말한 쾌감이 설명되었는가? 그럼에도 난 계속 해명하겠다. 끝장을 보고야 말 테다! 내가 펜을 쥔 이유도 그 때문이니까…. 이를테면 나는 자기애 덩어리다.
나는 곱추나 난쟁이처럼 의심 많고 성을 잘 낸다. 하지만 맹세코 누군가 내게 따귀를 한 대 날려주면 차라리 더 기뻤으리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 있었다. 농담이 아니다. 그런 비참한 상황에서도 나는 분명 나름대로 쾌락을 찾아냈을 것이다.
비록 절망 속에서나 찾는 쾌락이겠지만 말이다. 원래 절망 속에서 가장 강렬한 쾌락을 느끼는 법이고, 자기 처지가 막다른 길임을 뼈저리게 의식할 때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물며 뺨을 맞는 순간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당신이 어떻게 곤죽으로 으깨어졌는지 뼈저리게 느끼며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2-1-3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모든 일의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억울한 것은, 내게 죄가 없지만 이를테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먼저, 내가 유죄인 까닭은 내가 내 주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영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내가 주위 사람들보다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나는 평생 곁눈질만 하며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유죄인 까닭은, 설령 내게 관대함이 있다 한들 그것이 아무 쓸모도 없다는 의식 때문에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관대함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를 용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를 때린 자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때린 것이니 용서하고 자시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록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모욕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관대함을 베풀기는커녕 반대로 모욕한 자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도 나는 누구에게도 복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설령 그럴 능력이 있다 해도 감히 나서서 행동으로 옮길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엄두조차 내지 못할까? 이에 대해서는 따로 두어 마디 덧붙이고 싶다.
2-1-4
“당연하지. 치통 속에도 쾌락이 있다.” 난 그렇게 대답할 작정이다. 난 한 달 내내 치통을 앓은 적 있다. 그래서 잘 안다. 치통을 앓으면 대개 잠자코 있지 않고 울화통을 터뜨리고 신음한다.
그러나 그건 그저 아파서 내는 신음이 아니라 다분히 교묘하고 악의적인 신음이다. 그 교묘함에 묘미가 숨어 있다. 고통받는 사람은 그 신음 속에 자기 쾌락을 드러낸다. 거기서 쾌락을 느끼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런 신음을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몸종들의 가슴을 황금 바늘로 찔러 그들이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을 치는 것을 보며 쾌락을 느꼈다고 한다(로마 역사에서 예시를 가져온 것을 양해하라).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것은 굳이 표현하자면 야만의 시대에 있었던 일이지만 (역시 굳이 표현하자면) 아직 누군가는 바늘에 찔리고 있는 이상,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우리가 저 야만적인 시대보다 상황을 명확히 보고 있지만, 이성과 과학이 가리키는대로 행동하기까지는 한참 멀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낡고 어리석은 습속은 사라지고, 온전한 과학과 건전한 사고가 인간 본성을 다시 길들여 마침내 정상 궤도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말할 것이다.
2-1-5
고통이야말로 의식의 유일한 원천이다. 비록 처음에 나는 의식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이라고 말하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의식을 사랑하고 그 어떤 만족과도 바꾸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이를테면 의식은 2×2보다 높은 곳에 영원히 존재한다.
2-1-6
한때 내게도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폭군이었고, 그 친구의 영혼 위에서 끝없이 군림하기를 원했다. 나는 그를 둘러싼 환경에 증오심을 불어넣었다. 그를 에워싼 것들을 경멸하고 단호히 끊어내라고 요구했다.
나의 지나치게 열정적인 우정에 그는 겁을 먹고 말았다. 눈물을 흘리고 경련까지 일으켰다. 그는 순진하고 자비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가 내게 온전히 의지하자마자 그를 증오하였고, 나에게서 떼어내기까지 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를 이기고 굴복시키려 접근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은 굴복시킬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내 친구는 누구와도 닮지 않은, 아주 드문 케이스였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게 주어진 직업을 내팽개치고 모든 관계를 끊은 채 과거를 저주하며 그 위에 재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제 와 내가 시모노프 녀석과 엮이게 된 것인가.
2-2 제2부 진눈깨비 때문에
구원은 끝내 오지 않는가 지하인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한다. 동시에 그 사랑을 망가뜨린다. 누군가를 구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구원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우월해지기 위한 명분이 된다. 리자와의 만남은 이 소설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이다. 지하인은 그녀를 구원하려는 듯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녀를 통해 자신의 관념과 허영을 확인하려 한다. 그는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 앞에서 잔인해지고,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관계를 착취한다.
2-2-1
“말은 쉽지! 지금이야 젊고 예쁘고 풋풋하니 그만큼 대접을 받겠지. 하지만 1년만 지나도 넌 예전 같지 않을 걸. 시들어버릴 거야.” “1년이요?” “아무튼 1년 뒤면 넌 가치가 떨어질 거야.” 나는 한껏 우쭐해져서 말을 이어갔다.
“넌 지금보다 더 밑바닥인 곳으로 흘러가게 될 거야. 1년 더 지나면 또 다른 곳으로 갈 거고, 그렇게 바닥을 전전하다가 한 7년쯤 지나면 센나야 광장의 지하로 굴러떨어지게 될 거야. 그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지.
운 나쁘게도 병이라도 옮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를테면 심장이 약해지거나… 아니면 감기라도 호되게 앓는다거나 말이야. 이런 생활을 하다 보면 병이 오래가는 법이지. 한 번 병에 걸리면 좀처럼 떨쳐내기가 어렵지. 그러다 죽고 마는 거야.” “뭐, 그러면 죽는 거죠.” 그녀는 악의에 사로잡혀서 대답하고서는 몸을 뒤척였다. “그러면 정말 불쌍하지.” “누가요?” “인생이 불쌍한 거지.”
2-2-2
“있잖아, 리자. 내 얘기를 하나 해주지! 만약 나도 어렸을 적에 가족에게 보살핌을 받았다면 지금 이런 꼴은 되지 않았을 거야. 난 이런 생각을 자주 해왔어. 가족이 아무리 끔찍하다 한들 아버지하고 어머니잖아. 적도 아니고 남도 아니라고. 적어도 1년에 한 번쯤 사랑을 받겠지.
어쨌든 넌 네가 가족이 있다는 걸 아니까. 집이란 게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가족 없이 자랐어. 그래서 지금처럼 비뚤어진 거지…. 매정한 사람이 되었지.” 난 다시 한번 기회를 노렸다. ‘아마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웃기지도 않는군. 도덕이나 설교하고 있는 꼴이라니.’ “만일 내가 아버지이고 내게 딸이 있다면 나는 아들보다 딸을 더 사랑했을 텐데. 정말이야.” 나는 그녀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화제를 돌리며 말을 시작했다. 내 얼굴이 빨개졌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왜죠?” 그녀가 물었다. 내 말을 듣고 있었다!
2-2-3
당연히 아버지와 어머니가 더 단단하고 가까워지지 않겠어?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걸 짐으로 여긴다지. 누가 그런 소리를 하지? 하늘이 주신 축복이야! 리자, 너 어린아이들을 좋아하나? 난 끔찍이 사랑해. 뺨이 장밋빛으로 물든 사내아이가 네 젖을 빨고 있다고 상상해봐. 세상에 자기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에게 등을 돌릴 사내는 없어! 발그레한 아기가 살이 통통하게 올라 온몸을 쭉 뻗으며 재롱을 부리는 거야.
작은 손발은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깨끗하고 앙증맞은 손톱은 쳐다보기만 해도 웃음이 날 정도야. 눈망울은 벌써 세상 이치를 다 꿰어 보는 듯하지. 그러다 젖을 빨 때는 조그만 손으로 네 가슴을 만지며 장난을 치지. 아버지가 다가가면 아이는 젖을 빨다 말고 몸을 한껏 뒤로 젖히고 아버지를 쳐다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겠지.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말이야.
그러고는 또다시 젖을 빨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다 이가 나면 엄마의 가슴을 깨물고는 곁눈질로 쳐다볼 거야. ‘보세요, 방금 내가 깨물었어요!’ 하는 표정으로 말이야. 남편과 아내와 아이, 그렇게 셋이 모여 있을 때를 완전한 행복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어? 그 순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참아낼 수 있겠지. 리자,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해! 남을 탓하기 전에 말이야.” ‘이런 장면… 이런 장면들로 널 사로잡아야 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2-2-4
“저는… 그곳을 아예 떠날 생각이에요.” 어떻게든 침묵을 깨보려 그녀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가련한 것! 하필이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순간에, 하필이면 나처럼 어처구니 없는 인간을 상대로 꺼내서는 안 되는 그 이야기를 꺼내고 말다니.
나는 그녀의 미숙함과 그 불필요한 솔직함이 가여워서 가슴이 에일 듯했다. 하지만 내 속에 추악한 무언가가 즉시 내 연민을 짓밟았고, 나를 더욱 부추겼다. ‘세상 따위 망해버리라지!’ 5분이 더 흘렀다.
2-2-5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네가 내 허름한 실내복 차림을 봤다는 사실을, 내가 미친개처럼 아폴론에게 달려드는 꼴을 봤다는 사실을 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네 구원자요, 한때 영웅이었다는 자가 자기 하인에게 털 빠진 개처럼 덤벼들고, 하인 녀석은 그를 비웃는 꼴을 말이다!
아까 내가 수줍어하는 여자애처럼 네 앞에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서도 널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지금 네게 이 모든 것을 털어놓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결코 널 용서하지 않겠어! 그래, 넌 이 모든 일에 혼자서 책임을 져야 해. 네가 마침 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고, 내가 파렴치한 놈이기 때문이야.
난 세상에서 제일 역겹고 제일 우습고 제일 보잘것없고 제일 어리석고 제일 시기심이 많은 벌레 같은 놈이야. 세상에 널린 다른 벌레만도 못한 녀석들은 나보다 나을 것도 없으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평생토록 나만 온갖 하찮은 것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살고 있어.
이게 바로 나야! 네가 이걸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네가 거기서 죽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내가 지금 네게 다 털어놓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앞으로 내가 널 평생토록 얼마나 증오할지 이해나 할 수 있겠어?
사람은 평생에 딱 한 번 이렇게 자기 속을 드러내놓는 법이지…. 그마저도 이런 히스테리 발작이나 일으키면서 말이야! 대체 나한테 뭘 원하지? 다 듣고도 왜 내 앞에 가만히 서서 날 고문하는 거지, 왜 당장 가버리지 않는 거지?”
2-2-6
‘어쩌면 당장 내일이라도, 오늘 내가 그녀의 발에 입을 맞췄다는 바로 그 이유로 그녀를 몹시 증오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과연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오늘 또다시 수백 번은 내 주제 파악을 하지 않았나? 나는 다시 그녀를 괴롭히고 말 거야!’
2-2-7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따금 소란을 피우는 것일까? 무슨 이유로 부질없는 고집을 피우고,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우리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정작 부질없는 요구가 이뤄지면 오히려 우리에게는 독이 되고 말 텐데 말이다.
한번 시험해보시라. 우리에게 이를테면 더 많은 자율성을 주시라. 우리의 손을 풀어주고 활동 범위를 넓히고 감독을 소홀히 해보시라. 그러면 우리는… 맹세컨대 다시 구속해달라고 간청할 것이다. 여러분은 필시 내가 하는 말에 화를 내고 소리치고 발을 구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 자신에 대해서만, 지하실에 있는 당신의 그 비참함에 대해서나 말할 것이지, 감히 ‘우리 모두’라고 말하지 마시오.”
2-2-8 (소설의 마지막 문장)
우리는 사산아들이다. 게다가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지도 이미 오래이며, 그 사실을 갈수록 마음에 들어 한다. 그 묘미를 알아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어떤 식으로든 ‘관념’에서 태어나는 방법을 고안해내리라.
하지만 이쯤 하자. 나는 더 이상 ‘지하로부터’ 글을 쓰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나 이 역설가의 ‘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참지 못하고 계속 써나갔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멈춰도 될 것 같다.
3. 해설
진눈깨비는 비와 눈이 섞여서 내리는 것이다.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니다. 비라면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낼 것이고 눈이라면 더러운 것을 하얗게 덮어버릴 것이다. 진눈깨비는 씻어주지도, 덮어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대지를 질척거리게 하고 지상의 더러움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그런데 지하인은 이 진눈깨비를 좋아하며, 정확히 말하자면 빌미로 삼는다. 지상과 지하의 경계에 놓인 채 진창 속에서도 의식만큼은 영웅인 그에게, 진눈깨비는 기분 나쁘지만 꼭 필요한 계기다.
1부 마지막에 40세의 지하인은 흩날리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24세 때의 에피소드를 들춰낸다. 그런데 여기서도 지하인은 과거를 회상하는 한편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 관념이 현실을 앞서듯, 이야기를 만들려는 의지가 기억보다 먼저다. 이는 2부에서 펼쳐질 에피소드가 순수한 기억도 완전한 허구도 아닌 경계에 있음을 암시한다.
3-1
지금 눈이 내린다. 누르스름하고 탁한 진눈깨비에 가깝다. 어제도 내렸고 며칠 전에도 내렸다. 저 진눈깨비를 보니 지금도 내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한 일화가 떠오른다. 그래, 이것이 진눈깨비에 관한 이야기가 되도록 하자.
작중 진눈깨비는 그의 패배를 조소하듯―혹은 예견하듯―쏟아진다. 그가 즈베르코프의 송별회를 엉망으로 만든 뒤 유곽으로 향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는 “황량한 가로등이 눈안개 속에서 장례식장의 횃불처럼 음울하게” 빛나는 거리에서 진눈깨비를 맞으며 “모든 게 끝장”났다고 생각한다.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밤, 그가 들른 유곽에서 리자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리자는 『죄와 벌』의 소냐를 연상시킬 정도로 순진무구하고 따스한 감정을 지닌 인물로, 주인공을 가여워한다. 그런 그녀 앞에서도 지하인은 어김없이 자신의 지성과 공상을 앞세우고, 다른 매춘부의 죽음을 들먹이며 리자의 삶을 은근히 비난하고 그녀를 정서적으로 지배하려 한다.
하지만 앞서 장교나 즈베르코프와의 대결에서와 달리, 리자는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하인의 연기를 알아채기까지 한다. “당신이 하는 말은… 꼭 책에서 본 것 같아요.” 지하인은 당황하여 즉시 분개한다. 하지만 그런 반응이야말로 리자가 그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리자가 자신과 동류일 가능성에 내심 반가워하면서도 이제껏 지속해온 독서와 망상, 헛된 가정 따위가 처음으로 타인의 눈에 발각된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 집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네면서도 막상 그녀가 찾아올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은 그래서다. 관념 속의 구원자가 실상 얼마나 초라한 모습인지 탄로 날까 봐 겁을 집어먹는다. 3일 뒤, 지하인의 패배는 다시 한번 진눈깨비 속에서 가시화된다.
하필이면 진눈깨비가 쏟아지던 날, 하인 아폴론과 악다구니를 벌이던 그 순간에 리자를 맞닥뜨린다. ‘살아 숨 쉬는 삶’이 리자의 모습으로 찾아온 것이다. 현실의 삶은 끝내 그를 짓누른다. 그는 누군가의 구원자를 자처하는 서사 자체가 얼마나 낭만적이고 공허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그는 리자를 모욕하듯 5루블을 쥐여 준다.
하지만 리자는 그마저 거부한 채 지상으로 나가고, 지하인은 영문도 모른 채 이끌리듯 그녀의 뒤를 따라가다 황망히 멈춘다. 사방은 적막했다. 보도와 텅 빈 거리에 굵은 눈송이가 소복이 쌓여 마치 양탄자를 덮은 듯했다. 행인은 없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음울한 가로등 불빛만 헛되이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교차로까지 이백 보쯤 달려가다 멈췄다. 눈 속에서 모든 것이 정지된 듯 적막한 순간 그는 진실을 알아차린다. 리자를 지우려 했지만 정작 지워진 것은 자신이었다. 리자를 좇아 지상의 삶을 살아갈 가능성은 영영 사라졌고, 그는 늘 그래왔듯 ‘책에 쓰인 대로’ 아날로그 트윈 속을 살아간다.
분명 그는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의 만남―친구들과의 송별회와 리자와의 조우―을 통해 지상으로, 실제의 삶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무찔러야 할 적으로 대했고 패배 끝에 다시 지하로 은닉한다.
3-2
판도라 상자 속 추하고 비루한 진실 결말만 놓고 보면 이 소설은 한 비참한 남자의 패배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전체 구조를 다시 살펴보면 그의 패배가 잘 설계된 우회로를 따르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1부의 마흔 살 화자는 2부의 스물네 살 자신을 돌아본다. 그는 평생 ‘아름답고 숭고한 모든 것’을 좇았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것을 누리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 실패의 구체적 사례가 바로 2부의 리자와의 만남이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마흔이 된 주인공은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난 사악하기는커녕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악인이나 선인도, 비열한 놈이나 정직한 인간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 없었다. 나는 지금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 영리한 인간은 진정 무언가가 될 수 없으며 오직 바보만이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심술궂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위안으로 나를 달래며 남은 생을 보내고 있다.
3-3
어둡고 습한 페테르부르크의 지하실에서 인간과 소통을 그리워하며 몸부림치는 지하인의 절규를 읽어 나가다 보면 독자들은 점차 연민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우리 자신의 내면에 은밀하게 자리한 ‘지하인’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지하인의 속성을 숨기려 했던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지하인은 특별한 괴물이 아니다. 그는 우리 안의 깊은 곳,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은 지하층에 숨어 있는 한 가능성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자기해석에 갇히고, 상처를 되씹으며, 관계를 원하면서도 관계를 망가뜨리고, 현실보다 머릿속 대본을 더 믿는다.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불편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아름답고 숭고한 판도라 상자를 과감히 열어젖혀 그 안에 감춰진 추하고 비루한 진실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