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재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서울의 역사를 기억하다
– 사라진 청운시민아파트, 그 위에 들어 선 시인의 언덕
서울은 참으로 변화무쌍한 도시다. 헐어지고 세워지는 콘크리트 더미가 만들어내는 도시의 변화를 통해 역사를 엿보는 것 또한 재미다.
청운동 ‘시인의 언덕’ 역시 세월에 따라 모습을 바꿔왔다. 지금은 시인의 언덕이라 불리며 도심 속 공원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과거를 살펴보면 사연이 많은 언덕이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시인의 언덕은 ‘청운 시민 아파트’의 자리였고 50여년 전에는 북한 특수부대가 침입하는 등 분위기가 삼엄했었다. 그보다도 더 이전인 조선왕조 500년 동안은 궁이 내려다 보여 일반인들의 왕래가 일부 제한됐었다.
◆ 조선왕조 때 일반인 왕래 제한돼..
시인의 언덕에 올라서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남산타워를 중심으로 왼쪽 눈 끝에는 동대문 두산타워가 걸리고 오른쪽 눈 끝에는 세종로가 걸린다. 백성들이 이곳에 서서 왕궁을 훤히 내려다보는 것을 꺼린 조선시대 왕들의 염려가 그럴법하다.
실제로 500여년전 조선시대 왕들은 왕궁이 훤히 내려다보인 다는 이유로 시인의 언덕에 백성이 함부로 발길을 들일 수 없게 했다. 1503년 연산군은 인왕산에 자리 잡고 있던 사찰과 민가를 모조리 철거했다. 왕궁이 훤히 들여다 보이기 때문이었다. 연산군은 인왕산 입구에 경수조를 설치해 함부로 산에 오르는 것을 금했다.
조선시대 뿐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이 곳은 발걸음이 제한된 곳이었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인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 소속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근처까지 침입했다. 이들은 시인의 언덕 세검정 자하문에서 발각됐고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최규식 종로경찰서장이 순직했고 그의 동상이 자하문 앞에 세워져 있다.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동상을 통해 그를 만날 볼 수 있다.
2012년, 금기된 공간이던 시인의 언덕이 시민에게 돌아왔다. 단풍 든 가을 산 보다 화려한 색상의 등산복을 입은 이들이 가을 인왕산을 찾고 시인의 언덕에서 쉬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조선시대 성곽을 따라 내려오면 최규식 서장의 동상이 우두커니 서있고 그 뒤로 보초를 선 어린 군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개발 열풍에 휩싸여 청운시민아파트 건설되기도..
50여년 전 대한민국이 개발 열풍에 휩싸였을 때 시인의 언덕 또한 시대적 흐름을 같이했다.
1968년 12월 ’69 시민아파트 기본건립계획’이 발표됐는데, 실제로 다음해인 1969년에는 서울에만 406개 동, 1만5840가구 분의 시민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건설됐다. 그야말로 거센 개발 열풍이었다. 이 때 ‘시인의 언덕’이 위치한 인왕산 중턱에는 청운시민아파트가 들어섰다.
이후 청운시민아파트는 2007년 철거돼 공원으로 바뀌었다. 공원이 들어선지도 벌써 5년째인 이곳에서 이제 아파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인근 옥인동에서 40년을 거주한 한 부부는 “매일같이 이곳으로 산책을 온다”며 “낡은 청운시민아파트가 산 중턱에 있을 때는 미관 상 보기 좋지 않았는데 공원으로 바뀌어 훨씬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