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리딩]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_박훈_독서시작

메이지 유신은 1868년에 일어났다. 2018년은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맞는 해다. 1868년 사쓰마 · 조슈 · 도사 번은 막부 타도를 내걸고,  천황 복고를 위한 연합군을 결성해 에도 막부가 기거하는 황거의 출입을 봉쇄했다.
1868년 4월 천황군은 막부군을 타도하고, 막부의 쇼군이 살던 에도성을 확보하고 메이지 천황을 일본 정치의 중심에 복귀시켰다.
박훈 교수의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는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중 제6권으로 기획됐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러시아 등 동아시아 지역 질서를 흔드는 대 변혁의 시작이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중에서 유일하게 자국의 힘으로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헌법, 의회, 선거, 국민국가, 자본주의 등 서유럽에서 시작된 근대화의 물결은 당시 일본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낯선 것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왜 일본만 이를 신속히 받아들였고, 큰 파탄 없이 사회변혁에 성공했던 것일까? 대체 그 시기 일본 열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박훈 교수는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일본의 다층적인 역사를 탐색하며, 이처럼 19세기 일본의 극적인 변혁이 가능할 수 있었던 조건들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을 만난 계기는  ‘메이지 유신,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갈림길’ 강연회 소식을 접한 것이었다. 이 강연을 서울대 동사과 박훈교수가 맡았다는 정보를 접하고 리디북스에서 박교수의 저자를 찾았다.
어떤 연유인지, 대학 입학후 지금까지 일본 메이지 유신을 진지하게 공부한 적이 없었다.  메이지 유신하면 하급 무사들이 미국의 흑선 출현에 자극을 받아 260여년 동안 일본을 통치했던 막부에 반기를 들고 막부시대를 끝냈다는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대 초, 장기집권을 위해 유신이라는 단어를 차용해 10월 유신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내내 10월 유신의 의미를 강조하는 학교와 사회 분위기와 호흡하며 자랐다.
한국 사회가 일본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 이중적이다. 군중속에서는 일본을 적대시하고, 무시하는 등 극단적 대립 자세를 보이지만,  소수가 모인 끼리끼리 자리에선 일본을 사대적 태도로 대한다.
나는 일본 사람을 미워하고, 일본 제품을 사용하면 반 애국자라는 비난을 의식하며 자랐다. 부산 용두산 공원 전망대에서 쓰시마 섬을 보면서 적국의 땅, 가면 안되는 금단의 섬으로 배우며 자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청년기에 한국이 극단적으로 미국화되는 분위기에서 살았기에 일본을 배우자는 소리를 많이 듣지 못했다. 굳이 일본을 의식하거나 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미국만 쳐다보면 사회 흐름을 쫓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일본은 미지의 세계나 마찬가지다. 박훈 교수의 책을 만난 것을 계기로 일본 탐구를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