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 손관승 지음 | 노란잠수함 | 384쪽 | 1만6800원
선배 저널리스트인 손관승 작가가 새 책 ‘me, 베를린에서 나를 찾았다’을 들고 나타났다. 서울 동대문역 근처 3500원짜리 콩나물국밥을 먹고 창신동 장난감 골목을 거닐면서 새 책 이야기를 들었다.
손작가의 새 책에서 ‘뜻밖의 질문 How long is Now?’을 골라 분해매핑으로 뜯어서 읽었다. 평소에는 무작위 방법으로 한 장을 고른다. 저자를 알 경우 저자에게 한 장을 골라달라고 요청하곤 한다. 손작가는 이 부분을 추천했다.
독일 베를린은 2000년대 중반이후 지구촌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다. 특히 구 동독지역이었던 동베를린은 음악, 패션, 가구, 건축,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젊은 예술가와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또 유럽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손작가는 베를린 스토리를 타헬레스(Tacheles)의 1990년 스쾃운동(Squat:예술가들의 건물 무단 점거 운동)에서 시작한다. 예술공동체인 타헬레스는 베를린의 중심부인 미테지역 시너고그 유대인 성전 건너편에 있던 옛 백화점 건물을 점거하면서 뉴 베를린 건설의 시작을 알렸다.
젊고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은 그 건물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세상 어디에서도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는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기성의 질서와 가치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데 동베를린은 최적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은 사회주의가 무너진 상태에서 자본주의가 미처 뿌리를 못 내린, 일종의 진공상태였다. 그러면서 서유럽과 동유럽 문명의 교차로이기도 했다. 타헬레스는 이런 특수한 공간에서 무제한 자유를 누리며 그들만의 작품, 그들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했다.
▲MBC 독일 특파원을 시작으로 베를린에 대한 사랑과 전문성을 키워온 손관승 작가의 ‘섹시한’ 베를린 보고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나다’. 그는 그라운드 제로로 변한 베를린이 무서운 속도로 세계 예술 시장을 잠식하는 저력에 주목한다.
손작가는 스쾃운동의 발상지 근처 ‘How long is Now?’라는 문구를 벽면에 그린 빌딩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건 뭐지?’ 뉴욕 타임스퀘어식 대형 광고에 익숙한 여행자에게 철학적 질문은 낯설다. 하지만 그는 이 문구를 다시 곰곰히 씹어보면서 베를린의 진짜 매력을 뽑아낸다.
베를린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며 질문하는 거대한 공간이다. 조각, 벽화, 스트리트 퍼니처 등 베를린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베를린은 각각 고유의 메시지를 갖고 있다.
손작가의 글을 분해매핑하는 동안 머리속에서 나의 도시, 서울을 떠올렸다. 수년전부터 매주 토요일 서울 성곽길을 순환도로 삼아 서울 곳곳을 걸었다. 그러면서 북촌, 서촌, 익선동, 창신동, 해방촌 등 성곽 안팎 마들의 변화를 생생하게 지켜봤다.
일제 시대에 지은 개량한옥과 콘크리트 단독 주택이 다닥 다닥 붙은 구 도심 마을이 변신하는 메카니즘은 베를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독립 예술가들이 작업 스튜디오, 공방을 이 곳에 만들고 개성이 강한 카페, 갤러리,식당이 속속 들어섰다.
◇ 베를린의 재생은 서울의 재생과 무엇이 다른가
베를린과 서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베를린을 가보지 않고 두 도시를 비교하기 어렵다. 다만 손작가의 책을 통해 어렴풋이 차이점을 짐작해본다. 서울의 도시재생은 빠른 속도로 타올랐다가 차갑게 식는 장작같다. 한 동네 재생 메카니즘은 그대로 다른 곳에 복제되기에, 겉이 조금 다를 뿐 속은 거의 같다.
말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작가는 드물다. 말 잘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구라를 글로 써보라고 하면 헤매기 마련이다. 손작가는 방송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말을 잘한다. 청중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머리속에 메시지를 쏙 집어 넣는 강연 솜씨도 톱 클래스다. 그런데 그는 말보다 글을 더 다룬다. 2013년 언론계 현장을 떠나고 나서 벌써 4권을 혼자서, 1권을 여럿이 함께 썼다.
그런 능력은 탁월한 자료 수집과 해석 능력 덕분이리라. 그는 늘 발로 자료를 모으고, 그렇게 모은 자료를 꿰뚫어보면서 아무도 보지 못하는 트렌드를 짚어내고 키워드를 척척 뽑아낸다. 무엇보다 그는 남의 콘텐츠를 해석하지 않고, 자기만의 콘텐츠를 축적하고 활용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