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추리 소설을 귀독서로 삼습니다. 최근에 ‘스페인의 스티븐 킹’이라 불리는 하비에르 카스티요의 대표작 ‘스노우 걸’을 선택했습니다.
스토리는 미국 뉴욕에서 다섯살 여자아이가 축제행사장에서 깜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경찰력이 총동원되고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지만 여자아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며 수사의 단서조차 미미합니다.
대학에 탐사 저널리즘을 배운 인턴기자 미렌이 우연히 이 사건을 주목하고 혼자서 탐사 취재에 나섭니다. 미렌은 성폭행 피해자로서 정신속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범인을 찾는 탐사와 아이를 찾는 탐사를 동시에 진행합니다.
2개의 스토리라인이 교차하는 가운데 미렌은 집요한 취재를 통해 실체에 접근하고 마침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성공합니다. 미렌에게 고비마다 조언과 도움을 주는 역할을 미렌의 탐사보도 지도교수인 슈모어 교수입니다.
저널리스트라는 백그라운드 때문에 탐사보도 기법을 추리소설의 중심으로 삼은 점에 바로 끌렸습니다. 대부분의 추리물은 경찰 또는 사설 탐정이 사건 해결에서 중심 역할을 맡고 기자는 그런 수사를 방해하는 옐로 저널리스트로 묘사되곤 하지요.
사족. 제목을 보고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이 연상됐지만 카스티요는 사건속 실마리인 비디오테이프의 노이즈에 가려진 납치된 소녀의 모습을 스노우걸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1. 슈모어와의 만남
탐사보도 수업 강사인 짐 슈모어는 강의에 늦었다. 당시 그는 일반 뉴스의 비중이 꽤 높은 경제지
그는 강단에 서서
나보다 두 줄 앞에 앉아 있던 적극적인 세라 마크스가 큰 소리로 답했다.
“그러면 시민들이 아이를 보고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아이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누군가 아이를 보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죠.”
슈모어 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나를 지목했다. “트리그스 양, 어떻게 생각하나요?” “안타깝지만 판매 부수를 올리려는 겁니다.” 내가 주저 없이 말했다. “계속해보세요.”
2.탐사보도 수업 과제
이러한 과제를 받으면 자신의 능력을 양껏 시험해보고 자신이 정치와 부패, 사회적 이슈, 환경 문제, 비즈니스계의 치열한 이해 다툼 중 어떤 종류의 탐사보도에 가장 잘 맞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날의 주요 기사 중 하나는 허드슨강의 특정 구역에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있은 후 화학 약품이 강으로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기사였다.
과제로 삼기에 이만큼 쉬운 주제가 없었다. 나를 비롯해 반 전체가 단번에 이 사실을 알았다. 강물 샘플을 떠서 학교 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한 뒤 강물이 물고기 사체로 뒤덮이게 만든 화학 약품이 무엇인지 식별하면 되었다.
그런 다음 강 상류의 화학 회사 중에서 그러한 화학 물질이 함유된 제품을 제조하거나 폐기물을 발생시킨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면 짜잔, 끝이었다. 식은 죽 먹기였다.
3.손을 떼라
미렌은 이 상황이 견딜 수 없어 자리를 뜨려 했다. 그녀는 1993년 폭탄 트럭이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한 사건에 대한 탐사보도 기사를 쓴 전설적인 기자이자 자신의 상사인 필 마크스가 키에라 건에서 손을 떼라고 부추기며 했던 말을 생각했다.
“미렌, 탐사보도 기자의 최고 덕목이 끈기와 인내심이란 건 알지만 키에라 건이 자네 경력을 끝장낼 거야. 그러니 그냥 두게. 혹여 실수라도 하면 자네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아 실종 사건을 망쳐버린 기자로 기억될걸세. 그런 사람이 되지 말게. 나는 자네가 편집국에서 부패한 사업가를 잡아내고 세상을 바꿀 이야기를 쓰길 바라네. 벌써 이 사건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어.”
4.가장 귀중한 자질은 인내심
“아직 키에라를 못 찾았잖아요. 제 조사는 안 끝났어요, 교수님. 키에라를 발견할 때까지 사건이 진전되는 상황을 취재해서 제출하면 돼요. 솔직히 아직 밝힐 게 많긴 하지만요.”
“좋은 자세야, 미렌. 탐사보도 기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귀중한 자질은 인내심이야. 내가 늘 강조하는 말이지. 그건 타고나는 거야.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야. 호기심이 탐사보도 기자를 규정하는 본질이야. 아무리 힘들어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 말이야.”
“알아요. 수업 시간에 항상 하시는 말씀이잖아요.” “지금까지 강의에서 배울 건 그거 하나야. 기자라는 직업은 능력보다는 열정이, 타고난 총명함보다는 인내와 노력이 더 중요해. 물론 전부 도움이 되지만 어떤 주제에 심장이 뛰게 되면 진실에 다다를 때까지 물고 놓지 않게 되거든.”
“그리고 진실은 키에라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맞아.” 그가 답했다.
“그게 말이야, 미렌… 다 끝났어.” “뭐가요? 무슨 소리에요?”
“데일리에서 잘렸어.” “왜요? 프레스 때문에요? 그래서 온 거예요?”
“비슷해, 복합적인 이유야. 훨씬 복잡하지만 맞아, 부분적으론 프레스와 관련이 있어. 그쪽 기사는 언제나 나보다 한발 앞서 있어.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회사 구독자 수가 엄청나게 줄었어. 인터넷도 일부 원인이고, 우리 독자들이 다양한 매체에서 경제 소식을 얻기 때문이기도 하지.
데일리는 구독자 수 하락 때문에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 경영진이 희생양을 찾아왔어. 그리고 회사의 편집 전략과 동떨어졌다고 할 수 있는 탐사보도를 다루는 유일한 기자인 내가 낙점된 거고. 몇 달 동안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
6.소송의 위협
사람들은 인스턴트 뉴스와 금방 휘발될 기사에 굶주려 있었고, 그런 종류의 콘텐츠에는 몇 페이지에 걸쳐 작성된 기사 하나에 올인하는 탐사보도팀이 필요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탐사보도가 한 꼭지씩 실릴 때마다 일정 기간 소송이 진행됐다. 구독자 감소로 자원이 빠듯해진 신문사들은 자신들이 뒤를 파헤친 회사가 제기한 소송에 맞서 자사를 방어하기 위해 법무팀에 자금을 대느라 허덕였다.
“강의가 있잖아요.” 내가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말했다. 나는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몇 달 동안 서로 대화를 나누며 그로부터 심리적인 도움을 받았지만, 보통 우리의 대화는 그가 취재 중인 사건이나 그 사건에 대한 나의 집요한 질문들, 특정한 수업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5.탐사보도의 쇠퇴
“그게 말이야, 미렌… 다 끝났어.” “뭐가요? 무슨 소리에요?”
“
“비슷해, 복합적인 이유야. 훨씬 복잡하지만 맞아, 부분적으론
사람들은 인스턴트 뉴스와 금방 휘발될 기사에 굶주려 있었고, 그런 종류의 콘텐츠에는 몇 페이지에 걸쳐 작성된 기사 하나에 올인하는 탐사보도팀이 필요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탐사보도가 한 꼭지씩 실릴 때마다 일정 기간 소송이 진행됐다. 구독자 감소로 자원이 빠듯해진 신문사들은 자신들이 뒤를 파헤친 회사가 제기한 소송에 맞서 자사를 방어하기 위해 법무팀에 자금을 대느라 허덕였다.
“강의가 있잖아요.” 내가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말했다. 나는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몇 달 동안 서로 대화를 나누며 그로부터 심리적인 도움을 받았지만, 보통 우리의 대화는 그가 취재 중인 사건이나 그 사건에 대한 나의 집요한 질문들, 특정한 수업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7.가설 세우기
“기자의 가장 값진 무기인 정보를 이용하는 거야. 성범죄자 등록부에서 얻은 그자의 주소가 있잖아. 그의 아내에게 물어서 네 가설을 확인해보면 돼. 단, 준비도 없이 덤비면 안 돼.
그곳에 덜컥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선 안 된다는 거지. 그건 황색 언론들이나 하는 짓이거든. 넌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하는 탐사보도 기자야, 미렌. 그러니까 넌 마거릿 S. 포스터로부터 맞다, 아니다, 대답만 얻으면 돼. 그 여자한테 질문하고 이후 반응만 관찰해도 알 수 있어.”
8.탐사보도의 사회적 역할
슈모어 교수가 가르쳐줬던 것처럼 탐사보도는 단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신문사의 탐사보도팀이 주제를 정하고 나면 기사를 내보내기까지 몇 달, 때로는 몇 년이 걸렸다.
그리고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해 복잡한 스위스 시계의 작은 톱니바퀴를 하나하나 제자리에 끼워 넣듯 언제나 몇 개의 아이템을 동시에 진행시키며 각 기사별로 조금씩 진척시켜 나갔다.
그러면 기사들이 기자들도 예상치 못한 파장을 일으키곤 했다. 이를 위해선 마치 호수 깊숙이 숨어 있는 괴물을 찾듯 한 가지 수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철저히 파헤치고 바닥을 드러내야 했다.
괴물은 진실을 의미했다.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고 하찮기도 하고 너무 단순하고 우아해서 어떤 백발의 과학자가 만든 유명한 방정식을 떠올리기도 했다.
9.집요함
그가 내게 등을 보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아직 상의를 걸치지 않은 채 무릎을 꿇어 안경을 집어 들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넌 크게 될 거야, 미렌. 네겐 특별한 뭔가가 있어. 너 같은 학생은 처음 봐.” “제가 다른 학생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집요하다는 거죠.”
“그게 탐사보도 기자의 최고 덕목이지.” “알아요. 당신한테 배웠어요.”
10.가설을 세우고 확인하는 일, 탐사보도의 기본
“가설이에요. 틀릴 수도 있지만 수년 동안 파일을 검토하고 키에라에 대해 고민했어요. 탐사보도 기자가 하는 일은 가설을 확인하는 거예요. 좋은 친구가 가르쳐줬죠. 제 생각에 이 가설이 웬 남자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퍼레이드 한복판에서 어린애를 납치하려고 지구상 어딘가에서 날아왔을 거라는 생각보다는 더 타당해요.”
밀러 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