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솽쯔의 1938년 타이완 여행기를 만나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38년이라는 연도입니다.

필자의 부친이 1938년생이고, 간송 전형필 선생이 현재의 간송미술관을 북단장에 보화각을 완공한 연도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독특한 플롯을 갖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일본이 대만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1938년 일본 작가 아오야마 치즈코가 1년동안 여행하면서 쓴 소설을 양솽쯔라는 현대 대만 번역가가 중국어로 번역하여 출간했다는 설정아래 전개됩니다.

또 아오야마가 통역을 맡은 대만인 왕첸허와 타이완의 남북을 연결하는 종관철도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타이완의 음식을 소개하는 여행가이드 풍을 띠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타이완 여행을 위해 배낭을 싸고 싶은 충동을 느낄정도로 일반 여행가이드에서 맛볼 수 있는 문학적 맛을 느낍니다.

타이완 사람들의 정체성은 다음 문장에 담겨 있네요.

이 소설은 제가 타이완이라는 섬에 보내는 러브레터입니다. 저는 이 타이완의 이야기를 통해 전 세계가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타이완 사람은 일본 사람도 아니고 중국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요.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한국과 타이완이 일본을 대하는 감정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문장입니다.

1.타이완 여행에 대한 로망

어쨌든 한 번은 타이완에 가야 했다. 이런 결심을 했을 때 나는 오키나와에서 규슈로 향하는 배의 갑판에 서 있었고, 바다 너머의 먼 육지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미야코섬, 이시가키섬인가? 어쩌면 저 너머가 타이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 뒤, 고료 수입이 현저히 늘어났다. 협업한 적이 없던 잡지사에서 현금 뭉치를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 뒤, 고료 수입이 현저히 늘어났다. 협업한 적이 없던 잡지사에서 현금 뭉치를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아오야마 선생님이 수락만 해주신다면 남양(南洋)으로 가는 여행 비용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모든 건 폐사가 도맡을 테니까요. 남양을 배경으로 연재소설을 써주십시오!” 모 잡지사의 편집장인 F가 나를 보고 정중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오야마 선생님은 여행을 즐기신다지요. 좋은 기회 아닙니까?” “남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면, 남진[3]에 협력하라는 건가요?” “음, 아오야마 선생님은 어떤 의미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일장기를 흔들면서 제국을 선양하는 게 전제라면 제 능력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재미있는 작품을 써내지 못할 것 같아서요. 그러면 너무 아쉽지 않을까요?”

2. 타이완 바나나

그해 늦가을에 짧은 오키나와 여행이 끝났다. 나는 갑판에 서서 멀리 바다 너머에 있는 섬을 바라보았다. 남쪽 왕국인 규슈는 날씨가 따뜻했다.

짠 내를 머금은 바닷바람도 차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남쪽에 있는 타이완의 11월 늦가을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모지항(門司港)을 드나드는 커다란 대형 선박이 밤낮으로 운송해 오는 타이완 바나나를 떠올렸다.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바나나 향이 기억 속에서 짙게 퍼졌다. 다음번 여행은 타이완으로 가자.

3.초청장

타이완으로 가자는 생각을 싹틔우며 나가사키로 돌아간 나는 곧장 여행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먼 남쪽 섬 타이완으로 가려면 홋카이도를 여행했을 때 얻었던 교훈을 명심해야 했으니까.

장기 체류를 해야만 현지 풍토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상적인 기간은 반년이었다. 그러나 반년 동안 쓰게 될 교통비와 숙박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식비는 실로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총체류비를 계산해본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민했다.

가족들에게 공격당하기는 했지만, 신은 간식이라는 뇌물을 받아준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나는 타이완 총독부와 현지 부인 단체의 초청서를 받게 되었다.

4.타이완 총독부 타이중 주청

초청을 받은 건 봄 피안 휴가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아오야마 가족의 나가사키 분가와 구마모토 본가는 춘분날에 모여 타마나에 있는 사찰 렌게인탄조지에서 성묘를 했다.

미쓰코 언니와 도시코 새언니는 춘계 황령제[4]를 맞이한 뒤에 나가사키 분가에서 남은 휴가를 보내곤 했는데 늘 고용인을 대동했고, 전차를 타고 나가 나가사키 관광 지역을 돌아보았다. 지겹지도 않은지 매년 그러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나는 겸사겸사 세 번째 보타모치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 정말 맛있다! 겉에 묻은 팥앙금은 설탕을 넣어서 삶았는데 알알이 씹히는 식감이고, 안은 익힌 찹쌀을 치대 만들어 부드럽고도 쫀득한 찹쌀 경단이었다. 정말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무릎을 꿇고 기어 온 하루노가 전해준 건 홍차도, 비스킷도 아닌, 아주 정교하게 장식된 편지봉투였다. 그래, 바로 그것. 스와 신사의 신이 카스텔라 케이크와 시베리아 케이크에게 매수된 걸까. 아니면 보타모치나 백앙금 모찌에 매수된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편지가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그건 바로 타이완 총독부 타이중 주청에서 보낸 편지였다.

5.타이완을 이어주는 연락선

알고 보니 타이완에서도 영화가 유행이었다. 이번에 갑작스러운 초청을 받게 된 건 내 소설 ‘청춘기’를 각색해 만든 동명 영화가 타이완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도쿄에서 쇼와 11년(1936년)에 개봉했는데, 놀랍게도 타이완에서는 1년 뒤에야 개봉했다. ‘닛신카이’라는 이름의 현지 부인 단체가 이 영화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고, 쇼와 12년, 그러니까 작년에 타이중 각 지역에서 영화가 상영될 수 있도록 자금을 댔다고 한다.

사례금은 차치하더라도 교통비와 식비, 숙박비 등 일체 비용을 부담해줬기에 더는 여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몇 번의 전보와 전화가 오간 뒤, 나는 초여름에 출발하기로 했다.

규슈 북쪽 끝에 있는 모지항에서 내지와 타이완을 이어주는 연락선을 탔고, 다이호쿠주에 있는 지룽항(基隆)에서 내렸다.

6.타이베이, 타이중

닛신카이와 타이중 시역소에서 보낸 직원이 마중을 나왔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대신 혼자 차를 타고 타이베이로 가 하룻밤을 머물렀다.

다음 날 아침에 타이베이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급행열차를 타면 세 시간 반이면 타이중에 갈 수 있으니까. 이래야 여행이지 않을까? 열차 출발 시간은 오전 9시 반이었다. 타이중 기차역에 도착해야 점심밥을 먹을 수 있을 텐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11시 1분, 신주 기차역에 도착했다. 쌀국수 볶음을 현지어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앉은 부인 승객에게 물어보니 야키소바 같은 거라고 했지만, 먹어보니 완전히 다른 음식이었다

20분쯤 지나자 주난 기차역에 도착했다. 조금 전 볶음면을 집어넣었던 배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얼마나 더 넣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11시 47분, 먀오리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내지식 도시락을 파는 듯했다. 그래서 소금에 절인 오리알 다섯 개와 주먹밥만 샀다. 기차 승객이 타거나 내렸다. 남쪽으로 갈수록 현지어로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 앞으로의 여행이 기대되었다. 오후 1시 3분, 기차가 타이중역에 도착했다.

7.과쯔

오후 2시에 시역소 직원과 타이중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도저히 앉아서 기다릴 수 없었다. 대합실에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뙤약볕이 금빛을 쏟아내며 푸르른 야자나무를 비추고 있었다. 날이 너무 더워 사람들이 그늘로만 걸어다녔다.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옆에서 작고도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상당히 표준적인 일본어였다.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 아래쪽에 작고 귀여운 소녀가 서 있었다

얼굴에는 아기처럼 부드러운 분홍빛이 돌았고, 웃으면 양 볼에 보조개가 피었다. “포장비는 공짜래요. 돈은 거두어주세요.” “국어를 할 줄 아시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러면 저 대신 말 좀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10전은 수고비라고 말이에요.

“하긴 이게 뭔지 모르시겠네요.” 소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웃었다. “이건 과쯔(瓜子)예요. 내지인은 먹어본 적이 없겠네요.” “먹을 수 있는 건가요? 어떻게 먹는데요?” 자랑은 아니지만, 미식과 관련된 거라면 나는 아주 큰 흥미를 느꼈다.

8.소녀의 뺨에 핀 보조개

“아오야마 치즈코 선생님이 맞으십니까?” 여름용 정장을 입은 젊은 남성이었다. 눈썹과 속눈썹이 짙고 풍성했는데, 넓은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저는 타이중 시역소의 미시마입니다.” 나는 낮게 “아” 하고 외쳤다.

타이중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나는 과일 노점상 앞에서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논이나 바나나 농장이 보이기도 했다. 선명한 붉음과 짙은 푸르름의 풍경이 흐릿하면서도 부드럽게 펼쳐졌고, 남쪽 섬의 뜨거운 바람이 차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간조 다리에 있던 혼토진 시장이 다시 뇌리에 떠올랐다. 소녀의 뺨에 핀 보조개와 노점 앞 소년의 붉어지던 얼굴도

9.타이완 요릿집

미시마는 우펑으로 가면서 이번 여행 일정을 설명해주었다. 타이중 시역소 명의로 나를 초대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초청자는 닛신카이였다.

내가 순회강연 장소를 확인해주면, 닛신카이가 이를 정리해서 타이중 시역소로 전달할 거라고 했다. 그러면 타이중 시역소가 각 강연지가 속한 지방 시역소로 공문을 보내서 협조를 요청할 거라

저녁 식사 장소는 타이중 주청 근처에 있는 메이춘위안으로, 내지인 접대를 전문으로 하는 타이완 요릿집이었다.

가라스미와 소시지, 돼지족발과 상어지느러미, 간장으로 조린 자라, 맑은 소라탕, 게 밥, 팔보채. 후식은 행인두부와 여덟 가지 재료를 넣어서 만든 달콤한 밤이었다. 커피와 포종차로 입가심했다.

10.지룽~가오슝 연결 기차

“타이완에 올 때, 아니, 제 말은 본섬에 오기 전에요. 정리되지 않은 여행 글 몇 편만 읽었을 뿐이거든요.

타이중을 중심으로 이 섬 동부에는 갈 수 없어도 종관철도로 서부 도시를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다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제 생각이 너무 경솔했나요”

“경솔이라니요. 치즈코 선생님은 사려가 깊으신걸요. 지룽에서 시작해 가장 남쪽에 있는 가오슝까지 기차역이 총 열세 개 있답니다.

그러면 치즈코 선생님의 의사를 따라 이 열세 도시에서 강연을 잡으면 되겠네요.” 다카다 부인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논의하기 전에 배부터 채워야겠지요?” “이런.”

11. 통역사, 왕첸허

“혼토진 통역사랍니다. 성은 ‘왕’이고요. 많은 도시를 다니셔야 하잖아요. 현지 수행을 전담하는 이가 있으면 확실히 더 편하겠죠. 미시마 선생보다는 더 잘 맞을 수도 있고요. 그분도 젊은 여성이거든요!”

참, 재미있게도 왕 선생은 작가님과 이름이 같아요. 정확히는 ‘치즈코’의 ‘치즈(千鶴)’와 한문이 같지요. 왕 선생이라면 키암라아의 신선도를 구분할 수 있을 거예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순간 입안의 이와 혀가 굳어버렸다. “당신은, 그날, 과일 노점에서, 파인애플, 그 과쯔!” “맞습니다. 왕첸허라고 해요. 처음 뵙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 어째서 전혀 안 놀라시죠? 그리고 공학교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교사가 아니라 여학생처럼 보이는데요!”

관련 링크:뇌가 젊어지는 독서습관, 귀독서(좋은 습관 연구소, 우병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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