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읽는 세계사’의 영어판 제목은 ‘ Love: A Curious History in 50 Objects’입니다. 유물과 미술품중에서 50개 사랑 테마를 골라서 화보와 함께 사랑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 에드워드 브룩 히칭Edward Brooke-Hitching은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독특한 주제를 선정해 기발한 역사책을 펴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저서중에서 한국에서는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이 번역출간되었습니다.
브룩 히칭은 19세기 영국의 유명 인쇄업자 윌리엄 블레이즈의 후손이자 고서적과 고지도를 취급하는 골동품상의 아들로 자란 집안 배경덕분에 역사에 숨은 기묘한 옛이야기을 끄집어내는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합니다.
이 책 역시 옛 자료를 다루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중 십중팔구는 사랑노래입니다. 브룩 히칭은 인류가 왜 매일 사랑노래를 듣고 부르는지를 역사에서 근원을 찾아내 재미있게 풀이합니다.
또 인간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증표를 주고받고 싶어하는데, 브룩 히칭은 미국 세밀화가 사라 굿리지가 그린 ‘드러난 아름다움’에 얽힌 애뜻한 러브스토리를 흥미롭게 소개합니다.
굿리지는 단 한 사람에게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가슴만 상아위에 세밀하게 그렸다고 합니다.
디지털 시대 사랑이 소셜미디어에 박제된 현실에서 옛 사람의 사랑법을 다시 들춰보면서 잃어버린 낭만을 되찾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1.드러난 아름다움 Beauty Revealed
세밀화 양식의 이 작품은 현대의 관객이 봐도 놀랄 만한 그림인데, 보수적인 시대였던 당시에 이 그림을 본 사람이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상상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이 그림이 대대적으로 전시되는 일은 없었다. 세밀화이자 자화상인 이 그름은 단 한 명을 위한 작품이었다.
2.굿리지와 웹스터의 인연
미국의 세밀화 화가 세라 굿리지Sarah Goodridge(1788-1853)는 처음 대니얼 웹스터Daniel Webster를 만났을 당시 미혼이었다. 여섯 살 연상의 웹스터는 유부남이었고 매사추세츠에서 떠오르는 정치인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2.1 로맨틱한 감정에 가까운 평생의 우정
웹스터 가문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렸던 굿리지는 대니얼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예술가와 피사체 사이에 형성되는 친밀함이 생겨났고, 이후 로맨틱한 감정에 가까운 평생의 우정으로 이어졌다. 다만 둘 사이에 로맨틱한 무언가가 정말로 있었는지 입증해줄 자료는 딱히 없다.
3.각자 성공의 길을 가다
1820년대 후반, 굿리지와 웹스터는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웹스터는 1827년 미국 상원의원에 당선되었고, 굿리지는 특유의 사실주의 화풍으로 보스턴에서 선도적인 세밀화 화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녀는 의뢰받은 작품을 일주일에 두 개씩 완성하며 가족을 넉넉히 부양할 정도의 수입을 거두었다. 웹스터는 굿리지가 스튜디오와 집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4.두 사람의 연애 편지
두 사람은 수십 년간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남은 것은 웹스터가 신중하게 고른 언어로 작성한 40통의 편지뿐이다(굿리지의 편지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4.1 애틋함을 담은 웹스터의 편지
서신 속 어조는 다정하고, 오가는 주제는 일상적이다. 발견된 최초의 편지에는 웹스터가 굿리지에게 아내의 회복을 바라는 ‘따뜻한 말’에 고마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선을 지키는 태도를 내내 견지했다.
하지만 그의 인사말이 ‘부인Madam’에서 ‘친애하는 부인Dear Madam’ ‘친애하는 G 양Dear Miss G.’으로 바뀌고 마침내 ‘내 소중한 친구에게My dear, good friend’로 달라졌다.
어딘가 애틋함이 느껴진다.
5. 두차례의 만남과 그림선물
굿리지가 보스턴의 집을 떠났던 적은 단 두 차례로, 1828년과 1841년 겨울 워싱턴에 갔을 때뿐이었다. 첫 여정은 첫 아내와 사별한 웹스터를 위로해주기 위한 방문으로 추측되고, 두 번째는 그가 두 번째 아내와 별거했을 때였다.
6.웹스터를 위한 그림
드러난 아름다움 지금은 사라졌지만 ‘드러난 아름다움’ 세밀화 바탕의 대지에 적힌 글에는 1828년에 굿리지가 웹스터를 방문했을 때 준 그림이라고 적혀 있다. 웹스터의 후손에 따르면 굿리지가 특별히 그를 위해 그린 작품이었다. 드러난 아름다움이라는 작품은 반투명할 정도로 아주 얇은 상아 위에 그린 자화상으로, 가로 8센티미터, 세로 6.7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크기다.
7.세밀화는 정표의 상징
굿리지가 선물한 이런 그림이 아니더라도 세밀화를 선물한다는 것 자체가 연인이나 가까운 가족에게만 국한되는, 매우 사적인 의미를 지닌 행위였다. 그림을 선물 받은 사람은 세세한 부분을 살피고자 상대의 모습이 담긴 세밀화를 얼굴 가까이에 대고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8.연인만 알아볼 수 있는 그림
더구나 이런 세밀화 작품은 심장과 몸 가까이에 두고자 가슴께에 핀으로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굿리지의 그림에는 얼굴이 담겨 있지 않지만 세심하게 그려 넣은 점은 연인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그녀만의 특징이다.
9.파격적인 누드 세밀화
당시 미국에서 누드 아트는 흔치 않았다. 연인의 눈처럼 신체 부위를 그린 세밀화는 그전부터 있었지만(200-205쪽 참고), 굿리지의 가슴을 그린 그림은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10.끝내 결혼하지 않다
웹스터 상원의원은 굿리지의 선물을 받아주었고, 그녀의 이젤과 물감 통과 함께 그림은 웹스터 가문 대대로 전해졌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굿리지는 웹스터의 초상화를 최소 열두 점 더 그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고, 그녀는 평생을 보스턴에서 지내며 초상화 사업으로 번 돈으로 고아가 된 조카딸을 키우고 11년간 병든 모친을 돌봤다.
10.1 굿리지의 말년
1850년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한 그녀는 은퇴 후 매사추세츠 레딩으로 거주지를 옮겨 지내다 3년 후 뇌졸중을 겪고,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단 한사람만을 위한 초상화 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