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바둑기사가 요즘 여러 매체에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 출연하고 서울디지털 포럼 연사로 등단하기도 했습니다. 생성형 AI가 뜨면서 IT와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진 이세돌 기사도 함께 뜬 셈입니다.

그 배경은 역시 인공지능을 이긴 유일한 바둑기사라는 역사적 경력덕분일 것입니다. 2016년 이세돌 기사는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서울 한복판에서 5번 대국을 가졌습니다. 4판을 내주었지만 1판을 승리했습니다.

이후 알파고는 더욱 진화하여 모든 인간 바둑기사를 제압하는 수준에 이르러, 바둑계에서는 더 이상 인간이 우월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생성형AI가 대중화되면서 이세돌의 존재를 다시 소환했습니다. 아마도 생성형AI가 조만간 일반지능(AGI)에 이르러 인간의 지적 능력을 압도할 것이라는 감이 그를 다시 불러냈을 수도 있습니다. AI가 모든 인간을 능가하기 전에 AI를 이긴 이세돌이라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듣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이세돌, 인생의 수 읽기’는 바둑에서 얻는 인생의 경험과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궁극의 경지에 이르는 동안 좌절하고 극복하면서 얻은 메시지는 울림이 깊습니다.

이 책에서 이세돌기사의 최고 라이벌이었던 중국 구리 9단과의 인연을 담은 ‘승자와 패자도 없는 싸움도 존재한다’편을 읽고 10문단으로 요약했습니다.

1.중국의 프로 기사 구리古力 9단

어느 날인가 중국의 프로 기사 구리9단이 웃으며 “내 생일이 한 달 빠르니까, 내가 형이네.”라면서 자기가 형이라며 우기곤 했다. 1983년 2월생인 그의 생일이 나보다 한 달 앞섰기 때문이다. 웃자고 하는 농담인 줄은 알았지만 나도 지지 않았다.

1.1 공통점 구리와 나는 닮은 점이 많다.둘은 1995년, 열두 살 나이에 나란히 프로의 문을 통과했다. 바둑 스타일에서도 공통점이 뚜렷했다. 나는 초반의 불리함을 중반 이후의 전투로 뒤집는 바둑을 즐겼는데 구리 역시 유리한 흐름 속에서도 과감히 싸움을 거는 성향이었다.

1.2 둘의 만남은 기세 싸움

둘 다 대국 중에 쉽게 물러서지 않았기에 우리 둘의 만남은 그야말로 ‘기세의 싸움’이었다.

바둑판 위에서 마주하면 기세가 자연스레 충돌했고, 수읽기보다 흐름과 감각의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멀리서 봐도 이세돌과 구리, 두 사람이 두는 판인 줄 알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전심전력의 대국

실력이 팽팽하게 맞섰기에 그와의 대국에서는 늘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사람들은 “라이벌에게 졌을 때 타격이 크지 않나요?”라고 물었고 나는 “인정할 수 없는 상대에게 지는 건 괴롭습니다.

하지만 인정할 수 있는 상대에게 지는 건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3. 누가 더 좋은 바둑을 뒀나

구리에게 졌을 때는 억울하거나 납득할 수 없어 상심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오늘은 구리가 더 좋은 바둑을 뒀구나’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는 내가 진심으로 인정하는 기사 중 한 명이었고, 그와의 대국을 통해 나의 바둑을 점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라이벌의 존재는 큰 자산

일대일로 맞붙는 경기에서 라이벌의 존재는 큰 자산이다. 테니스 선수인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바크 조코비치가 그랬듯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관계는 어떤 종목에서도 흔치 않다.

나에게는 그 자리에 구리가 있었고, 그와의 대국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선 경험을 안겨주었다.

4.1일종의 러닝메이트

무뎌져가던 시기에 다시 바둑이 즐거워지고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그와의 경쟁 덕분이었다. 우리는 단순한 경쟁자를 넘어 서로를 단련시킨 일종의 러닝메이트였던 셈이다.

5.구리와의 최고 자리 대결

결승 무대에서 마주한 건 2009년 LG배 세계 기왕전이 처음이었다. 바둑 팬들의 관심도 컸고 나 또한 그 대국을 특별하게 느꼈다. 첫 결승은 이후 수년간 이어질 라이벌 구도의 시작점이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기풍을 더욱 깊이 체감할 수 있었으며 그만큼 긴장감도 컸다. 그 결승은 우리 둘 모두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5.1 첫 패배

나와 구리의 첫 결승은 나의 0대 2 완패로 끝났다. 졌을 때는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내가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구나.’ 당시 구리의 실력이 더 나아 보였다. 그의 바둑은 강했고 흐름을 장악하는 힘이 있었다.

6.바둑 자체가 흥미로운 대결

2014년까지 약 5년 동안 크고 작은 무대에서 우리는 자주 맞붙었다. 결승전만 해도 세 차례를 치렀고 각종 국제 기전에서도 여러 번 대국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구리와는 스타일이 잘 맞았다. 지는 날도 있었지만 이기는 날도 있었고, 결과와 상관없이 바둑 내용 자체가 늘 흥미로웠다.

6.1 구리도 나와 같은 마음

2011년 열린 두 번째 결승전, BC카드배의 결과는 나의 승리로 끝났지만 사실 대국 내용을 살펴보면 내가 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구리는 담대했다. 그의 표정과 행동, 그리고 말을 종합해서 생각하건대 그는 이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6.2세번째 대결

우리가 치른 세 번째 결승은 2012년 삼성화재배였다. 당시 나와 구리 둘 다 승리하면 세계 일인자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승리하면서 분에 넘치는 일인자의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리 둘은 누가 위라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7.구리와의 역사적인 10번기

2014년에 열린 구리와의 10번기를 빼놓고는 나의 바둑 인생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현대 바둑의 전설로 불리는 오청원 선생님 이후 반세기 만에 부활한 10번기.

그 이유나 명분보다 단지 구리와 다시 마주 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대결은 충분한 의미를 지녔다.

7.1반상 위의 끝장 승부, 10번기

10번기는 오랜 역사와 상징성을 지닌 승부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기사가 자존심을 걸고 열 번의 대국으로 맞붙는 진검 승부다.

나와 구리의 대국은 한·중 바둑의 자존심이 걸린 역사적 승부였고, 개인적으로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아마 구리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8.10번기 대국 성사 배경

‘밀리Mlily 몽백합 10번기’는 구리 9단의 팬으로 알려진 중국 헝캉 가구 회사Hengkang Furniture 니장건 회장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나와 구리가 같은 자리에서 처음 이 제안을 들었는데 약간 망설였다.

대국을 앞두고 구리는 “이 승부가 너무 기대되면서도 간절하고 비장하다”고 말했고 나 또한 그랬다. 우리는 간절하면서 비장한 승부를 기다려왔다.

9. 1국의 중요성

정신적으로 준비를 철저히 해서일까? 이날 나는 시간 안배가 좋았고 대국 내용도 꽤 만족스러웠다. 여세를 몰아 2국에서도 신승 초반 흐름을 주도했다. 하지만 역시 구리는 강인했다.

9.1 고향 신안에서 패배

4국은 10번기 승부 중 유일하게 나의 고향 신안에서 펼쳐졌다.

4국 대국 전 구리는 “승패를 알 수 없지만 네 고향에서 대국을 치를 수 있어 기쁘다. 바닷가의 경치도 좋고. 평소 너의 바둑이 파도가 치듯 변화무쌍한데 이래서인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좋지 못한 내용을 보여주며 완패했고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10.중국 고산지대에서 5국

나와 구리가 2대 2 동점인 가운데, 5국이 시작되었다. 모두의 기대가 집중된 경기였는데, 대국 장소가 기묘했다. 해발 3,000m가 넘는 중국의 고산지대인 윈난성 샹거리라였다. 이벤트 대국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장소다.

10.1 구리를 걱정하다

5국 시작 전 구리의 표정은 어두웠고 나는 승패를 떠나 그가 자신만의 바둑을 두길 응원했다. 하지만 구리는 치명적 실수를 연발하며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졌다.

결국 8국에서 내가 승리하며 6대2로 10번기가 끝났다. 5국에서 무너진 구리가 회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승부가 난 것이다.

11.승자와 패자가 없는 수담

그는 10번기에서 졌지만 결코 패하지 않았다. 그는 상대방을 배려했고 존중했으며 억울한 상황에서조차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우리의 10번기는 이렇게 승자와 패자가 없는 수담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11.1 바둑에 대한 철학과 관점 나와 구리는 10번기를 하면서 바둑에 대한 철학과 관점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다.

둘은 많은 점이 비슷했는데, 다른 점이라면 나는 ‘승리를 통해 발전하는 게 바둑이다’라고 생각하고, 구리는 ‘패배를 통해 발전한다’고 생각한다는 정도였다.

11.2 라이벌 구리와의 영원한 추억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둘은 나이뿐만 아니라 바둑에 대한 관점이 많은 부분 같았고 다른 것은 국적뿐이었다.

이 글을 쓰며 10번기를 다시 돌아보니 구리가 얼마나 힘겨운 승부를 했는지 더욱 실감 난다. 라이벌 구리와의 대국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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