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나 도서관 서가에 꽂힌 유명 작가의 문학작품 대부분은 가끔 바라만 보는 연인과 같습니다.

그 책이 걸어나와 내 손을 잡을 때 비로소 사랑이 이뤄집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을 때 ‘런던의 열정’이라는 디킨스 평전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디킨스의 성장 과정과 디킨스가 살았던 시대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그의 소설이 더 살갑게 다가왔습니다.

찰스 디킨스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한다면, 오노레 드 발자크는 비슷한 시기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발자크라는 작가 이름을 접할 때 마다 평생 엄청난 빚에 시달리면서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쓴 작가라는 이미지만 떠오를 뿐, 그의 문학세계는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슈페탄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발자크 소설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삼았습니다. 최고 전기 작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츠바이크가 그려낸 발자크의 삶과 문학은 어떤 소설보다 재미있습니다.

현란한 편지와 화려한 언변으로 가는 당시 유럽의 귀족 부인의 마음을 훔쳤던 발자크. 그의 첫 사랑 스토리를 담은 ‘첫 사랑 드 베르니’편을 골라서 읽었습니다.

1.스물두 살난 발자크

사랑과 명성을 향한 이 두 가지 ‘정열’ 중에서 어느 것도 성취되지 않은 것을 보았다. 제어되지 않은 그의 모든 꿈들은 무력하였고 정열적인 시도들은 헛일이 되었다.

그는 지하실 문을 통과해서 하다못해 가장 악명이 자자한 문학의 뒷골목인 저질문학으로 기어들어가기 위해서만이라도 자연스러운 정도 이하로 깊이 몸을 숙였건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리고 밤낮으로 쓰고 또 써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식품창고로 뚫고 들어가려고 애쓰는 굶주린 들쥐의 끈질긴 불쾌감을 가지고 그는 쓰고 또 썼다.

굶주린 들쥐는 식품창고의 유혹적인 향기가 자신의 내장 속까지 타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극단적인 노력도 그를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게 해주지 않았다.

1.1 여자 회피

사적인 생활에서는 남자로서 여자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뒷날 그토록 힘이 넘쳐나는 격렬한 사내가 젊은 시절 내내 거의 병적으로 움츠러들어 있었다는 생각이 아무리 기묘하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젊은 발자크는 여자들을 피했다. 사랑에 빠질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맹렬함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의 감각성도 발동이 늦게 걸렸다.

그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사춘기가 지나치게 뒤로 미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남성성은, ‘아주 망설이면서 그 녹색의 충동을 뻗쳤다’고 한다.

1.2 발자크의 콤플렉스

발자크는 자기가 당시의 멋쟁이들처럼 거드름을 피우거나 널마루에서 춤이라도 추려고 했다가는 다리가 짧고 볼품없이 타고난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강조될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들 앞에서 느끼는 이런 열등감은 그를 언제나 고독한 책상 앞으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2.어떤 여자와와 결합될 각오

작가로서 선택의 제한을 두지 않고 어떤 고약한 사람에게도 자신의 펜을 빌려줄 각오가 되어 있었듯이, 남자로서 그는 자신을 가족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는 어떤 여자하고도 결합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예쁘거나 못생겼거나, 멍청하거나 잔소리가 심하거나 전혀 상관없었다. 그의 최초의 구애는-그의 책들과 꼭 마찬가지로-완전히 익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스물두 살난 이 이상한 이상주의자는 누이에게 이렇게 썼다.

나를 위해서 아무나 재산을 가진 과부를 좀 찾아보아라······. 그리고 나를 천거해라. 스물두 살난 선량한 젊은이, 잘생기고 생동하는 눈매에 불 같은 사람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지금까지 하늘이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신랑감이라고 말이지.

2.1 발자크의 자신감

젊은이는 자기가 1천 배나 더 잘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기 내면에 있는 유혹의 능력, 에로틱한 즐거움과 성적인 즐거움을 향한 능력은, 멋지게 재단한 양복을 입고 가슴에 매끄러운 리본을 매고 자루 달린 안경을 든 예쁘장한 친구들보다 비할 바 없이 격렬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 발자크는 수도승처럼 상상력의 도움으로 단식과 묵상을 통해서 여자와 애정을 향한 이런 욕구를 억누를 수 있었다.

소설이라는 현실의 대용물에 탐닉하고 자신의-상당히 천박한-여주인공들에 도취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상력은-순환논법에 따라서-그의 내면에서 불붙기 쉬운 요소를 더욱 부추겼을 뿐이다.

스물두 살에 발자크는 점점 더 커지는 욕구로 가득 찼다.

3.파리의 베르니 집안

발자크의 결정적인 체험은 작은 도시, 그것도 그토록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양친의 집 그늘에서 시작되었다.

우연히도 파리의 베르니 집안은 발자크 집안의 파리 셋집 바로 옆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고, 발자크 집안과 똑같이 빌파리지에 여름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정은 곧장 두 집안을 가깝게 만들었고, 소시민 발자크네 집안은 이것을 적지 않은 명예로 여겼다.

3.1 오노레, 사랑에 빠지다

머지않아 한 가지 사실이 발자크네 식구들 눈에 띄게 되었다. 우선 그가 수업이 없는 날에도 베르니네 집으로 가서 그곳에서 오후와 저녁을 보낸다는 것, 그리고 그가 점점 더 조심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붙임성 있고 친절하게 변해간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는 어렵지 않게 그 수수께끼를 풀었다. 오노레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누구냐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4.딸이 아니라 어머니, 로르 드 베르니

베르니 부인에게는 이미 결혼한 딸 말고도 그림처럼 예쁜 어린 딸 에마뉘엘(Emmanuelle)이 있었다. “그녀는 황홀한 아름다움, 인도의 꽃이었다!”라고 발자크는 20년 뒤에 썼다.

그리고 오노레보다 약간 어렸다. 발자크 집안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고, 어쩌면 속을 알 수 없는 이 젊은이가 지금까지 시작한 것 중에서 가장 분별 있는 일이었다.

오노레를 사로잡은 사람은 매혹적인 젊은 아가씨 에마뉘엘 드 베르니가 아니라 바로 그 어머니-그리고 결혼한 딸 덕분에 이미 할머니가 된-로르 드 베르니였다.

5.발자크의 결핍, 어머니의 모습

마흔다섯의 나이였던 그녀는 정상적인 남자에게는 이미 에로틱한 욕망 너머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모습이 우수에 젖은 부드러움을 띠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육체는 이미 오래 전에 나이들어 굴곡 없이 둥글둥글해져 있었다.

여성적인 것은 완전히 녹아들고 어머니의 모습만 남았다. 그러나 바로 이 어머니의 모습, 발자크가 어린 시절 내내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얻을 수 없었던 이 모습이야말로 그가 이 관계에서 구하고 마침내 찾아낸 것이었다.

확장을 향한 거침없는 욕구,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폭풍 같은 열망, 자신의 어머니는 두려운 오만이라고만 느꼈던 그 열망은 마침내 이 여인에게서 깊은 믿음을 찾아내면서 해소되었다.

6.영리하고 선량하고 관심어린 눈길

자기 어머니와 거의 동년배인 그녀는, 그가 불 같은 계획들을 자기 앞에서 꿈꾸듯이 밝히는 것을 밝고 영리하고 선량하고 관심어린 눈길로 들어주었다.

그의 어머니처럼 지배적이고 엄격한 태도가 아니라 부드럽게 부추기면서 조심스럽게 그를 교육하였다.

6.1 말할 줄도 알고 침묵할 줄도 아는 여자

이렇게 도움을 주는, 경청하는 자세만으로도 그녀는 그의 주저앉은 자의식을 일으켜세울 참이었다. ‘피르미아니 부인(Madame Firmiani)’에서 그는 이런 정신적인 만남의 행복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에 마법을 불어넣어 자신의 모든 행동 위에 똑같은 조화를 만들어내는 여성을 만나는 행운을 누려본 적이 있으세요?

말할 줄도 알고 침묵할 줄도 아는 여자, 완전한 부드러움으로 사람을 사로잡고 자신의 말을 행복하게 선택하고 순수한 언어를 말하는 여자를요?

그녀의 놀리는 말은 애무와도 같고, 비판은 전혀 상처를 주지 않아요. 싸우듯이 일처리를 하지 않고, 대화를 유도하고 그것을 적절한 시간에 끝내는 것으로 만족하죠.

7.태풍 같은 젊은이

집에서는 언제나 거듭 비싼 집세니, 이자, 투자, 종신연금 따위의 소시민의 탄식이나 듣고, 그러니 돈을 벌어라, 착실한 시민이나 하급관리가 되라는 잔소리나 듣던 발자크를 기억해보라.

이 부드럽고 온화한 여자의 목소리가 죽어가는 왕족과 혁명의 두려움에 대한 거대한 전설들을 이야기할 때에 그가 어떻게 경청하였을지 생각해보라.

그 자신의 초조하고, 자꾸 앞으로만 나가는 호기심은 거절하는 목소리에 의해서 물리침을 당하지 않고 어머니 같은 다정한 눈길을 받았을 것을 생각해보라.

태풍 같은 젊은이를 아주 조금만 안내하고 유도하고 조정하려는 바람만을 가졌다.

8.감정이 에로틱하게 변화

그녀도 또한 자신의 경험을 젊은 풋내기에게 알려주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선생과 학생 사이에는 아주 쉽게, 모르는 사이에 감정이 에로틱하게 변화하였다.

바라지도 않았는데 부드러운 가르침은 애정이 되고, 숭배는 사랑이, 친밀하게 함께하려는 바람은 더욱 내적인 밀착에의 소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8.1 대체 무슨 문제란 말입니까!

발자크와 같은 상상력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의 나이는 전혀 문제되지 않고 그의 무한한 열광 능력은 어머니이고 할머니인 자신을 아직도 탐낼 만한 여성으로 여길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도 못했다.

위대하신 하느님, 내가 여자라면, 그리고 마흔다섯 살이고 아직도 여전히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나는 당신과는 다르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섰으면서 아담과 이브를 불행으로 데려간 사과를 따기를 거부하는 여자라니 이게 대체 무슨 문제란 말입니까!

9. 8월 어느 날 밤

후텁지근한 8월 어느 날 밤에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녀의 여름별장 정원으로 통하는 문의 손잡이가 돌아갔다.

부드러운 손길이 두려워하면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안으로 데려갔다. 그러면서 시작되었다, 놀라움과 온통 사랑으로 가득 찬 밤이! 행복한 아이남자가 일생 오직 한 번만 누릴 수 있는, 그리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그 밤이!

발자크는 가족에게서 벗어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약한 어린 시절을 병처럼 극복해버렸다. 그가 치유된 것을, 자신의 힘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

양친의 집이 아니라 드 베르니 부인의 집이 이제 그의 고향이 되었다. 양친의 집에서 나오는 어떤 불평, 비난, 히스테리도, 도시에 퍼진 은밀한 속삭임과 소문도, 자유의사로 정열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여자에게 속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9.1 발자크 어머니의 반응

발자크 부인은 진상을 알아채자 더욱 심하게 충격을 받았다. 성장기의 중요한 시절에 그녀는 아들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시피 했다.

그의 솔직함, 애정, 자신감을 강제로 짓눌렀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에 대해 굴종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지금 그가 도움의 손길, 친구, 충고, 그러니까 어머니로서 자신의 역할을 드 베르니 부인에게서 찾아내고, 게다가 그녀를 애인으로 삼기까지 한 것을 보자 이 지배욕 강한 여자의 내면에서 일종의 사나운 질투심이 깨어났다.

9.2 어머니, 여자친구, 가족, 동반자, 충고자

‘경험의 충고자’를 통해서 발자크는 비로소 진정한 발자크가 되었다.

그는 뒷날 이렇게 고백한다.

그녀는 내게 어머니, 여자친구, 가족, 동반자, 충고자였다. 그녀는 나를 작가로 만들었고, 젊은 나를 위로해주었으며, 내게 취향을 마련해주었고, 누이처럼 함께 울고 웃었다.

그녀는 언제나 고통을 진정시켜주는 선량한 꿈처럼 나타났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10. 한 여자의 마지막 사랑, 한 남자의 첫사랑

1822년에서 1833년까지 꼬박 10년 동안, 그러니까 그녀가 쉰다섯 살이 되기까지 ‘딜렉타’ ‘유일하게 선택된 여자’를 향한 이 사랑의 관계는 감각성을 그대로 유지하다가 10년이 지나면서 슬며시 ‘우정’으로 변했다.

하지만 발자크의 애착과 충실함은 오히려 더욱 섬세해지고 더욱 커지기만 했다.

그리고 ‘골짜기의 백합(Le Lys dans la Vallée)’에 나오는 이상적인 여성 드 모르소프(de Mortsauf)를 통해 그의 감정을 표현했다.

아득한 그녀의 그림자······

그 사람의 가장 하찮은 특성들의 창백한 표현 하나(qu’un lointain reflet d’elle ······ une pâle épreuve des moindres qualités de cette personne)

10.1 가족과 저질문학으로부터 해방

그는 이 만남을 자기 생애 단 한 번뿐인 행복한 체험으로 느꼈다는 것을 그 이후로 불멸이 된 말로 표현하고 있다. 한 여자의 마지막 사랑이면서 한 남자에게는 첫사랑을 이루어주는 것에 견줄 만한 것은 세상에 다시 없다.

베르니 부인과의 만남은 발자크의 삶에서 해방시켜주는 결정점이었다.

그것은 가족에게 억눌린 아들을 해방시켜 한 남자로, 저질문학의 노예를 해방시켜 예술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그의 앞으로의 삶에서 사랑의 유형을 결정해버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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