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신문에서 신간 뉴스를 꼭 챙깁니다. 최근 로버트 카플란의 ‘질서의 종말’소개 기사를 읽고 전자책 서점을 찾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전자책 버전은 출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대안으로 로버트 카플란의 전자책을 검색후 ‘현명한 정치가’를 골랐습니다.
로버트 카플란과 팀 마샬의 공통점은 저널리스트이면서 지정학적 관점으로 현대 국제 질서의 구조와 갈등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카플란은 ‘지리의 복수’, ‘지구의 끝’ 등 지정학 테마 책을 여러권 출간하였고, 마샬의 ‘지리의 힘’으로 국내에서 지정학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었습니다.
지정학은 전쟁 등 각종 분쟁을 설명하는데 유용합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반도체 열풍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데도 효과적입니다.
활황을 맞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최대 위협은 역시 중국의 반도체 굴기입니다. 미국의 반도체 기술 봉쇄로 인해 중국은 필사적으로 HBM대체품 또는 HBM을 건너뛸 수 있는 AI칩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카프란은 ‘현명한 정치가’에서 최악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정치가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는 그런 질문을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셰익스피어의 문학에서 찾습니다.
카플란은 리어왕, 오셀로,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의 캐릭터를 통해 현명한 정치가상을 그려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스 비극와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다시 만날 준비를 합니다. 아울러 현명한 정치가가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13장 ‘서로 다른 선끼리 싸우기 때문에 우리에게 양심이 주어진다’을 골라 읽었습니다.
1.잠시 멈춤
문학평론가 고 토니 태너는 오레스테스를 비롯한 그리스 영웅들은 행동에 나서기 전에 “잠시 멈추는” 반면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이런 멈춤이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고대 그리스인들이 오직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리스인들과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 사이에는 까마득한 거리가 있었다.
해럴드 블룸은 이 논지를 한 걸음 더 끌고 나가, 양심의 가책이라는 관념이 햄릿에서 정점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양심 그 자체에 대한 문학적 묘사도 최고조에 달했다고 주장한다. 햄릿의 정신은 진실로 세계 전체를 아우른다.
햄릿이라는 인물은, 셰익스피어로부터 300년 뒤에 나와 양심을 세세하게 설명하면서 조이스와 엘리엇의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가교를 제공하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선구 격이다.
2.죄의식과 양심
기독교가 지배하는 근대 서구에서 막대한 역할을 하는 죄의식과 양심은 비극의 영역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심을 의도적으로 억누를 것을 요구하는 악 또한 존재한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그리스인들보다는 셰익스피어에게서(도스토옙스키, 콘래드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층 더 발전한다.
3.오셀로와 이아고
이아고는 성서의 어떤 존재보다도 자세하게 묘사된 사탄이다. 이아고는 사실상 사탄 그 자체다. 하느님이 사탄을 외면하듯 귀족 오셀로 역시 베네치아의 군인 이아고를 피한다.
하느님이 사탄에게 그러하듯 오셀로도 이아고에게는 우주와 창조 그 자체다. 문학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탁월한 분석력을 도덕적 결과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과 결합시키는 이아고만큼 순전하게 악한 인물은 거의 없다.
4.테러리즘의 발원, 이아고
작품에서 가장 창의적인 정신의 소유자인 이아고는 오로지 책략을 꾸미기 위해 존재한다. 그는 용감하고 과감하며 부끄러움을 모른다. 거짓 정보, 사실 왜곡, 현대적 테러리즘은 모두 문학적으로든 미학적으로든 이아고에게서 발원한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끝 모르는 냉소주의와 기만성이라는 면에서 이아고와 맞먹는다.
1999년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여러 도시에서 벌어진 아파트 폭탄 테러는 공식적으로 체첸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으로 발표됐지만, 실은 푸틴이 손쉽게 권좌에 오르게 하려고 러시아 정보부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느라 벌인 자작극이라는 의심이 존재한다.
5.냉소
이아고는 냉소적이기 짝이 없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명성보다는 거기(몸에 난 상처)가 더 아플 거라고 생각됩니다. 명성이란 어리석고 아주 헛된 짐이며, 종종 공로도 없이 얻었다가 이유도 없이 잃어버리는 거니까요. 스스로 잃은 사람임을 자처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명성을 잃은 게 전혀 아니올시다.
6.너무 많은 약속은 금물
악과 싸우는 것은 선이지만, 그 싸움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군사적 역량을 무리하게 확대하지 않는 것도 선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악은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작가나 지식인 같은 개인들은 자유롭게 악에 반대한다고 선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너무 많은 약속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아무리 냉소적인 범죄자라고 해도 무지막지한 범죄를 저지른 스탈린 정도는 아니다.
7. 정의와 현실의 조화
헨리 키신저는 젊은 시절에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것과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의로운 것에는 정치인이 속한 사회의 도덕적 가치가 포함되는 반면, 가능한 것에는 그 정치인이 대처해야 하는 다른 사회들의 가치와 국내 상황이 포함된다.
8.데탕트를 기억하자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후임자들은 푸틴이나 중국의 시진핑같이 도덕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다른 지도자들에 대해 또 다른 숙명적인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파괴 행위가 여전히 진행 중이었는데도 소련에 맞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 닉슨과 키신저가 중국과 휴전을 맺고 소련과 데탕트를 달성한 사실을 기억하자.
9.정의가 전부가 아니다
역시 선과 선의 싸움은 어느 정도의 악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로움은 아무리 도덕적으로 만족스러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현명한 국가 통치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분명 비극은 우리의 성격 안에 내재한다. 이 세계에 악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과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놓고 어려운 선택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하고 자존심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명예라고 생각하는 것을 옹호하다 비극적 종말에 다다를 수 있다.
10.자존심, 비극의 핵심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에서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가 죽은 후 동료 그리스인들이 위대한 병사이자 행동하는 인간인 자신에게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주지 않자 모욕당했다고 느낀다.
그 후 그는 아무 이유도 없이 무아지경에 빠져 가축떼를 죽인다. 정신을 차린 아이아스는 수치심을 느끼고 목숨을 끊는다.
자존심은 자기망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동시에 죄책감이나 굴욕감과 뒤얽힐 수도 있다. 따라서 자존심은 비극의 핵심이 된다.
11. 비극의 무게
비극의 무게는 리어 왕에게 가장 무거울 것이다. 아이아스보다 훨씬 더 심오하게 발전한 인물인 리어 왕은 고대 그리스인들부터 셰익스피어에 이르기까지 비극이 얼마나 먼 거리를 지나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너무 늦게 딸의 충성심을 깨달은 리어 왕은 죽은 코델리아를 부여잡고 소리친다. 통곡, 통곡, 통곡하라! 오, 돌덩이 같은 인간들아! 내게 너희의 눈과 혀가 있다면 하늘이 깨져라 울 것이다. 이 아이는 영영 가버렸구나.
이것이 매우 끔찍하기는 하나 비극에는 여전히 보다 심층적이고 최종적인 차원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관련 링크:뇌가 젊어지는 독서습관, 귀독서(좋은 습관 연구소, 우병현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