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서점에서 아무튼 시리즈를 종종 선택합니다.

아무튼 술, 아무튼 서재…그동안 아무튼 시리즈를 꽤 읽었습니다. 머리를 쉬고 싶을 때 아무튼 시리즈를 집어들지요.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은 배를 잡고 웃으면서 즐겼습니다.

주말에 전자책 서점을 둘러보다가 아무튼 여름을 골랐습니다. 필자는 사계절중 여름을 가장 좋아합니다. 특히 광복절에서 9월중순 사이 늦여름을 좋아합니다.

한 여름의 강렬함이 살아있으면서도 결실을 향해 성숙을 더해가는 시기가 늦여름이기 때문입니다.

여름에 땅거미가 질 무렵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말 벗들과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떠올리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오스트리아 작가 아델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을 여름철마다 다시 꺼내 읽기도 합니다.

아무튼 여름에서 냉면 편을 골라 읽었습니다. 뿌리를 찾아가면 냉면은 실은 겨울 음식입니다. 냉장및 제빙기술의 발달덕분에 냉면은 여름철 간판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냉면 역시 사람마다 기호와 평가가 다릅니다.

필자는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던 1994년 여름, 인천의 옹진면옥에서 먹었던 냉면을 강렬하게 기억합니다. 황해도식 냉면입니다.

최근에는 한남 오거리에 문을 연 마니록의 평양밀면을 즐깁니다. 면은 부산식 밀면을 육수는 평양식을 채택해 탄생시킨 새로운 냉면입니다.

청소년기를 부산에서 보내며 입에 익숙한 밀면과 청년기에 처음 맛본 우래옥의 육수가 만나 빚어낸 맛이 여러 시기의 기억을 불러냅니다.

아무튼 여름의 옥천냉면편을 읽고 냉면이 당기시면 한남동 마니록을 찾아보세요.

1.평양냉면에 대한 도전

대한민국에 평양냉면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진짜 냉면=평양냉면’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자연스레 ‘평양냉면 좋아하는 사람=진정한 미식가’라는 편견마저 생겼을 정도다.

나 역시 흐름에 발맞추고자 여러 평양냉면집을 기웃거리며 재료 본연의 슴슴한 맛, 그 안에 깃든 감칠맛을 느껴보려 애썼다.

2.을밀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다. 아무리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맨 처음 ‘을밀대’에서 먹었던 물냉면은 ‘이거 왜 먹는 거야? 맛’이었는데, 육수는 금방 미지근해지는 데다 싱거우면서도 느끼했다. 면은 텁텁하고 툭툭 끊겨서 씹는 맛이 없었다

3.우래옥

그다음 ‘우래옥’에 갔을 때는 일단 어마어마한 양에 놀라고, 동치미에 사골 육수가 실수로 들어간 것 같은 국물 맛에 한 번 더 놀랐다.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는 면의 양에 좌절하면서도 한 그릇을 다 먹긴 했지만, 헛배만 잔뜩 부른 느낌이었다.

가게를 빠져나오자마자 석연치 않은 위장을 다른 음식으로 눌러주고 싶은 마음에 같이 간 친구에게 떡볶이나 김말이 좀 먹어야겠다고 우겼다

4.반려냉면은 어디?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평양냉면집을 찾아다니며 내 인생의 ‘반려평냉’을 만나보려 했지만 처음 먹었을 때처럼 ‘이건 내 맛이 아니다’라는 사실만 재확인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도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평양냉면을 맛없다고 이야기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평양냉면은 일부 쿨한 자들이 애정하는 메뉴가 아닌가.

5.함흥냉면

함흥냉면을 먹으라고 말할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은데, 함흥냉면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MSG 맛, 자극적인 맛만을 좇는 뭘 먹을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함흥냉면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함흥냉면만 먹을 줄 아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은 그런 마음 뭔지 아시죠. 함흥냉면은 일종의 길티 플레저라서 몰래 먹게 된다. 그래서 더 맛있고.

6.유민상씨의 소개

개그맨 유민상 씨가 먹으러 간 냉면이 눈에 띄었다. 시원하면서도 달큼한 육수가 특징이라는 황해도식 냉면. 1952년에 영업을 시작해 4대째 운영 중인 그 집 물냉면을 먹고 유민상 씨는 기나긴 소회를 늘어놓았다.

“어흑! 이거 내 스타일이야. 어후, 다르다, 아예 달라. 평양냉면하고는 아예 달라, 아예! 입안이 깔끔해. 텁텁함 이런 거 하나도 없이!”

7.양평 옥천냉면

며칠 후 친구 ㄹ과 양평에 갔다.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옥천냉면 황해식당’은 커다란 강당 크기의 규모였는데, 이미 그 안에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냉면을 먹고 있었다.

그 광경에 가슴이 뛰었다. 서둘러 자리를 배정받아서 물냉면 하나와 비빔냉면 하나, 완자 반 그릇을 주문했다. 가슴이 또 한 번 뛰었다.

8.옥천냉면의 물냉면

나는 비빔냉면을, 평양냉면 마니아인 ㄹ은 물냉면을 시켰는데, 둘 다 맛보고서야 여긴 물냉면이 진리라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다.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섞어서 만든 면은 밀면이나 쫄면처럼 두께가 있어 쫄깃쫄깃하면서도 평양냉면 특유의 담백함이 살아 있었다.

9.육수맛

돼지고기로만 우려냈다는 육수는 부드럽고 시원한 데다 끝 맛은 조금 달아 심심하지 않았다. 여러 번 먹어보니 간장 맛이 났는데 아니나 다를까 식당 벽에 육수의 간은 천일염과 조선간장으로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육수는 감칠맛 나는 면발과 잘 어울렸고, 면처럼 얇고 가늘게 채 썰린 오이 역시 면하고 궁합이 좋았다.

10.평양냉면도 함흥냉면도 석연치 않은 사람

평양냉면도 함흥냉면도 석연치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옥천냉면이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장점만을 합쳐놓은, 유연하면서도 개성적인 냉면이니까.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가야만 맛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애틋함은 옥천냉면만의 비법 다대기 같은 것. 오직 냉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한 한여름의 양평행은 어느 여름 축제보다 반가운 이벤트다.

무엇보다 기쁜 사실 하나는 나에게도 여름에 꼭 챙겨 먹어야 할 냉면이 생겼다는 것. 그래서 덜 외롭다.

10.1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아무튼, 여름’에 나온 냉면집이라며 올라온 글을 보았다. 하지만 그 집이 아니었다. 내가 매년 여름이 오면 찾는 곳은 ‘옥천냉면 황해식당 본점’이다.

10.2 마니록의 평양밀면

관련 링크:뇌가 젊어지는 독서습관, 귀독서(좋은 습관 연구소, 우병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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