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실행자, 한범서울대 교수, AI를 책사로 삼은 서울대 교수의 생존 공식

한범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의 《AI 실행자》는 뜻밖의 장면으로 문을 연다. 저자는 출판사와의 첫 만남을 앞두고 AI에게 협상 전략을 묻는다. 스스로를 ‘협상력 레벨 0.1’이라고 부를 만큼 부탁과 거절, 자기주장에 서툰 사람이었다. AI는 원고가 없는 것을 약점처럼 보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저자가 몰래 프롤로그를 써두었다고 털어놓자 뜻밖의 지시를 내린다. 이메일로 보내지 말고 출판사 사람들 앞에서 직접 낭독하라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읽어 내려가야 하는 난처한 처방이었다. 그는 결국 그대로 실행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과정 자체가 ‘AI를 책사로 삼되 마지막 행동은 인간이 한다’는 책의 주장을 증명한 셈이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서울대 교수라는 단단한 갑옷 뒤에 숨지 않기 때문이다. AI가 자신의 전문성과 가치를 떨어뜨릴지 모른다는 불안, 인정받고 싶은 욕망, 협상을 두려워하는 성격, 유튜브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랩까지 배우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도전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솔직하다 못해 완전히 벌거벗은 한 인간의 생존기다. 그러나 그 고백은 자기연민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는 AI를 이용해 논문 번역 앱과 영어 발음 코치 서비스를 만들고, 유튜브 채널을 열고, 출판사와 협상하며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혀 간다.

저자는 AI 시대의 생존 경로를 자격으로 버티는 ‘디펜더’, 한 분야를 깊이 파는 ‘딥다이버’, 불편을 서비스로 바꾸는 ‘빌더’, 인간적인 온기로 연결되는 ‘소통자’, 여러 분야의 교차점을 선점하는 ‘인터섹터’로 나눈다.

그러나 이 분류보다 더 중요한 단어는 책 제목에 들어 있는 ‘실행자’다. AI에게 질문하고 계획을 세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서툴더라도 실제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다.

내용은 쉽고 간단해 보인다. 그래서 더 무섭다. 오늘 AI에게 한 번 더 질문하고, 작은 결과물 하나를 만들어 보고, 세상에 내놓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당장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작은 실행이 매일 쌓이면 인생의 복리처럼 불어난다. 1년 뒤에는 능력의 차이가 되고, 몇 년 뒤에는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이 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가족과 편안하게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삶을 지키기 위해 AI와 공진화했다고 말한다. AI가 전략을 짜줄 수는 있지만 이메일을 보내고, 마이크를 잡고,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손은 언제나 인간의 것이다.

책의 마지막 질문은 결국 독자에게 돌아온다. ‘실행하시겠습니까?’ 하루 만에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의 진짜 독서는 오늘 무엇 하나를 실행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필자=민학수 올댓골프대표 minhaksoo@penmedia.co.kr

1. AI는 그냥 흉내쟁이일 뿐이다

저자는 AI를 거창한 지성으로 신격화하지 않는다. AI는 인간이 써놓은 수많은 문장과 이미지, 코드의 패턴을 학습해 그다음에 올 것을 예측하는 정교한 흉내쟁이다.

의식도 감정도 없지만, 그 흉내가 너무 완벽해 인간의 전문 영역을 빠르게 침범한다. 이 정의가 내게는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AI를 두려운 괴물로 바라보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지만, 유능한 흉내쟁이라고 생각하면 질문이 달라진다. ‘AI가 나를 대체할까’가 아니라 ‘나는 이 흉내쟁이에게 무엇을 맡길 것인가’라고 묻게 된다.

2. 인간도 흉내쟁이다

더 흥미로운 반전은 인간 역시 흉내를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흉내 내며 언어를 배우고, 작가는 좋은 문장을 베끼며 문체를 익힌다. 기자도 선배의 질문법과 기사 구조를 따라 하면서 자기만의 시선을 만들어 간다. 나 역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면서 수많은 사람의 방식에서 배웠다. 그러므로 흉내는 창조의 반대가 아니다. 창조로 들어가는 입구다. 문제는 누구를 어떻게 흉내 내고, 그 모방을 자신의 경험과 판단으로 어디까지 변형하느냐에 있다.

3. AGI가 가능한 이유

인간의 지능 역시 특별한 신비라기보다 관찰과 모방, 피드백, 반복의 축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AI가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표현을 학습하고, 서로 다른 영역의 패턴을 연결하기 시작할 때 범용지능에 접근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에서 AGI는 먼 미래의 공상이라기보다 현재의 변화가 향하는 방향으로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AGI가 정확히 언제 등장하느냐가 아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오늘의 일과 배움을 다시 설계하는 사람이 먼저 움직인다는 점이다.

4. 코딩, 첫 번째 전쟁터—침공당할 것인가, 침공할 것인가

AI가 가장 먼저 뒤흔든 전장은 코딩이다. 한때 프로그래밍 언어를 오랫동안 배운 사람만 만들 수 있던 서비스가 이제는 자연어 몇 줄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를 기존 개발자의 영토가 침공당하는 사건으로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반대로 비개발자가 그 영토로 진입할 기회라고 본다.

침공당했다고 탄식할 것인가, AI라는 무기를 들고 새로운 영역으로 침공할 것인가. 나도 글과 영상 제작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예전에는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했던 조사, 구성, 자막, 이미지, 편집의 일부를 이제 직접 시도한다. AI는 일자리를 빼앗는 침략자인 동시에, 내가 넘지 못하던 성벽에 사다리를 놓아주는 도구였다.

5. 스킬플레이션

AI 시대에는 기술 하나를 익혔다는 사실만으로 오래 버티기 어렵다. 과거에 희귀했던 능력이 AI를 통해 빠르게 보편화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스킬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처럼 기술의 희소가치도 하락한다. 글을 잘 쓰고, 외국어를 번역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코드를 짜는 능력 자체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려워진다.

이 대목을 읽으며 서늘해졌다. 오랫동안 갈고닦은 솜씨가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기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해방감도 느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할 줄 아느냐보다, 여러 능력을 어떤 목적 아래 결합하느냐이기 때문이다.

6. 테크헤징의 꽃, 바이브코딩

투자자가 위험을 분산하듯 개인도 기술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테크헤징은 하나의 전문성에 인생 전부를 걸지 않고, AI를 이용해 새로운 기술을 계속 확보하는 전략이다. 그 중심에 바이브코딩이 있다. 코딩 문법을 완벽하게 익힌 뒤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싶은 것을 AI와 대화하며 구현하는 방식이다.

물론 AI가 내놓은 결과를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오류를 확인하고 방향을 수정하는 판단은 인간의 몫이다. 그러나 ‘모르기 때문에 시작할 수 없다’는 장벽은 크게 낮아졌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배움의 순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공부가 끝난 뒤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면서 필요한 것을 배우는 시대가 온 것이다.

7. 증강자아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개념은 ‘증강자아’다. 저자는 AI를 소라게의 껍질에 비유한다. 껍질은 소라게의 몸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지만, 껍질을 장착한 순간 그것은 소라게의 생존 능력이 된다. 마찬가지로 AI는 내 머릿속에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외부 도구다.

그러나 내가 매일 사용하고 판단하며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AI를 장착한 나 역시 확장된 하나의 자아가 된다.

이 개념은 내가 이미 경험하고 있던 변화를 설명해주었다. 혼자서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자료 조사와 영상 구성, 제목과 섬네일 문구, 낯선 기술의 학습을 AI와 함께 해내고 있다.

AI가 나 대신 살아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부족한 기억력, 속도, 기술을 보완해 내가 갈 수 있는 거리를 늘려준다. 증강자아란 완벽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적절한 도구를 장착하는 삶의 태도다.

8. 스킬트리형 인재, 폴리매스의 시대

한 우물을 깊이 파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대가 지나고 있다. 앞으로 필요한 사람은 하나의 전문성을 중심으로 여러 기술을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스킬트리형 인재’다. 저자는 생물정보학자이면서 앱을 만들고, 회사를 운영하며, 유튜브 영상을 찍고, 심지어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랩까지 배운다.

각각의 능력만 보면 최고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 사람 안에서 연결될 때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조합이 된다.

이 대목에서 나의 독서와 일도 다시 보였다. 골프를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능력에 영상 제작, 데이터 해석, 인터뷰, 책 읽기, AI 활용이 이어지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의 합이 아니다. 나만의 스킬트리가 된다. 폴리매스는 모든 분야의 천재가 아니다. 호기심을 따라 여러 능력을 배우고, 그것들을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연결할 줄 아는 사람이다.

9. 디펜더, 딥다이버, 빌더, 소통자, 인터섹터—그리고 실행자

저자는 AI 시대의 생존 경로를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자격과 제도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디펜더, 한 분야를 누구보다 깊게 파고드는 딥다이버, 문제를 발견해 제품과 서비스로 만드는 빌더,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잇는 소통자, 서로 다른 분야의 교차점을 선점하는 인터섹터다.

그러나 이 다섯 유형 앞에는 더 근본적인 조건이 있다. 실행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자격이 있어도, 깊은 지식이 있어도, 아이디어가 있어도 움직이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AI에게 조언을 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앱을 만들고, 유튜브 채널을 열고, 출판사 앞에서 프롤로그를 낭독했다. 실행자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두려움을 안고도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다.

10. AI로 인생을 복리로 성장시켜라

이 책을 하루 만에 읽었다. 문장이 쉽고 사례가 재미있어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그러나 다 읽고 나니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책의 내용은 놀랄 만큼 단순하다. AI에게 질문하고, 작은 것을 만들고, 공개하고, 반응을 받아 다시 고치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아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하느냐다.

오늘 AI를 이용해 작은 기술 하나를 배우고 결과물 하나를 만든 사람과, AI 뉴스를 읽으며 불안해하기만 한 사람의 차이는 당장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그 차이가 하루, 한 달, 1년 쌓이면 인생의 복리가 된다.

작은 실행이 다음 실행의 밑천이 되고, 새로 배운 기술이 또 다른 기술과 결합한다. 처음에는 미세했던 차이가 어느 순간 되돌리기 어려운 삶의 격차가 된다.

에필로그에 이르면 저자의 목적이 드러난다. 그가 AI와 공진화를 선택한 이유는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족과 편안히 밥 한 끼 먹으며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지키기 위해서다. AI는 전략을 제안하고 문장을 만들며 코드를 작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메일을 보내고,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고, 마이크를 잡는 일은 저자가 직접 했다. 최종 버튼을 누르는 손은 언제나 인간의 것이었다.

그래서 《AI 실행자》는 AI 사용 설명서라기보다 한 인간이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책이다. 완벽해진 뒤 출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족한 채로 AI를 장착하고 일단 움직이라는 권유다. AI를 책사로 삼되 삶의 주인 자리까지 내어주지는 말 것. 조언은 AI에게 구하되 선택과 책임은 인간이 질 것.

책의 마지막 질문은 단순하다.

“실행하시겠습니까?”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었지만, 이 책의 진짜 독서는 마지막 장을 덮은 뒤 시작된다. 오늘 버튼 하나를 누른 사람과 누르지 않은 사람의 삶은 아직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매일 쌓이면, 어느 날 전혀 다른 인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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