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는 2026년 7월 23일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오사카부립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자동차 부품회사 일본전장, 현재의 덴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낮에는 전기회로를 설계하고 밤에는 소설을 썼다. 훗날 그의 작품에 수학과 물리학, 과학적 사고와 치밀한 논리가 자주 등장한 것은 이런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는 뜻밖에도 책을 좋아하는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자전적 에세이 ‘그 시절 우리는 바보였습니다’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싫어했다”고 털어놓았다.
여동생들이 세계 아동문학 시리즈를 읽으면 “그게 뭐가 재미있냐”고 놀렸고, 자신은 흑백 TV 앞에 앉아 철완 아톰과 철인 28호에 빠져 지냈다고 했다. 책과는 거리가 먼 어린 시절이었다.
전환점은 고등학교 때 찾아왔다. 우연히 읽은 고미네 하지메의 미스터리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에 빠져들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들이 등장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그는 직접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1985년 스물일곱 살에 ‘방과 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그러나 성공은 곧바로 찾아오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도쿄로 옮겨 전업 작가가 됐지만 오랜 기간 대표작을 만들지 못했고, 나오키상 후보에 다섯 차례 올랐다가 모두 떨어졌다. 그래도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2006년 여섯 번째 도전에서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마침내 나오키상을 받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의 자리에 올라섰다.
생전 그는 “책을 싫어했던 나 같은 사람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초심은 끝까지 이어졌다. 어렵게 쓰기보다 다음 페이지가 궁금한 이야기를 만들었고, 정교한 트릭 뒤에는 사랑과 욕망, 죄책감과 가족 같은 인간의 문제를 놓았다. 그래서 추리소설 독자가 아니었던 사람들까지 그의 책을 집어 들었다.
데뷔작 ‘방과 후’에서 유작 ‘영원한 기억’까지 41년 동안 남긴 책은 공동 저술을 제외하고 106권에 달한다. 일본에서만 누적 발행 부수 1억900만 부를 넘어섰고, 작품은 41개 국가와 지역에서 번역 출간됐다. 영화와 드라마, 연극으로도 끊임없이 다시 태어났다.
한국에서도 인기 작가 였다. 교보문고가 2016년 7월부터 2026년 7월까지 10년간 소설 판매를 집계한 결과, 히가시노 게이고는 해외 작가 가운데 판매 1위였다. 한국 작가까지 포함하면 노벨상을 받은 한강에 이어 전체 2위. 무라카미 하루키보다도 많이 팔렸다. 대표작’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한국에서 약 200만 부가 팔렸다.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나오키 상의 영예를 안긴 ‘용의자 X의 헌신’을 10개의 키워드로 읽어본다.
1. 이웃 ― 모든 것은 옆집에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며 딸 미사토와 살아가는 하나오카 야스코가 있다. 이혼한 뒤 어렵게 새로운 삶을 꾸렸지만, 전남편 도가시 신지는 끈질기게 그녀를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그런 야스코의 옆집에는 고등학교 수학교사 이시가미 데쓰야가 혼자 살고 있다.
말수도 적고 외모에도 별 관심이 없는 평범한 중년 교사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천재로 인정받았던 수학자다. 이시가미는 매일 도시락을 사러 가면서 야스코에게 남몰래 마음을 품는다. 그러던 어느 날 도가시가 야스코의 집에 들이닥친다.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번지고, 야스코와 미사토는 결국 그를 죽이고 만다. 우발적인 살인이다. 모녀가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옆집 문을 두드린 사람이 이시가미다. 여기서부터 평범한 살인사건이 천재 수학자가 설계하는 하나의 ‘문제’로 바뀐다.
2. 논리 ― “제 논리적 사고에 맡겨주십시오”
이시가미는 야스코에게 자신이 모든 것을 처리하겠다고 말한다. 경찰이 찾아오면 무엇을 말할지, 어디에 갔다고 할지, 누구와 만났다고 할지까지 세세하게 지시한다. 야스코와 미사토에게는 영화관에 가고 식사를 하며 일부러 사람들의 기억에 남으라고 한다. 얼핏 보면 전형적인 알리바이 조작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시가미의 계획은 훨씬 깊다. 그는 단순히 경찰을 속이려 하지 않는다. 경찰이 앞으로 무엇을 의심하고 어떤 순서로 조사하며 어디에서 모순을 찾으려 할지까지 예상한다.
수학자가 복잡한 문제를 증명하듯 수사 과정 자체를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의 실체를 감추기보다 경찰의 사고를 통제한다. 이때부터 야스코의 범죄는 이시가미의 ‘작품’이 된다.
3. 알리바이 ―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이상하다
며칠 뒤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경찰은 여러 정황을 통해 피해자를 도가시라고 판단하고 그의 전처 야스코를 의심한다. 전남편에게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동기도 충분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경찰이 추정한 범행 시각에 야스코와 딸에게는 상당히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있다.
두 사람은 밖에서 영화를 보고 식사를 했으며 이를 뒷받침할 흔적과 증언도 존재한다. 경찰은 당연히 이 알리바이를 깨려고 한다. 영화관에 실제로 갔는가, 시간을 조작하지 않았는가, 누군가 대신 가지 않았는가. 그러나 조사할수록 야스코의 이야기는 맞아떨어진다.
이것이 이시가미의 첫 번째 함정이다. 경찰은 알리바이를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문제에는 애초부터 모순이 없다. 야스코는 정말 그 시간에 살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문제 ― 답을 감춘 것이 아니라 질문을 바꿨다
이 책의 가장 유명한 아이디어가 여기서 나온다. 문제를 만드는 것과 문제를 푸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 이시가미가 한 일은 경찰에게 아예 다른 문제를 내준 것이다. 경찰은 ‘발견된 시신이 도가시이며, 이 사람이 이 시간에 죽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그 시간에 야스코가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가”를 풀려고 한다. 경찰은 뛰어난 수사력을 발휘하지만 출발점이 틀렸기 때문에 답에 도달할 수 없다.
5. 천재 ― 출제자 이시가미와 풀이자 유카와
경찰의 수사가 막히자 형사 구사나기는 대학 시절 친구인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에게 사건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유카와는 야스코의 옆집에 사는 수학교사 이름을 듣고 놀란다. 이시가미는 대학 시절 유카와가 진심으로 천재라고 인정했던 친구였다.
이제 한 사람은 완전범죄의 설계자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풀어야 한다. 형사와 범인의 추격전보다 훨씬 묘한 긴장을 만든다. 이시가미의 상대는 자신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유카와다. 유카와는 “이시가미라면 왜 이런 문제를 만들었을까” 생각한다. 범죄 수사가 두 천재 사이의 수학적 문답으로 변한다.
6. 관점 ― 기하 문제인가, 함수 문제인가
이시가미는 학생들에게 “기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 기하는 도형과 공간에서 답을 찾고, 함수는 두 값이 어떻게 연결되고 변하는지를 살핀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쉽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문제도 무엇을 문제라고 보느냐에 따라 풀이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경찰은 야스코의 알리바이를 깨려 했지만 유카와는 전제부터 의심한다. 도가시가 그 시간에 죽었다는 전제, 발견된 시신이 도가시라는 전제 말이다. 경찰의 계산이 틀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잘못된 문제를 풀고 있었던 셈이다.
7. 톱니바퀴 ― 천재인데도 행복하지 않았던 남자
이시가미는 수학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현실의 삶에서는 깊이 고립돼 있었다. 연구자로 성공하지 못했고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시계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필요한 톱니바퀴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시가미의 진짜 비밀은 수학적 재능이 아니라 고독이다. 그리고 그 고독 때문에 야스코와 미사토의 존재가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하던 삶에 두 사람이 나타났고, 이시가미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이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고 느낀다.
8. 감사 ― 누가 누구를 구했는가
이시가미는 한때 자신의 삶을 끝내려 할 만큼 절망해 있었다. 바로 그 무렵 야스코와 미사토가 그의 삶에 들어온다. 두 사람이 특별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시가미에게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다시 살아갈 이유가 된다.
우리가 처음 보는 관계는 ‘이시가미가 위험에 빠진 야스코를 구한다’는 구조지만, 이시가미 자신에게는 반대다. 야스코가 먼저 자신을 살려주었다. 그래서 그의 감정에는 사랑과 함께 깊은 감사가 존재한다. 이시가미가 야스코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제목의 ‘헌신’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열쇠다.
9. 헌신 ― 이시가미가 만든 진짜 완전범죄
그리고 마침내 유카와가 진짜 문제를 풀어낸다. 이시가미가 준비한 것은 단순한 알리바이가 아니었다. 야스코와 미사토가 도가시를 죽인 뒤, 그는 경찰이 도가시라고 믿을 또 다른 시신을 준비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어 실종돼도 금세 추적되지 않을 사람을 희생시키고, 신원을 알아보기 어렵게 만든 뒤 도가시의 소지품 등을 이용해 경찰이 그 시신을 도가시라고 믿도록 유도한다. 경찰은 그 가짜 사건의 사망시각을 기준으로 야스코의 알리바이를 조사한다.
그래서 아무리 조사해도 무너지지 않는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시가미가 마지막에는 자신이 도가시를 죽였다고 자수해 야스코와 미사토를 사건에서 완전히 떼어놓으려 한다는 점이다.
10. 인간 ― 완벽한 계산을 무너뜨린 단 하나의 변수
이시가미의 계획은 거의 완벽했다. 경찰의 사고도 계산했고, 증거도 만들었으며, 자신이 범인이 되는 마지막 단계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단 하나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야스코의 마음이다. 야스코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이시가미가 어디까지 갔는지를 알게 된다.
특히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사람이 희생됐다는 진실까지 마주하자 그 헌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야스코는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길을 택한다. 이시가미가 목숨처럼 지키려 했던 계획은 경찰이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의 양심 때문에 무너진다. 마지막 장면은 추리소설의 ‘해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유카와는 문제를 풀었지만 기뻐하지 못하고, 이시가미는 모든 논리를 잃은 채 무너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