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MIT대 교수는 2024년 제도가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기전에 그는 이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대런 애쓰모글루의 알파벳 표기는 ‘Kamer Daron Acemoğlu’입니다. 그는 튀르키예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코카서스 3국중 아르메니아계입니다. 아르메니아에 출발해 튀르키예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의 산증인인 셈입니다.
2018년 세계 IT행사차 아르메니아를 방문했을 때, 튀르키예의 뿌리인 오스만제국이 1차 대전때 아르메니아인을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학살한 사건을 접하고 무척 놀랐습니다. 현재도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젠, 튀르키예 등 이웃 이슬람 국가와 극도의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967년생인 애쓰모글루는 튀르키예와 영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교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이먼 존슨, 제임스 A. 로빈슨 교수의 공동 연구를 통해 “한 국가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지리적·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다”라는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특히 사유재산을 보장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하며, 공정한 경쟁과 대다수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포용적 제도 (Inclusive Institutions)가 국가를 장기적인 번영으로 이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비해 착취적 제도 (Extractive Institutions)는 소수 권력층이 사회적 부를 독점하고 대중을 착취하는 착취적 제도가 국가를 실패로 이끈다고 봅니다.
애쓰모글루의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는 그의 정치적 지향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퇴행의 원인을 정치경제학적으로 풀이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정확한 진단 없이는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적 민주정이 “영구적으로” 훼손된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고, 자유주의가 스스로를 재생시킬 수 있는 길에 대해 청사진을 마련할 수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1.빅토르 오르반과 역사의 종언
1989년 무렵 헝가리가 소련 지배로부터의 독립과 민주정의 수립을 일궈내는데 청년 정치가 오르반 빅토르의 공이 컸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오르반의 활약을 보면서 “역사의 종언”이 도래했으며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적 민주정을 향한 더 밝은 미래가 당도했다고 선언하였다.
1.1 오르반의 배신, 비자유주의 선언
하지만 널리 퍼졌던 낙관주의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이제 깊은 위기의식이 들어섰다. 이번에도 그 선봉에 빅토르 오르반이 있다.
2014년 오르반 총리는 어조를 완전히 바꿨고, 자유를 역설하던 목소리는 사라졌다. 오히려 자신이 “비非자유주의 국가”와 “노동 기반의 사회를 건설”하고 있으며 [반이민, 반다문화주의의 취지로] “유럽의 그리스도교를 수호”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선언했다.
1.2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오르반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의 많은 비자유주의적 정치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전형 같은 존재다. 이제 그는 쇠락의 경로를 탄 자유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 자유주의 빅텐트
미국에서는 대개 자유주의적(“리버럴”)이라고 하면 좌파 입장을 나타내지만 유럽에서는 자유시장 지향의 우파 입장을 나타낸다.
자유주의는 정치 “철학”도 지칭하지만 그 철학에 기초해 세워진 “제도”를 지칭하기도 하고 (때로는 느슨하게였을지라도) 그 철학의 이상에서 추동된 정치적 “실천”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는 자유주의가 수많은 변형과 변종을 아우르는 “빅 텐트”임을 의미한다. 자유주의가 무엇인지는 이 모든 변종의 공통분모로 이야기할 수 있다.
2.1 자유주의의 가치
모든 자유주의자는 기본적인 개인의 권리와 자유(강압에 처하지 않을 권리나 표현·종교·결사·선택의 자유 등), 권력의 견제(특히 정치권력의 견제), 만인에게 적용되는 법 앞의 평등이 바람직하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사회의 “진보”가 실현 가능하며 진보의 실현이 바람직하다는 데도 동의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자유주의자, 특히 좌파 성향의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취약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견고한 의지와 실천도 목록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2.2 자유민주정, 자유주의의 제도적 원형
이 믿음이 민주정의 개념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민주정을 자유주의의 제도적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이상과 충돌하지 않으며, 자유주의에 곁다리로 붙는 부가물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개념에 본질적인 부분이다. 자유주의에는 자치 및 자치가 수반하는 책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 이 책의 지향점, 좌파 자유주의
이 책은 정치 “철학”으로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그 철학에 기반한 정치 “제도”와 정치 “운동”으로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나는 자유주의의 빅 텐트 중에서 좌파 쪽 코너에 종종 초점을 맞출 것이다
3.1 자유민주정의 제도적 핵심
미국의 뉴딜 자유주의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실제 역사에서 물질적·사회적 진보의 엔진이었고 자유민주정의 제도적 핵심이었다.
노동계층, 여성, 인종·민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기본권을 확대하는 데 촉매가 되었고 서구 국가들에서 2차대전 전후 시기 주요 의제를 설정한 것이 이 좌파 버전의 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3.2 비자유주의적의 의미
핵심 믿음과 실천에서 이탈하는 모든 운동은 비非자유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실에 존재했던 파시즘, 권위주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좌우파 모두의 정체성 기반 이데올로기 등이 해당한다.
4.자유민주주의 위기
좌파 버전의 자유주의가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좌우파 모두를 자유주의적 개혁에 나서게 했고 또 대개 성공도 했던 자유주의다.
또한 그 좌파 버전의 자유주의가 오늘날 위기에 빠져 있는 자유주의다. 정치 운동으로서도, 자유민주정이라는 정치 제도로서도 말이다.
4.1 민주정에 대한 의심
위기의 가시적인 부분은 데이터로 확인된다. 미국의 경우 지난 30년 사이에 모든 연령대에서 민주정이 가장 좋은 정부 형태라고 선뜻 인정하려 하지 않는 추세가 강해졌다. 이 변화는 미국의 18~35세에서 특히 확연하다.
4.2 제도와 기관에 대한 불신
또한 미국인들은 민주주의의 제도와 기관에 충격적일 정도로 낮은 신뢰를 보인다. 2023년 6월에 백악관과 대법원을 “많이” 혹은 “상당히” 신뢰한다고 답한 사람은 응답자의 4분의 1뿐이었고 의회에 대해서는 이 비중이 8퍼센트에 불과했다.
신문과 미디어에 대한 신뢰도 별반 나을 게 없다
5.양극화 심화
여러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근래의 역사에서 필적할 만한 수준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양극화되어 있다
1990년대에는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모두에서 상대 당에 “매우 비우호적인”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양당 공히 유권자의 과반이 상대 당에 “매우 비우호적”이다
5.1 타협을 터부시
놀라운 징후는 미국인들이 타협을 점점 더 마뜩치 않아 한다는 것이다. 양당 모두에서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상대 당과 서로 양보해 중간 어딘가에서 만나는 타협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이 중 어느 것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근 한동안 자유민주주의가 영 자신의 약속에 걸맞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6.자유민주주의의 세 가지 약속
6.1 공유
민주정은 번영과 그 번영의 공유를 약속했다. 어느 집단도 뒤로 남겨지지 않도록, 경제적·기술적 발달의 과실이 경제적 특권층과 나머지 계층 사이에 고루 분배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민주정이 번영의 공유를 약속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해서,
6.2 하수구
민주정이 공공서비스를 약속한다는 점은 영국 계관시인 존 베트제먼John Betjeman이 1940년에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노래한 바 있다. “우리 조국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생각해보소서 (…) 민주적 제도와 제대로 된 하수구.”
그때까지 많은 비민주적 정부들이 보건, 교육, 도로,하수구의 제공을 거의 완전히 외면해왔기 때문에, 공공서비스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다
6.3 목소리
민주정은 제약되지 않는 목소리와 자치도 약속했다. 사람들은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고 타운홀 미팅에서 숙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1830년대에 미국을 방문한 젊은 시절의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미국의 제도는 원칙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결과에서도 민주적”이라고 기술했다.
7. 자유민주주의가 이룬 성취
민주정이 자유주의의 이상으로부터, 때로는 자유 자체로부터도, 멀어지는 방향으로 탈선할 때도 자유민주주의는 진전되었다.
세 가지 약속을 실제로 지켰으며, 특히 전후 시기에 민주정이 성숙하고 좌파적 자유주의 개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약속이 더 온전하게 실현되었다.
7.1 빠른 경제성장
자유민주주의를 번영과 번영의 공유라는 측면을 보면, 전후 30년 동안 미국은 매우 빠른 경제성장을 누렸다. 그런데 정작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번영이 매우 평등하게 분배되었다는 점이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일본은 전후 30년 사이에 미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또 성장은 미국에서보다 더 평등하게 분배되었다. 스칸디나비아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확산되고 전후의 사회적 합의에서 노조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한 가지 요인이었다.
7.2 하수구 제공
민주정은 “하수구”의 제공에서도 성과를 보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공공서비스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호하는 중요한 규제도 도입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어떻게 기업이 소비자에게 안전한 제품을 내놓게 하고 노동자에게 안전한 노동 환경을 제공하게 할 것인가는 사라지지 않는 문제였다.
7.3 목소리 내기
자유민주주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게 하는 데서도 성과를 냈다. 미국인들은 타운홀 미팅에 나가고, 자신의 지역공동체의 통치에 목소리를 내고, 선거에서 표를 행사하면서 정치에 참여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Dahl이 1950년대에 뉴헤이븐의 지역 정치를 “누가 통치하는지who governs”를 연구했을 때, 답은 하나의 기성 정당이나 단일한 지배 엘리트 계층이 아니었다
8. 깨어진 약속
하지만 2000년대 즈음이면 조류가 확실히 바뀌어 있었다. 이제 유권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핵심 약속을 저버렸다고 믿고 있었다.
8.1 소수에 부가 집중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퍼센트 가구의 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에 10퍼센트 정도였던 데서 2019년에는 무려 19퍼센트가 되었다.
소득 대신 부로 계산하면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심지어 더 극단적이어서, 35퍼센트나 된다.
8.2 불평등의 확산
미국에서 불평등은 경영자 대 노동자, 울트라 리치 대 나머지, 대졸자 대 고졸자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1980년 이후 대도시 지역과 소도시 및 농촌 지역 사이의 격차도 벌어졌다. 또 국민소득 중 자본(기업 소유주와 금융가)과 노동(노동자) 사이의 분배도 명백히 더 불평등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8.3 세대간 불평등
1940년에 태어난 사람들의 90퍼센트가 부모보다 많이 벌었다. 이에 비해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진보가 완전히 멈추었다.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중 절반이 부모보다 못 번다.
8.4 최상위층 노동자의 독식
미국의 은행과 다국적 기업, 특히 테크 기업들은 훨씬 더 강력해졌고 최상위층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고액의 임금을 기꺼이 지급했다.
또한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일자리를 해외로 오프쇼어링offshoring하면서도 경영진에게 주는 보상은 계속 올렸다.
9. 공공서비스도 쇠퇴
건강은 미국이 독보적으로 실패한 분야다.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미국은 프랑스, 영국, 일본보다 1인당 의료비를 세 배나 더 쓰고 있었지만, 어느 지표로 보아도 덜 건강했고 수명도 짧았다.
9.1 사회 인프라 열악
도로 여건 악화와 도로 폐쇄 같은 공공서비스 교란은 일상이 되었다. 무언가가 보수공사에 들어가면 다시 가동될 때까지 몇 년씩 걸린다. 미국인들은 TV에 보이는 중국은 다리를 몇 달 만에 뚝딱 짓는데 자기 나라에서는 간단한 보수공사조차 몇 년씩 걸리는 꼴을 봐야 한다
9.2 제 발등 찍기의 교과서적 사례
조 바이든이 퇴임한 2025년 1월까지 착수라도 된 프로젝트는 7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으며, 완공된 것은 그중 아주 일부뿐이었다.
누가 어느 수준의 임금으로 고용되어 몇 시간을 일할 수 있는지, 차별 금지 및 환경 규칙을 준수하려면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심지어는 어떤 자재가 사용되어야 하는지까지 등 바이든 행정부가 부과한 규제는 아주 많은 서류 작업을 연방 계약자에게 적용되었다.
결국 이 규제는 바이든 본인이 진전시키고자 했던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았다.
10. 민주적 목소리 내기의 쇠퇴
“민주적 목소리” 도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쇠퇴했다. 오늘날 미국인의 85퍼센트 이상은 선출직 공직자들이 자기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에 관심이 없다고 느낀다.
연구들에 따르면, 선출직 공직자들[의원들]이 의회에서 투표를 할 때 유권자 중 하위 3분의 2의 정책 선호는 무시하고 가장 부유한 유권자층의 선호에 맞추어 표를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민주정이 성과를 잘 내지 못하는 이유
탈산업시대에 민주정이 성과를 잘 내지 못하는 데는 중대한 기술적·사회적 이유들이 있다. 하지만 민주정의 존재 근거인 약속이 무너질 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11. 자유주의적 민주정의 실패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순히 민주정의 실패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민주정의 실패다. 공동 번영과 공공서비스를 약속했고 한동안 실제로 가져다주기도 한 것이 바로 자유주의적 민주정이었다.
평범한 시민들이 자유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겠다는 것도 자유주의적 민주정의 핵심 약속이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적 민주정의 위기라고 규정할 수 있는 이유다.
11.1 실패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
반자유주의적 대안 중 어느 것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하지는 못했고, 자유주의자 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정확한 진단 없이는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적 민주정이 “영구적으로” 훼손된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고, 자유주의가 스스로를 재생시킬 수 있는 길에 대해 청사진을 마련할 수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