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를 망치는 낡은 리더십과 구태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우려하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과 2차관이 따로 논다느니, 창조경제 정책이라고 해봐야 지난 정부 정책의 재탕이라느니 하는 비판이다. 심지어 창조경제의 수장인 미래부 장관이 관련 부처 장관과 정책을 조율할 엄두도 못 낼 정도로 힘이 없다고 한다.
비판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창조’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채택한 것 자체가, 창조경제의 무기력한 모습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는다. 창조경제론은 성공을 해석하는 개념이지, 성공을 위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경제론은 한국 경제의 질적 성장에 대한 시대적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서, 그 자체를 문제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창조경제의 질적 성장론을 양적 성장 방법론으로 다루는 낡은 리더십과 공무원의 구태에서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경제는 양적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삼성 쏠림’이 더 거세지면서 한국 경제 특유의 역동성과 생기가 사라지고 있다. 이를테면 중견 기업은 하나둘씩 차례로 망하고, 젊은이들은 삼성그룹 입사 시험에 목매달고 있고, 새로운 창업스타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이런 갑갑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기존 성장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성장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보다 ‘모험적 선도자’(first mover)를 더 높이 사는 창조경제와 같은 질적 성장론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모험적 선도자는 베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알고리즘을 만들려는 사람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지에만 가려고 하지 않고, 가는 여정을 투명하게 밝혀 다른 사람이 표준으로 따르게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울러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문제 해결 수단으로 삼는 사람이다.
박근혜 정부는 9개월 동안 창조타운 사이트 개설, 창업지원, 정부3.0 등 창조경제 실행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들 정책은 하나같이 창조경제의 곁가지일 뿐이다. 시장이 기대하는 것은 선도자 인재 육성에 대한 구체적 실행론인데, 지금까지 그런 것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시장은 창조경제 첫해에 대해 낙제점을 매기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창조경제의 진정성을 살리면서 갑갑한 경제에 희망을 주려면 박 대통령은 개별 정책이 아니라, 모험적 선도자 인재를 키우기 위한 실천론을 제시해야 한다.
조선 역사에서 질적 성장에 성공했던 임금으로서 세종과 정조가 꼽힌다. 두 임금의 공통점은 혁신을 위해 인재와 지식이 만나는 공간을 먼저 만든 점이다. 세종은 집현전을, 정조는 규장각을 세워 고급 지식을 그곳에 채우고 전국의 다양한 인재를 불러보았다. 그 결과 집현전과 규장각은 지식과 아이디어가 마르지 않는 샘물 역할을 했다.
이처럼 새로운 인재를 키우려면 거대한 지식 공간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정부 주요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면서 역할이 바뀐 광화문 앞 정부종합청사를 아시아를 대표할 만한 대형 도서관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면 국내외 인재들이 이곳에 몰려와서 첨단 지식을 늘 접하고, 또 함께 24시간 365일 내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면서 지식과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것이다.
혁신의 산실인 미국 실리콘 밸리도 인재와 지식이 늘 만나는 거대한 도서관이지, 기업과 공장이 모여 있는 산업 단지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