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인터넷 가브넌스의 용어 사용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에 대해서는 “네트웍 상호연결의 과정(process of internetworking)”만이 있으며 “가브넌스(governance)”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면서 오직 “조정 (coordination)”만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ㅡ 이러한 제한된 의미의 조정만을 의미하는 것온 아니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인터넷 코디네이션(Internet coordination)이라는 용어이외에도 MIT의 David Clark는 “rough consensus and running code”라는 문구를 사용하기도 하였고, Internet Society의 의장인 Don Heath는 “rough consensus”를 “broad-based acceptance, not unanimity”라고 해석 하였다.

위의 인용문은 필자 황철증이 1999년 1월 정보통신정책 ISSUE (제11권 3호 통권 111호)로 발간한 《인터넷 가브넌스 이해 (Introduction to the Internet Governance) – IANA)와 lCANN의 역사적 분석을 통하여 -》라는 소책자에 담겨 있다. 인터넷 공간의 역사를 돕는 필자의 다른 소책자는 1998년 12월 정보통신정책 ISSUE (제10권 13호 통권 107호)로 발간된 《종합정보통신망·초고속정보통신망·인터넷·가상공간 – 새로운 법률적 이슈와 규율 (ISDN.·Information Superhighway·Internet·Cyberspace – Emerging Legal Issues and Governance)》를 참조해도 된다.

33년 전의 나의 생각과 현재의 나의 생각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글은, 누차 이야기하지만, ‘디지털 공간론’으로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끌어내는 작업이다. 그 ‘공간’은 ‘신뢰’ 공간이어야 한다. ‘신뢰’는 기술적 속성일 뿐, 인간적 속성이 제거된 것을 말한다. 어쩌면 이 개념이 디지털 공간의 기초이면서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 ‘신뢰’ 공간의 응용 프로젝트로서 구현되는 것들을 우리는 플랫폼(platform)이라고 하기도 하고, 생태계(ecosystem) 라고도 한다. 급기야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그렇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물리 공간 (물리 세계), 현실 공간 (현실 세계)를 묘사하라고 하면 당신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엄두가 나는가? 내가 ‘디지털 ‘신뢰’ 공간 설계 능력 부족’이 대한민국 디지털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잠재성장률을 추락시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럼 당연히 ‘공간’을 어찌 이해해야 할 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략적 해법을 몇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지만 그렇게 결론만 말하고 싶지 않다. 글로벌 CEO들을 만나 우리는 실제적인 해법을 원하는 욕심 때문에 사업의 해법을 직설적으로 묻는데, 그들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을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철학을 말한다. 한국의 CEO 중에서 월급쟁이 CEO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것들이다. 물론 오너에게서도 찾기 어렵다. 이런 지적 풍토와 토양이 디지털 산업의 경쟁력을 추락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나는 또 주장한다. 아날로그 산업, 즉 공업에서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한 때는 미국과 겨뤘던 일본은 도장(圖章)과 팩스(fax)에 대한 아름다운 숭상 문화를 지키며 결국 디지털 산업에서 밀려나 침몰하고 있다.

그러니 또 성질 급하게 나에게 해법을 빨리 제시하라 요구하지만, 이어서 쓰겠지만, 이미 전편의 글에서 단서는 다 나열했다. 다시 읽어보시라.

그런데 정답만을 찾고 이를 취하려는 공부의 태도, 사유의 과정을 무시하는 자세, 그것을 나는 바칼로레아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는, 예능적 지식 축적이라고 조롱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플랫폼”, “OS”, “브라우저”, “생태계”, “시스템반도체”, “클라우드”, “빅데이터”, “BSS/OSS”, “AI” 어느 하나 변변한 게 없는 실정의 우리의 디지털 산업 경쟁력의 근본적인 추락 원인일지도 모른다.

사실 물리 공간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데 디지털 공간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요구하는 것인가. 유클리드 기하학과 뉴튼의 절대공간에 이인슈타인과 민코프스키의 상대공간이 더해졌으니, 시간과 질량과 크기에 동반하는 공간의 이해는 훨씬 어려워졌다. ‘수학적 공간’, ‘물리학적 공간’, ‘기하학적 공간’, ‘철학적 관념의 공간’, ‘예술의 상상의 공간’으로 물리 공간의 이해 확장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이 이제 우리는 ‘가상공간 (디지털 공간)’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니 도대체 ‘디지털 공간’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선’과 ‘면’을 설계하는 능력과 ‘공간’을 설계하는 능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가 33년 전과는 다른 생각으로 점(pointland)과 선(lineland)과 면(flatland)의 연결성(connectivity)을 넘어 디지털 공간성(spatiality)을 주장하는 것은, 새롭게 생각을 해보자, 그러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출간된 에드윈 애벗 (Edwin A. Abbott, 1849 ~ 1926)의 《플랫랜드》는 20세기 물리학자들의 극찬을 받은 수학 소설인데, 《플랫랜드》 그리고 《주석 달린 플랫랜드》는 어떤 통찰을 인간에게 던지는가? “플라톤의 동굴 속에 있는 죄수처럼 플랫랜드의 사람들은 그들이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세계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세계라는 믿음, 즉 ‘차원적 편견’에 구속되어 있다. 각 도형이 ‘알고 있는’ 희미한 현실들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 편견 때문에 흐려진다.”

물리공간인 현실 세계는 어떻게 생겼을까? 굳이 답변을 하지 않더라도 알 것이지만, 그럼 디지털 공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얼마만큼을 설명해야 디지털 공간을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설명 방법이야 너무 다양하다. 나는 물리 공간의 국가 구성요소로서 ‘영토’, ‘국민’ 그리고 ‘주권’에 대응하는 것을 디지털 공간의 요소로서 비유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3위 일체인가? 그런데 디지털 공간은 물질(matter)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니, ‘요소’라고 하지만 나는 이를 원리(原理)라고 말할 것이다.

《디지털 공간론 제1원리》

무엇보다도 존 페리 발로우가 선언했듯이 비트(bit)로만 이뤄진 디지털 공간을 물리 공간과는 ‘단절’ 즉, ‘독립’된 공간으로 인식한다면, 나는 이를 《디지털 공간론 제1원리》로 풀어 낼 것이다. ”디지털 공간은 있는가?(존재하는가?)” “디지털 공간은 무엇인가?”라는 존재철학적 질문에 앞서, 아니 그런 질문에 대해 전통적 철학적 사유를 통한 참과 거짓의 답변이 가능한 것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논리실증주의 또는 분석철학적 사유를 통해 그 독립의 의의가 방법적 긍정에 의해 의미체계를 이론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면 과격한 독립 선언이지만 이는 디지털 공간론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유관 공간 개념들 – ⒜ 인터넷 공간(세계), 사이버 공간(세계), 가상 공간(세계) 또는 ⒝ 유비쿼터스 공간, 만물지능공간 등 또한 ⒞ 디지털 플랫폼, 디지털 생태계 등 또는 ⒟ 도메인네임 공간, IP 주소 공간 또는 ⒠ 월드와이드웹 공간, 이커머스 공간 등 또는 ⒡ 블록체인 공간, 메타버스 공간 -과 구별하고 총칭하여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공간”으로 부를 것이다. 하여튼 공통적 요소로는 기술적 공간이고, ‘인간의 냄새가 없는 차가운 공간이다.’ 공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의 활동 표현을 지금까지 웹서핑(web surfing)이라고 하였다면, 앞으로는 디지털 공간 유영 (digital spacewalking)이라고 해야할까?

《디지털 공간론 제2원리》

그리고 존 페리 발로우의 독립선언서에 등장하는 ‘그대들’(You)은 물리 세계의 정부 (Governments of the Industrial World)를 일컫고, 우리(We)는 당연히 ‘사이버 공간인’ 즉 ‘디지털 공간인’을 말하는데, 그는 이를 “our virtual selves”라고도 말했다. ‘우리(We)’를 어찌 정의하여야 하는 지는 이 글의 핵심을 관통하는 미묘한 주제어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색, 무취, 무미, 건조한 디지털 공간의 디지털 공간’인’의 속성에 인간적 요소를 담을 것인지 말지는 더욱 미묘한 주제이다.

전편에서 나는 디지털 공간을 의인화(personification)하여 이해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DID는 DID일 뿐 PID와는 독립된 것이다. PID는 지구인이라면, DID는 행성 ‘판도라’의 토착민인 “나비(Na’vi)”이다. 의인화된 “아바타(Avatar)”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DID가 될 수도 있지만 디지털 공간인은 “나비(Na’vi)”이다.

인간은 우주 공간과 지구에서의 존재의 자기정당성을 인류 원리(人類原理. anthropic principle)로 증명하는데 이는 자기 모순의 순환논증일 뿐인 ‘인간중심원리(人間中心原理)’이다. 자연에 가하는 오염 인자인 인간의 발자국이 ‘달’에는 남았지만, ‘화성’까지에도 허용돼야 할 것인가? 더욱 ‘디지털 공간’까지에도?

그래서 나는 물리 공간의 ‘인간’으로부터의 독립에서 비롯되는 ‘디지털 공간론 제2원리’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공간론 제3원리》

그럼 《디지털 공간론 제3원리》로서 ‘주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는 앞에서 언급한 2가지의 원리에서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것으로서 물리 공간에의 종속으로부터, 그 공간의 인간에 의한 지배권으로부터의 독립에서 비롯되는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3가지 원리(原理)에 대한 지금까지의 설명은 아직 ‘소극적(消極的)’ 정의에 머무른다. ‘적극적(積極的)’ 의미의 ‘디지털 공간’, ‘디지털 공간인’, ‘디지털 공간 주권’을 치밀하게 구성하여 설명하는 작업은 바로 디지털 공간 설계도에 이르는 선행 작업이고 첩경인데, 이는 좀 길어질 수 밖에 없어 다음 편의 글에서 다룰 수 밖에 없다.

신은 편견 가득하고 조변석개를 즐기며 감정에 흔들리는 인간에게 물리 공간 운행(運行)을 맡길 수 밖에 없었지만, 《신뢰》 공간을 기대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듯 참으로 난망하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AI는 인간에게 의지하는가 스스로에게 의지하는가? 디지털 공간의 자율 운행(運行) 능력은 AI에 의해서 더욱 더 강화되고 있지 않은가? 디지털 공간의 신뢰의 구조는 쿠르트 괴델(Kurt Gödel, 1906 ~ 1978)의 ‘불완전성 정리’가 AI의 출현을 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그 함의를 생각해볼만 하지 않은가?

신이 우주와 생물과 인간을 창조했다고, 나는 믿지 않지만, 굳이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신이 물리 공간의 운행(運行)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렇듯이, 인간은 디지털 공간과 디지털 공간인을 창조했지만 인간이 설계(설정)한 기술적 구현대로, 그러나 인간이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디지털 공간은 저절로 운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물리 공간에서 지적 설계 (intelligent design) 논의는 사이비 과학이지만, 디지털 공간 설계에서 ‘디지털 지적 설계’ 논의는 방법적인 의미가 크지 않은가? 국가라는 공간 설계를 사전에 준비한 정도전의 조선 경국이 전대미문의 세계사적 의의를 가진 것으로서 500년 넘는 장구한 역사를 만든 것에서도 ‘디지털 공간 설계’는 심원한 도전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 디지털 공간은 물리 공간과 인간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만 ‘디지털 《신뢰》 공간 설계’가 보다 완벽하게 가능하다.

그렇다. 나의 글은 공간 인문학을 위한 글이 아니다. 국가와 기업을 위한 전략보고서이다. ⒜ 디지털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디지털 공간 설계 능력” 확보 방안에 관한 제안이다. 이것이 이글의 본래 목표이다. 디지털 산업이 자동화를 통해 일자리를 축소시킨다는 주장도 디지털 유령으로 취급하게 될 것이다.

부수적인 제안을 하게된다면 이는 ⒝ “개인정보보호 규제체계에 대한 틀을 재정비”하는 일과 ⒞ “글로벌 데이터 플랫폼 회사와 맞짱” 뜨는 일에 대한 제안도 할 것이다. 전술한 글들에서 언급한 4가지의 디지털 유령의 문제와 앞 ③편의 글 말미에서 검토 사항으로 제시된 18가지의 이슈도 앞으로의 글들에서 해소할 것이다. 당연히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원리》의 소극적 측면의 내용 뿐만이 아니라 다음 편에 상술할 ‘적극적(積極的)’ 측면의 내용에 기초하여 진술할 것이다.

(2022년 6월 13일)

/디지털신뢰공간 아키텍트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Newsletter

1주1책 뉴스레터

* indicates required

댓글을 남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