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자들은 많은데 왜 노벨경제학상을 못 받나?”하는 도발적 질문을 미국 유학파 조순 교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모범적인 경제에서 모범적인 이론이 나온다. 경제구조가 왜곡되고 경제정책이 교과서에서 벗어나 있는데 어찌 좋은 이론가가 나오기를 바라느냐?”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 인용문은 더칼럼니스트에 게재된 《하늘 나라에는 고비용 저효율의 문제가 없을까》라는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의 글에 있다. 디지털 공간 설계 이론가가 부족한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고 조순 박사님의 말씀을 새겨보면, 디지털 공간 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상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고, 이는 국가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이 연재글의 핵심이다. 과정(過程)의 산업이 가지는 특징이다.

제5편에서 언급한 테슬라(Tesla)의 사례를 염두에 둔다면, 최근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현대자동차그룹이 잘하고 있다’라는 칭찬은 그다지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다. 현대자동차그룹과 테슬라와의 경쟁력의 차이는 결국 그들 각각의 디지털 공간 구축 능력의 차이이고 이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기로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둔다. 그리고 이 사례만으로도 이 연재글의 목적을 충분히 대변하고도 남는다.

나는 제4편의 글 말미에서 물리 공간의 국가 구성요소로서 ‘영토’, ‘국민’ 그리고 ‘주권’에 대응하는 디지털 공간의 3가지 원리를 ‘소극적’으로 정의를 내렸고, ‘적극적’ 의미에서의 3가지 원리는 5편에서 담지 못하고, 이번 글에서 자세하게 담는다.

디지털 공간(digital space)은 사이버 공간보다는 덜 사용되는 개념이지만, 나는 인터넷 진화의 다양한 변이들에 대한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디지털 공간’을 선택했다. 나는 왜 디지털 공간을 ⑴ 물리 공간으로부터의 독립, ⑵ 인간으로부터의 독립, ⑶ 물리공간과 인간의 지배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주장을 하게 되었는가?

《관점 1 ㅡ 디지털 공간은 물리 공간에 종속되는 것일뿐》

인터넷을 포함하여 디지털 공간에 관한 이슈는 물리 공간에서 발생하는 이슈의 확장판이었다. 즉 디지털 공간 이슈는 어떤 논리 전개에 기초하든 물리 공간의 이슈였고, 물리 공간의 법과 질서의 규범에 의하여 재단되고 판단되는 것으로서, 종속적 변수였지 독립적이거나 선행적 이슈로 취급되지 않았다. 인터넷 윤리 이슈도, AI 윤리 이슈, 규제 이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디지털 공간이 물리 공간과 다르다’라는 관점을 지키려면, 인간은 늘 디지털 공간에 전력(electricity)을 공급해야 하고, 표준(standard)을 만들어 적용하여야 하고, 클릭을 하지 않으면 작동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극히 평이하고 평범한 것이다. 더우기 디지털 공간이 국가내 안보시스템과 국가간 안보시스템의 기능성을 확보하는데 핵심적이고, 국제무역금융망에도 기간인프라이며, 글로벌 정보통신망이고, 그외에도 공적 또는 사적 활동에 지대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인데도 이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난처한 입장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디지털 공간의 독립적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관점에서의 이슈 발굴과 문제 해결의 접근 방식은 아마도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문제를 누적적으로 키우지 않았는가 반성할 일이다.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바로 이 지점에서 헤매다가 그 역할을 잃었다.

우리가 아날로그와 공업 중심의 산업시대(Industrial Age)가 글로벌 정치경제체제에 남긴 책임을 묻을 수 있다면, 에너지 과잉 소비에 따른 지구존속 임계치의 돌파 가능성 때문이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대응, 착한 자본주의, 적정기술, 중간 기술, CSR, ESG, RE100, 탈석탄, 탈원전, 재생에너지, 수소경제, 수소/전기자동차 등 다양한 대안 활동이 활발하다.

나는 공업자본주의 더 큰 문제는 “내일의 문제를 야기하는 오늘의 문제 해결” 즉, “오늘의 문제 해결이 내일의 또 다른 문제 야기”라는 문제 말이다. 오늘날의 문명사적 지구 위기는 바로 인류가 이러한 모순과 부조리의 누적을 야기하여 문명체제 위기에 처했는데, 디지털 공간에 관한 지금까지의 접근 방법도 기존의 모순과 부조리에 더 무게를 더하는 위기를 낳지 않을까하는 거시적 염려는 여전하다. 인간에 대한 믿음의 크기가 줄기 때문이다.

물리 공간의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디지털 공간 설계인 블록체인 공간도 그 독특성과 고유성을 인정하더라도 아직도 에너지 과잉소비를 야기하는 방식이라는 점에 그 취약성이 너무도 큰데, 다양한 디지털 공간 설계 방식은 기존 물리 공간의 문제점을 최소화하지 않으면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관점 2 ㅡ 디지털 공간 자체가 자율적 운행의 실체일뿐》

윌리엄 깁슨이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를 창안한 소설 “뉴로맨서”와 존 페리 발로우의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은 낭만적 레토릭으로 디지털 공간의 인식을 과잉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디지털 공간에 존재하는 주체를 윌리엄 깁슨은 artificially intelligent being이라고 하고, 존 페리 발로우의 독립선언서에 등장하는 우리(We)는 당연히 ‘사이버 공간인’ 즉 ‘디지털 공간인’을 말하는데, 그는 이를 “our virtual selves”라고도 말했다.’’

AI로 인하여 디지털 공간 스스로 전력(electricity)을 찾아 흡입하고, 스스로 표준(standard)을 만들어가며, 스스로 자동 클릭이라는 자동 기제를 갖추어 스스로 살고 운영되는 특이점(singularity)을 넘어갈 것이라는 SF적인 낭만적 상상력도 디지털 공간론을 비합리적인 실체론으로 만든다.

나는 이런 두가지 관점 전부 디지털 공간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나의 목적과는 그다지 직접적인 주제와 맥락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밝힌다. 이 글에서 ‘디지털 공간’의 독립성은 ‘디지털 공간’ 개념의 다차원적 의미 확보를 위한 도구적, 방편적 개념에 한정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밝힌다.

따라서 윌리엄 깁슨과 존 페리 발로우의 아이디어의 맥락으로 나의 글을 읽는다면 그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은 ‘강한 AI’를 넘어 ‘인공 의식’(artificial consciousness)을 상상하는 정도의 공간론으로서, 내가 감당할 수는 없는, 다른 학자들의 전문적인 탐구 영역이 되어야 한다.

내가 이 두 사람을 불러낸 것은, 또 이 글에서 존 페리 발로우의 원형인 윌리엄 깁슨을 이제야 언급하는 것은 “관점의 전환”이라는 인식체계의 전복을 우리 스스로 도모해 보자는 의도였다. 즉 디지털 공간에서 물리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 또는 space-land에서 flat-land를 바라보는 관점에 굳건히 버티면서 사실은 디지털 공간 그리고 space-land 자체를 더 잘 파악하려는 의도였다.

그렇다. 나의 글은 국가와 기업을 위한 전략보고서이다.

⒜ 디지털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디지털 공간 설계 능력” 확보 방안

⒝ “개인정보보호 규제체계에 대한 틀을 재정비”하는 방안

⒞ “글로벌 데이터 플랫폼 회사와 경쟁하는 전략”

이런 제안을 구체화하는 경우 아래와 같은 과제는, 이미 제3편의 말미에서 나열하였던 것인데, 세부적인 방안으로 제안할 것들이다.

ㅡ 디지털 공간의 의인화(personification)는 공간 인식의 방해요인

ㅡ 속성으로서의 연결(connection)과 접속(access)의 의미

ㅡ IoT 디바이스가 아닌 인간이 상시 연결 상태를 유지하는 접속 디바이스의 공간 주체로서의 의미의 재검토

ㅡ 접속이라는 디지털 공간에의 출입이 야기하는 공간 주체의 정체성을 Physical Identity (PID)와 Digital Identity (DID)로 구분 소홀

ㅡ 디지털 공간과 물리 공간에서의 데이터 규범의 혼돈

ㅡ 데이터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공간 이해와 디지털 경험 경제 이해 부족

ㅡ 디지털 공간에서의 최소한의 데이터 규범 요구 사항은 “기술적 요소”로서의 신뢰(trust) 구조 설계 소홀, 관련 기술경험과 인력 부족

ㅡ 디지털 공간의 ‘기술 규범’으로서의 신뢰(trust)는 DID의 도용 금지와 방지이고, PID와 DID 연계 접속 도용 금지와 방지를 지원

ㅡ 디지털 공간에 최소한의 신뢰(trust)를 담보하는 기술적 요소를 적용하여 PKI (Public Key Infrastructure) 공간 구축이 급선무

ㅡ PID로서의 생체정보 중 가장 편리한 접속 수단으로서의 성문(聲紋)에 대한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보호 설계 시급

ㅡ 프라이버시(privacy)와 개인정보 그리고 관련하여 접속(access)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문화적 차이 그리고 결과로서의 정책 차이

ㅡ PID와 DID의 상호 독립된 공간 주체 관계 및 상호 연관된 공간 주체 관계에 대한 이해와 익명성(匿名性)과 실명성(實名性) 재검토

ㅡ PID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은 생체정보이고, 그래서 생체인증이라는 사실상 유일무이한 물리공간의 자기 증명 수단에 대한 새로운 인식

ㅡ 디지털 공간은 DID로서만 구성되어야 하고, 물리 공간의 PID를 디지털 공간의 요소로 여겼던 엄청난 오류를 교정

ㅡ 물리적 자기 증명 수단인 PID는 디지털 공간에 흘러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데이터 규범의 도입 검토

ㅡ 따라서 디지털 공간에 붙들려 있는 무수한 PID를 제거해야 하는 Clean Digital Space 구조로의 점진적 변경 필요

ㅡ 디지털 공간에서의 신뢰(trust) 연결을 뒷받침하는 연결 인증 (chain of authentication) 시스템의 결여

ㅡ DID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연결 상태에서의 데이터 생산을 하는 모든 디바이스와 장치에 부여되는 ID로서 구성 요소의 핵심

상기의 제안과 검토 과제들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제4편에서 다룬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를 ‘적극적 의미’에서 추가 설명을 하려고 한다.

《디지털 공간론 제1원리》

비트(bit)로만 이뤄진 디지털 공간을 물리 공간과는 ‘독립’된 공간으로 인식한다고 하다면, 부닥치는 부담감은 어떻게 디지털 공간을 일의적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Cyberspace, amorphous, supposedly “virtual” world created by links between computers, Internet-enabled devices, servers, routers, and other components of the Internet’s infrastructure. As opposed to the Internet itself, however, cyberspace is the place produced by these links. It exists, in the perspective of some, apart from any particular nation-state.

브리타니카는 이렇게 사이버 공간을 정의한다. 디지털 공간을 일컫는 다양한 명칭들을 구별하고, 이들을 총칭하여 독립된 공간으로 설명하는 일은 브리타니카의 정의도 그런 것처럼 맹인모상격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디지털 공간을 서핑(surfing) 또는 유영(spacewalking)하며 물리 공간과 어떻게 다른 모습인지 살펴볼 일이다. 인간이 우주에 등장하면서 인간이 만든 그 수많은 개념적 공간 중에서 가장 궤를 달리하는 독특한 공간인 디지털 공간의 구조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일이 공간 이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물리적 요소인 네트워크는 ‘수평적’으로 온갖 장비와 장치와 디바이스의 유무선 연결에 의해 구성되고 확장된다. 7가지의 TCP/IP 계층, 4가지의 OSI 계층이라는 기술표준에 의하여 확장된다.

이런 ‘수평적으로’ 확대되고, ‘수직적으로’ 구성되는 양상이 이제는 공간의 모습을 띄는 것이다. 그런데 공간적 컨피규레이션을 구성하는 수많은 장치와 장비와 디바이스에는 고유한 번호 또는 이름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물리 공간의 주체가 가지는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것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DNS (Domain Name System), IP 주소, MAC 주소, IMEI 번호, OID (object identifier) 등이 그 예이다. TCP/IP, WiFi, Cellular, ZigBee, Bluetooth, NFC, Lora, Sigfox 등 다양한 기술들도 각각의 기능을 수행한다. 소위 인터넷상에 수많은 프로젝트들은 그들 나름의 디지털 공간을 이루고 그 공간에는 수많은 기술들이 적용된다.

ㅡ IETF (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

ㅡ W3C (World Wide Web Consortium)

ㅡ OMA (Open Mobile Alliance)

ㅡ IEEE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 Engineers)

ㅡ ZigBee (ZigBee Alliance) -> CSA (Connectivity Standards Alliance)

ㅡ OCF (Open Connectivity Foundation) ㅡ OASIS (Organiz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tructured Information Standards)

ㅡ OMG (Object Management Group)

ㅡ EPCglobal (Electronic Product Code Global)

이들은 디지털 공간의 기술질서 규범, 소위 표준에 틈새를 메꾸는 일들을 한다. 최근에는 MSF (Metaverse Standards Forum)도 결성되었다.

수많은 표준 기관들은 디지털 공간을 보다 개방적으로 만들면서 공간의 topological configuration을 만들어가는 활동이다. 디지털 공간에 연결되는 모든 것들의 전체의 모양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통찰이 없다면 이 연재글을 읽을 만한 유인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3가지를 더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상기의 디지털 공간 전체의 기술규범을 따르지 않는 데이터 이동 또는 커뮤니케이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의 디지털 공간을 개방체제를 목표로 설계하는 광범위한 확장을 꿈꾼다면 다양한 분야마다, 기능마다 표준을 따라야 네트워크 효과처럼 가치를 크게 키울 수가 있다. 소위 폐쇄체제를 고집하는 다양한 디지털 공간 설계 욕구는 늘 상존하고 있는 현상이다. 플랫폼 경제 현상으로도 이미 증명되었듯이 공통의 기술 규범은 광범위한 플랫폼 확장에 필수적인 선결 조건이다. 이는 물리 공간에서도 동일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현상이지 않은가?

게다가 폐쇄적 디지털 공간의 설계 ‘부실’은 개방적 디지털 공간과의 연결 고리에서 약한 취약점을 드러내고 이는 개방적 디지털 공간의 건전성과 신뢰성을 위태롭게 만드는 계기를 만든다. 이게 정보보안(information security) 이슈이다. 이런 부조리와 모순의 대안으로 강력하게 대두되는 ‘블록체인 공간’을 도입하는 움직임도 매우 흥미롭다.

둘째, 사실 나의 디지털 공간론은 공간론으로서의 선한 의미와 가치를 발휘하기도 전에 이미 현재의 사이버 공간은 너무도 많이 오염되었고 파괴된 상태이다. 사실 역사와 문명 이래로 인간과 인류가 지구와 우주에 미치는 오염과 파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급기야 화성으로 도망을 가려는 자들마저 나타나고 있으니 얼마나 무책임한 도전인가? 디지털 공간에는 ‘약한 연결고리’가 너무도 많다.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는 이러한 취약성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나의 디지털 공간론은 바로 이러한 인간과 인류의 오염으로부터 디지털 공간을 보호하고 살리는 길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달리말하면 물리 공간에서의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현상을 디지털 공간에서는 최소한으로 만드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물론 과거와 현재도 오픈소스SW 운동(open-source SW movement)이나 카피레프트 운동(copyleft movement)이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블록체인(blockchain) 공간 구축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 일이 인간적 호소와 인간의 도덕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언어로 자동화하고 알고리듬에 의하여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디지털 공간 자체가 자율 운행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한 전략적 제안이 바로 디지털 “신뢰”공간 설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셋째, 디지털 공간론이 물리 공간의 대한민국의 경제적 발전 전략의 일환뿐만이 아니라 “디지털 전쟁”의 전략적 수단으로서도 그 논의의 가치가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세계 제1국 팍스 아메리카나를 연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정보(intelligence)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디지털 세계에서의 정보 활동은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구글과 애플(Apple)과 아마존(Amazon)과 페이스북(Facebook/Meta)과 마이크로소프트(MS) 그리고 다른 글로벌 회사들은 이미 그들 고유의 디지털 공간을 확장하여왔고, 굳건히 유지하고 있고, 이들의 활동은 미합중국 정보능력 발휘에 커다란 지원군이 된 지 오래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대중에게 개방되면서 그 정보능력은 급격히 강화되었고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대규모의 정보활동자금이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과 프리즘(Prism)의 노출이 던지는 시사점은 디지털 공간론이 정보기관뿐만이 아니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그룹 그리고 엘지전자처럼 글로벌 활동을 하는 대기업들에게 생존 전략을 새롭게 짜는 방편이라는 점이다. 이를 읽지 못하는 자들에게 “디지털 공간론”과 이에 기초한 “고객 경험론”은 쇠귀에 경읽기에 불과하다.

《디지털 공간론 제2원리》

제4편의 말미에서 디지털 공간론 제2원리로서 ‘인간’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으니 디지털 공간의 다른 주체를 상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디지털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장치들 하나하나가 ‘디지털 공간물’이라고 하자는 것이다. 사실은 이를 “디지털 공간인”이라고 했지만 인간의 냄새를 지우는 것이 낫다. 이런 장치들이 가진 고유한 identifier 또는 number 또는 address 또는 name 들이 바로 digital identity (DID)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공간의 주체는 바로 이 DID일 뿐인 것이다. 인간은 배제된다. DID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치에 주어지는 것이다. 물리 공간에서의 인간은 주민등록번호 또는 사회보장번호 또는 운전면허번호 등을 가지지만, DID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기술 번호(이름)를 가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편의 글에서 주장한, PID와 DID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DID를 이해하는 방식의 하나로 디지털 공간에서 가장 활발한 디지털 공간물로서 나는 감히 인간이 사용하는 단말 디바이스를 별도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휴대폰(스마트폰), 노트북, 패드, PC, 스마트워치 등이 가장 대표적인 디지털 공간주체인 디지털 공간물이다. 인간의 사회문화적 차이를 살펴보면, 이것들이 디지털 공간에 연결된다. 인간이 디지털 공간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굳이 연결을 말하자면 인간은 디지털 공간에 접속(access)된다. 무엇이 접속되는가? 바로 PID이다. 즉 단말 디바이스는 DID이다. 접속에 의하여 PID와 DID의 관계가 생긴다. 그런데 PID와 무관한 DID도 무수하다. 그래서 만물지능통신망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이 지점에서 개인정보보호 이슈와 프라이버시 보호 이슈와 관련된다. 다시말하면 “디지털 공간에는 개인정보가 없다.”라는 선언이 가능하다면 PID가 디지털 공간에는 전혀 없다는 말이된다. 그런데 이미 디지털 공간은 개인정보로 범벅이 되어있는데, 어찌 이런 선언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은 당연하지만 선언은 앞으로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PC가 personal computer로 처음 대중에게 제공될 때 “personal”이라는 표현이 가지는 무거운 함의를 파악해보자. 서구의 화장실 문화는 예를들어 도심지의 레스토랑의 화장실 이용문화를 보면 화장실 공간 자체가 한사람에 의하여 점유되는 개념이고 이는 완벽히 프라이버시를 보장한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단말디바이스도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용주체인 인간 한사람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라는 관념이다. 즉 단말디바이스가 ‘디지털 공간물’이고 이는 바로 물리 공간의 사용주체인 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로써 특별한 지위에 있는 PID와 DID를 구분하며 연결하는 경우를 행성 판도라에서는 “아바타”라고 한 것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프라이버시 보호와 관련되는 이슈는 어떤 사용자인 인간(person)과 결부된 현상인 것이지, 실제 디지털 공간이 만물지능통신망으로 이해하는 경우에는 인간(person)과 관련되지 않은 단말디바이스는 무수하게 많아지고 있는 것이니 이러한 양상을 보면서 디지털 공간론을 이해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최근의 쓰나미 같은 합종연횡의 파란(波瀾)이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되고 펼쳐지고 있음을 읽었고 간과될 것을 우려했다. 파란은 아래와 같이 보도되었다. 그리고 나는 제5편의 연재글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이 이 흐름에 동반하는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신랄하게 물었다. 지난 5월 5일 Ron Amadeo라는 사람이 보도한 기사이다.

Apple, Google, and Microsoft want to kill the password with “Passkey” standard ㅡ The first Thursday of May is apparently “World Password Day,” and to celebrate Apple, Google, and Microsoft are launching a “joint effort” to kill the password. The major OS vendors want to “expand support for a common passwordless sign-in standard created by the FIDO Alliance and the World Wide Web Consortium.” The standard is being called either a “multi-device FIDO credential” or just a “passkey.” Instead of a long string of characters, this new scheme would have the app or website you’re logging in to push a request to your phone for authentication. From there, you’d need to unlock the phone, authenticate with some kind of pin or biometric, and then you’re on your way. This sounds like a familiar system for anyone with phone-based two-factor authentication set up, but this is a replacement for the password rather than an additional factor.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패스키는 메타버스와 같은 거대 디지털 공간을 향한 도전의 산물이다. 글로벌 메이저 3사가 협력하여 jointly 디지털 공간을 연합한다는, 미합중국처럼 “디지털 합(合)공간”을 창조하겠다는 말이다. 3사의 디지털 공간을 합치는 위력은 얼마나 강력한가?

더 큰 숨은 위력은 무엇일까?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을 뛰어넘는 데이터 중립성(data neutrality)을 비수로 숨기고 있는 동안에 유럽연합의 GDPR과 같은 글로벌 개인정보 규제를 회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 방법을 패스키(Passkey)는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공간 구조를 만드는 토대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앞으로 두고 볼일이다. 글로벌 메이저 3사가 패스키(Passkey)를 어떻게 확장하여 사용하는지를…

여기에서 우리가 늘 간과하는 것은 “생체인증”(biometric authentication)의 함축된 의미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과 생체인증은 바로 PID와 DID의 관계에 관한 이슈로서 디지털 공간 설계의 핵심적인 내용을 함축한다.

그런데 이제 FIDO1, FIDO2가 성숙한 만큼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고 거의 유일한 필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직도 생체인증이 얼마나 강력하고 유일할 정도의 ID 그리고 PID일 수 밖에 없는지를 상상해보기 바란다. 결과적으로 이는 디지털 공간에서 인간의 개인정보를 삭제해도(clean out) 되는, 디지털 공간에서 인간의 냄새를 지워도 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게 핵심적인 함의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디지털 공간의 연결 단말디바이스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생체인증 밖에 없는 시대를 글로벌 메이저 3사가 연합하여 열어가고 있다는 소식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들은 디지털 공간 그리고 디지털 “신뢰”공간에 관한 오랜 경험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미 거대한 디지털 신뢰공간을 가지고 있다. 무한한 확장이 가능하다. 연합하면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화려한 외장이 아니라 토대로서의 기술에 대한 준비가 탄탄한 것이다. 메타버스(metaverse)를 만들어야 ‘디지털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그 참을 수 없는 예능감이 대한민국의 디지털 산업의 추락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인 것이다.

제5편의 말미에서 서술한 다음의 글을 다시 게시하여 음미토록 하면서 디지털 공간론 제2원리에 관한 설명을 일단 멈춘다.

애플, 구글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왜 손을 잡았을까? 손 잡은 것이 무엇일까? 그냥 새로운 디지털 기술 하나 더해지는 것일까? 이들의 협력제휴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이 끼어들 만한 비즈니스 수단과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이로인하여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은 어떤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이런 기막힌 협력제휴를 전담할 조직과 인력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은 갖고 있을까?

위의 기사에서 글로벌 메이저들의 활동과 우리의 활동의 차이를 파악해 내는 일로서도 사실 이 글의 목표는 거의 이뤄지는 셈이다. 그 차이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이라고, 그것은 글로벌 생태계, 글로벌 플랫폼을 구축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나면 청중들은 다 떠나기 시작할 것이다. 들을 것 없고 다 아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제 우리는 세계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하거나 진입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론 제3원리》

드디어 3번째 원리를 남겨두고 있다. 디지털 공간 주권을 어떻게 구성하여 설명할 것인가? 전술한 바와 같이 물리공간과 인간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이슈를 어찌 풀어낼 것인가? 지난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물리 공간의 주권론에 관한 문헌은 부지기수로 많다. 우주에 생명의 발견이 있기 전까지야 지구 주권이라는 말은 성립되기는 어렵지만 그 대신 국가의 주권은 아주 평이한 개념이 되었다. 그런 주권 개념은 확장되어 식량 주권, 에너지 주권, 반도체 주권이라는 개념까지 확대 사용되고 있다. 그럼 디지털 공간 주권은 뭐라고 할 것인가?

당연히 주권의 행사자로서 디지털 공간물의 입장에서 살펴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늘 언급한 신뢰라는 개념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력한 권위를 회복하게 된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여기서의 신뢰는 인간의 감정과 믿음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밝힌다. 말하자면 블록체인 공간의 의사결정 알고리즘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디지털 공간은 거대한 신뢰 공간이고 신뢰 기반의 네트워크 기반의 공간이다. 네트워크 엔지니어들도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아이디어 창출에 심혈을 기울여온 주제이다. 글로벌 표준을 따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신뢰”를 향한 최소한의 엔지니어링의 도덕이자 의무이다. 개방적인 디지털 공간을 위한 최소한의 기술적 규범의 준수는 보다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을 창출하는 지름길이 된다.

실제 ‘개방체제로서의’ 디지털 공간은 그렇기에 PKI 공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고, 그렇게 이해하여야 하고 또 모든 디지털 공간은 이렇게 설계되어야 한다. PKI 공간은 신뢰 연결의 토대가 된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모든 기기들이 서로 인증되어 연결되는 자동화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거대한 인증체계는 신뢰체계이고 이는 PKI 공간에서 전(全) 공간적으로 작동된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 주권은 다음과 같이 2가지로 나눠 정의될 수 있다.

(1)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디지털 공간에서 연결되는 기기, 장치, 디바이스는 그리고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는 정당한(신뢰기반의) 인증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모든 곳에서 모든 시간에 연결되고 접속되는 권리 또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만약 어떤 기기, 장치, 디바이스가 다른 그것들이 정당한(신뢰기반의) 인증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것들과의 연결 또는 접속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또는 권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인증체계는 애초부터 디폴트로 여겨졌고,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이고,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거의 아무도 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공기처럼 물처럼 여기고 있는 것같다. 디지털 공간 주권의 인증체계가 디지털 공간의 topological configuration의 기초이다. 그 인증체계는 주민등록증이 될 수도 있고, 여권이 될 수도 있는 것과 비교될 정도로 디지털 공간에서는 필수적인 것이고 더우기 원활한 유통을 보장하는 자동검역·검문소의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은 이런 “개방형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 세계인을 모두 아우르는 플랫폼이라는 디지털 공간도 사실상 운영해본 적도 없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시스템 반도체(logic chip, AI chip)의 시장점유율을 유의미하게 가져본 적도 없다. 이런 부족과 결핍은 사실상 동일한 것이다. 오호통재라!!!

/디지털신뢰공간 아키텍트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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