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명희작가의 ‘상처받은 사람을 위한 미술관’은 살아가면서 가슴 깊이 파인 상처를 명화를 통해 치유하는 길을 알려줍니다. 명화에 대한 미술사적 해석이나 작품성에 대한 지식을 굳이 몰라도 그저 바라만 봐도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만나면 작가와 제목부터 살피곤 합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을 먼저 머리속에 집어넣고, 그 프레임으로 작품을 대하는 습관입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작품과 감상자 사이 무언의 대화는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림을 느끼지 않고 공부하려고 하면 그것이 위로가 아니라 공부가 되어 뇌에 부담을 줄 수도 있습니다.

추작가의 책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네덜란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삶과 작품에서 ‘먼지 한톨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선을 공유해줍니다.

추작가는 “텅 비어있음으로 가득 찬 우주처럼, 공허함으로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와 같은 베르메르 작품의 오묘한 매력을 포착합니다.

한편 손관승 작가는 ‘하멜 오디세이아’에서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을 보고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키워드였던 동인도회사(VOC)와 청어, 그리고 하멜과의 역사적 연결줄을 읽어냅니다.

추작가는 델프트의 풍경에서 그림의 3분2를 차지하는 하늘 풍경에 시선을 두고, 손작가는 교회첨탑의 왼쪽옆 붉은 지붕 건물(VOC)를 주목합니다.

그림에서 서로 다른 키워드를 읽어내는 것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법입니다.

1.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밋밋함과 오묘함

빛의 화가라 불리는 렘브란트만큼이나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사실 그의 작품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곤 대체로 밋밋하다.

하긴 편지를 읽고 있는 여인, 우유를 따르는 하녀, 음악을 연습하는 소녀에게서 무슨 특별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1.1 밋밋한 화가의 일생

위대한 화가로서 그의 삶에 어떤 극적인 드라마를 기대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림보다 더 평범한 몇 가지 법률적인 서류들밖에 없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누구와 결혼을 했으며 아이를 몇 명 낳고 언제 어디서 죽었다는 식의 기록들 말이다.

그의 작품에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져 버린 것일 뿐이라고 위로하면서.

1.2 비어있음의 오묘함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베르메르의 그림은 이 때문에 더 오묘한 매력을 갖게 되었다. 텅 비어있음으로 가득 찬 우주처럼, 공허함으로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처럼.

2.‘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이국적인 의상에 튀르키예식 터번을 머리에 두른 소녀는 우리를 빤히 바라다본다. 소녀의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고 표정은 도통 어떤 감정인지 읽어낼 수 없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하나의 커다란 진주알인 양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과연 그림 속 소녀는 누구이고 베르메르와 어떤 관계였을까.

2.1 모델에 대한 궁금증

그림의 주인공은 실제 모델이었을 수도 있고 베르메르가 창조한 인물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소녀가 베르메르의 딸 중 한 명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화가의 시선에 애정은 듬뿍 담겨 있지만 성적인 욕망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소녀의 눈빛에서도 설렘이나 낯섦보다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듯한 다정함과 편안함이 묻어난다.

2.2 내면의 광채

일반적으로 영어 제목은 단순히 ‘젊은 소녀의 두상’이었지만 때로는 ‘진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한 비평가는 “제목이 ‘진주’가 된 것은 단순히 진주 귀고리의 세부 묘사 때문만이 아니라 소녀가 마치 진주처럼 내면의 광채로 빛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 네덜란드 황금 시대

베르메르가 활동한 17세기는 예술, 과학, 경제적 발전이 모두 정점에 달한 네덜란드의 황금기. 네덜란드 미술계는 종교 개혁과 맞물려 자행된 미술 파괴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교회와 왕실 등 후원자의 주문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일반 시민이 그림을 사도록 미술시장을 활성화한 것이다.

3.1 시민의 일상이 작품소재

네덜란드 화가들은 성경과 신화 이야기 같은 낡은 소재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풍경은 필요한 경우 성경과 신화의 장면을 빛나게 해주는 배경일 뿐 독립적인 주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기 시민의 일상 속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가 독립적인 하나의 장르로 새롭게 탄생했다.

주머니에 쓸 돈이 넘쳐나는 신흥 중산층이 더 넓은 집을 사서 휑한 빈 벽에 걸어 둘 그림을 찾아다니는 바람에 그림들은 그리기가 바쁘게 팔려나갔다.

3.2 주부, 하녀 소재 그림은 생소

하지만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 중에는 베르메르의 작품들처럼 주부나 하녀가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주제로 한 그림이 적지 않았다.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는 이러한 과감한 시도는 노동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근면한 노동은 영혼을 고귀하게 만든다”라는 가톨릭 세계관을 표출한 것이었다.

4. 우유 따르는 여인

베르메르의 대표작 ‘우유 따르는 여인’에도 부엌일하는 하녀가 당당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림 속 하녀는 빛이 가득한 소박한 공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파란색 앞치마를 두른 여성은 도자기에 든 우유를 냄비에 붓고 있다. 한 방울의 우유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 그녀는 우유가 담긴 도자기를 든 팔에 힘을 잔뜩 준 채 집중해서 따르고 있다.

4.1 섬세한 묘사

그의 섬세함은 창문 묘사에서 절정에 이른다. 베르메르는 살짝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까지 섬세하게 계산한 그야말로 디테일의 천재였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그의 단골 빵집의 벽면을 장식했다. 베르메르가 사망한 후 그의 아내가 3년 치나 밀린 외상값을 이 그림으로 갚았다는 후문이 있다. 그림 속의 빵 역시 단골 빵집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5.‘성 프락세디스’와 버지널 시리즈

장모의 입김 탓인지 베르메르는 결혼과 동시에 칼뱅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의 그림 중 가장 먼저 명성을 얻은 ‘성 프락세디스’는 순교한 기독교 신자들을 매장하기 위해 준비하는 로마인 성자를 그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 그림은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 이상한 구석이 있어 오늘날까지도 위작 논란이 있는 그림 중 하나다. 이때만 해도 자기만의 화풍을 찾기 전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진짜 위작인지는 모를 일이다.

베르메르가 버지널을 소재로 그린 다른 여러 작품들과 비교해 봤을 때 이 작품엔 무언가 은은하게 깔린 고요함과 단순함이 없다. 그저 어두운 적막감이 감돌고 있달까. 게다가 이 작품에서는 그의 그림 특유의 신비감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6. 베르메르 그림속 시선

베르메르의 그림들 속 여인들은 하나같이 누군가를 빤히 바라보듯 시선을 정면으로 두고 있다. 마치 우리가 그림 속 대상을 보는 게 아니라 그림 속 주인공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를 바라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올 것처럼, 그들은 그림 속에 박제되지 않고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듯,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7. 여인과 창가

베르메르는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를 발견한 후부턴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20점이 넘는 작품에서 모두 어떤 식으로든 창가에 서 있는 여인들을 그렸다.

그 여인들은 집안일을 하거나 편지를 읽거나 악기를 연주한다. 남자가 그림에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다. 또한 그는 왼쪽에는 창문이 있고 벽에는 지도가 걸린 똑같은 방을 배경으로 자주 그렸다.

7.1 부인과 아이들

실제로 베르메르의 인생은 온통 여성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걸핏하면 그의 모델로 등장했던 아내 카타리나는 20여 년 동안 무려 열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당시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 중 몇 명이 임신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임신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보기란 매우 어려웠을 테니.

7.2 ‘편지를 쓰는 숙녀와 하녀

‘편지를 쓰는 숙녀와 하녀’ 역시 정적인 장면을 그렸음에도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아주 천천히 정성을 다해 편지를 꾹꾹 눌러 쓰고 있는 여인과 그 곁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하녀.

그녀는 여인이 편지 쓰기를 기다리는 게 지루해서 밖으로 시선을 돌린 것 같기도 하고 ‘우편 배달부가 오고 있으니 서둘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며 속으로 조급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8.베르메르가 등장하는 ‘회화의 기술’

이 작품은베르메르의 그림 가운데서 가장 복잡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화가와 모델. 모델이 되는 여성은 시선을 아래에 두고 있고, 화가는 등을 돌리고 있다.

여기서 화가는 베르메르 본인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델은 역시 딸일 것으로 추측된다.

작품은 어쩌면 그의 화가로서의 인생을 집약한 것인지도 모른다. 베르메르는 유독 이 작품을 좋아했으며 평생 동안 그 누구에게도 팔지 않았다.

8.1 베르메르의 제일 흥미로운 그림

1868년 베르메르의 작품을 재평가하는 데 일조한 프랑스 미술평론가 테오필 토레뷔르제르는 “이 작품이야말로 베르메르의 제일 흥미로운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평론가 알베르트 블랑케르트는 “자연주의적 기법, 밝은 조명의 공간, 복잡한 구성의 통합에 있어 그 어떤 그림도 이에 필적하지 못한다”라고 극찬했다.

9. 히틀러의 베르메르 작품 사랑

아돌프 히틀러다. 실패한 화가의 이력을 가진 히틀러는 베르메르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히틀러에게 억류되어 있던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반에이크, 알브레히트 뒤러, 렘브란트의 작품들과 함께 오스트리아에 있는 소금 광산으로 이송되었다.

연합군이 베를린에 접근해 오자 히틀러는 광산을 파괴하라고 명령했지만 지역 관리인들은 작품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마침내 미군이 광산에서 찾았던 베르메르 작품이 바로 ‘회화의 기술’과 나중에 위작으로 드러난 ‘예수와 간음한 여인’이다.

10. 적은 작품수와 많은 위작

베르메르는 생전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가 그린 그림도 40점이 채 안 된다. 그래서 훗날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의 가치가 알려지자 그를 사칭한 위작이 횡행했다

10.1 위작을 그린 메이헤런은

메이헤런은 낡은 캔버스를 찾아내고 몇 세기 동안 묻은 먼지를 모방하기 위해 그림 표면에 잉크를 문지르고 그럴듯한 유래나 소유자의 족보까지 만들어 냈다.

이렇게 위조한 작품 〈예수와 간음한 여인〉을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헤르만 괴링에게 판매한 것도 바로 그였다. 메이헤런은 이것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11.베이메르와 델프트

베르메르는 1632년에 태어나 1675년에 죽을 때까지 평생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는 거의 없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을 소재로 하였지만 성서 속의 이야기들을 주제로 한 것도 있고 불과 두 점이지만 풍경화도 있다.

11.1 델프트 풍경

‘델프트 풍경’은 수운과 운하 그리고 아침 일찍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검소한 복장의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풍경 속에 담아내고 있다.

12. 갑작스러운 죽음

베르메르는 작품들로는 늘어나는 가족들을 부양할 수 없어 그림 중개상으로 일했다.

이렇게 겨우 유지해 가던 안정은 1672년에 갑자기 끝이 나고 만다. 영국과 프랑스 간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림 시장은 몰락했고 베르메르는 자신의 그림도 다른 사람의 그림도 팔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부인 카타리나는 “베르메르는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고 그러던 어느 날 불과 하루나 하루 반나절 만에 갑자기 죽고 말았다”고 증언했다. 1675년 그는 열 명의 어린 자녀들과 엄청난 빚을 남기고 죽었다.

12.1 300년만에 빛을 보다

1900년대 초에 이르러 드디어 대가로서 널리 인정받았다. 300여 년이 흐른 후 오랜 시간 고요 속에 잠들어 있던 내밀한 아름다움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12.2 “아름다움이란 일상에 있다”

그는 자신의 조용한 생애에서 비롯된 듯한 고요하고 단순한 세계를 묘사했다. 그의 그림은 조용히 다가와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날마다 마주하는 일상에 있다”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우리의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은 우주의 수레바퀴에 맞물려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합쳐져서 단단한 삶을 이룬다. 그런 일상이 아름답지 않다면 대체 어떤 장면이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미술관'(추명희 저)_카미유 클로델

관련 링크:뇌가 젊어지는 독서급관, 귀독서(좋은 습관 연구소, 우병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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