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서 17년째 펍 운영, 정인철 서울펍 대표

– 미국 관련 정치·사회적 사건 때 외국인 손님 줄기도

– 지금까지 소년·소녀 가장, 고아원 등 4500만원 기부

– “자유로우면서도 매너 지키는 펍, 음주 문화에 긍정적 영향”

허미연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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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저녁 이태원 서울펍의 모습

지난 20일 저녁 7시30분 쯤 이태원역 4번 출구 쪽에 위치한 ‘서울펍(Seoul Pub)’에 들어서자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한국인보다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손님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대부분 혼자 와 맥주를 마시며 처음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포켓볼을 치거나 책을 읽으며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펍(Pub)은 ‘대중적인 사교장’이라는 뜻의 Public House의 약자로, 영국에서 주로 발달한 술집을 일컫는다. 이태원은 2000년대 이후 펍이 늘어나면서 ‘펍 문화’가 형성됐다. 현재 이 지역 펍 갯수는 80여개에 이른다. 그 중 1995년에 생긴 ‘서울펍’은 이태원 펍의 원조 격이나 다름없다.

정인철 서울펍 대표(48)는 “그 때만 해도 이 지역에 펍은 한두 개 뿐이었다”며 “이태원에서 외국인 바가 잘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2000년부터 펍이 많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오래 되다 보니, 10년 넘게 인연을 맺고 있는 단골 손님도 많다. 정 대표는 “손님들과 친구, 가족처럼 지낸다”며 한강에서 체육대회를 하거나, 손님들과 게임을 한 사진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 대표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의 80~90%가 이태원 및 인근 지역 거주민(주한미군 포함)이고, 10~20%가 한국으로 출장 온 사람들과 바이어(buyer)”라며 “한국인의 경우 영국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 유학 생활을 한 사람들이나 교수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다”고 전했다.

정 씨는 매년 한남동, 이태원동, 보광동 소재 고아원 아이들을 초청해 손님들과 이벤트를 열거나, 용산구 사회복지과를 통해 소년·소녀 가장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손님들과 게임을 하며 기부금을 모았고, 지금까지 4500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 미국 관련 정치·사회적 사건 때 외국인 손님 줄기도

정 씨는 “미국, 미군과 관련한 사건 터질 때 아무래도 이태원 분위기도 위축되는 게 있다”며 “2001년 9·11테러, 2005년 동두천 시민 사망 사건,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때도 그랬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군에 이른바 ‘컬퓨타임’(curfew time·통금 시간)이 생겼다. 이태원은 이슬람 사람들도 많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자칫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그는 “아무래도 미군들도 주로 오는 손님들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매출에 조금 영향이 있기도 하다”고 했다. “2010년 7월 미군의 야간 통금 조치는 해제됐지만 이후 용산 미군 기지 이전 계획과 함께 외국인들이 이태원을 많이 떠났다”고 했다.

하지만 가수 UV의 노래 ‘이태원 프리덤’이 유행하고,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이태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태원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났다. 그는 “1990년대, 2000년 초반에는 외국인과 한국인 비율이 8 대 2 였다면, 요즘은 6 대 4”라며 한국인들이 외국인의 빈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 “자유로우면서도 매너 지키는 펍, 음주 문화에 긍정적 영향”

음주 문화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정 씨는 “펍 문화가 올바른 음주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특유의 룸살롱이나 접대 문화, 1차·2차·3차로 이어지는 회식 자리 등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느냐”며 “펍 문화는 혼자 와서 자기 주량에 맞게 마시기 때문에 자유로우면서도 매너를 지키는 문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본래 우리나라 음주 문화는 할아버지, 아버지께 배우는 좋은 문화”라며 “이른바 주폭(酒暴) 문제는 우리 음주 문화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 술 마시고 실수하는 것에 관대한 사회 인식과 자기 통제를 못하는 개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주폭은 분명히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취한 상태에서 거리를 활보한다는 건 문제라고 본다”며 “외국의 경우 술 취한 사람이 공원에만 있어도 연행”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 씨의 가게 입구에는 ‘부킹(Picking up)하는 사람, 술 취한 사람, 잠 자는 사람, 아이디(ID) 미 소지자’는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그는 “이태원의 음주 문화가 바람직할 수 있도록 업계 종사자로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