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증권파동의 여파로 휴장했떤 증권시장이 73일 만에 드디어 재개했습니다. 영국의 ‘남해버블 사건 이후 최악’으로 말해지기도 합니다. 본질은 대통령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주가조작 사건입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경제발전을 위해 자본시장 육성을 발표하고, 1962년 1월 ‘증권거래법’을 제정합니다. 대한증권거래소가 주식회사로 전환됨에 따라 주식투자가 가능해졌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기 직전인 1961년 12월 26일 대한증권거래소 주식(대증주)와 한전주가 폭등합니다.

중앙정보부와 당시 투자의 달인 윤응상을 중심으로, 급하게 만든 통일·일흥·동명 등 3개의 증권사가 대증주를 대량으로 매집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날 정부는 증권시장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이에 주당 5전에 거래되던 대증주는 1962년 4월 18일에는 21환 10전까지 폭등하게 됩니다.

주가 폭등을 의심한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하고, 주가는 급락합니다. 주가 유지를 위해 작전세력이 매수를 거듭해도, 매도 물량이 워낙 많아 급락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자금부족으로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현금으로 바꾸어 줄 수 없는 ‘결제 불능 사태’에 직면합니다. 결제불이행 상태에 빠져 증권거래소는 6월 1일부터 휴장에 들어갔습니다.이 사건은 증권시장을 운영에 필요한 제도상의 미비점을 드러냈습니다. 주식시장의 발전에도 오랫동안 역효과를 미쳤습니다. 

Newsletter

1주1책 뉴스레터

* indicates required

댓글을 남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