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0년 영국에서 ‘남해회사 거품 사건’이 터졌습니다.17세기 프랑스, 스페인과의 전쟁 등으로 국채가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1711년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를 설립합니다. 1720년에 회사가 국가 부채를 인수하는 제안이 의회에서 통과하자, 회사가 국채를 매입하도록 하고, 그 댓가로 영국 정부가 남미 지역의 무역 독점권을 보장했습니다. 따라서 남미 지역과의 노예 무역으로 회사가 성장하고, 이익을 창출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이 남미의 무역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해회사는 살기위해 찾은 방법은 주식투자(또는 주가조작)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존로가 주도하여 미시시피 프로젝트의 지분을 매각하여 왕정의 부채를 상당 부분 탕감했습니다. 그러자 영국의 존 블런트로 같은 방법을 영국에 적용합니다. 블런트는 국채 보유자들에게 회사의 새 주식으로 교환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남해회사가 이룬 막대한 부에 대한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런 후 회사는 대중에게 몇 가지 새로운 주식 공모를 발행했습니다. 투자자들은 할부로도 주식을 지불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영국은 투기 광풍에 휩싸여, 남해회사 주가는 10배 이상 오릅니다. 회사는 광풍이 지나가자 두려움에 떠는 투자자들이 이제 남해 회사주식을 매도하면서 폭락합니다. 그결과 수천 명의 투자자들이 재정적 파탄에 빠졌습니다. 나중에 정부 조사에서 위기를 초래한 것과 관련된 뇌물 수수와 부패가 밝혀졌고 여러 정치인과 남해주식회사의 고위 간부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이 스캔들로 인해 일반적으로 영국 최초의 총리로 여겨지는 로버트 월폴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는 스캔들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내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정부 지도자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관련자들 중 일부만 희생시켰습니다. 남해기업자체는 1750년 스페인 정부에 대부분의 권리를 매각한 후 1853년까지 존속했습니다.

결국 영국 경제는 이후 100년 이상 주식회사를 현실적 제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남해회사 파산 충격으로 영국 경제의 성장과 산업혁명은 적어도 거품법이 폐지되는 1825년까지는 주식회사라는 근대적 기업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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