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은 모스크바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를 상대로 연설을 마치고 나오다가, 사회혁명당 의원인 파냐 카플란에게 두 발의 총을 맞았다. 카플란은 어린시절부터 농민 정당인 사회혁명당에 몸담았다. 사회혁명당은 러시아 혁명 이전 볼셰비키파와 멘셰비키파로 세력으로 갈라졌는데, 카플란은 볼셰비키 반대파에 속했다. 두 발의 총알이 각각 왼쪽 어깨와 턱에 명중했고, 나머지 한 발은 빗나갔다. 레닌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공격에서 살아남았다. 암살시도 발생 나흘 만에 카플란은 총살형에 처해졌다. 사회 혁명당과 기타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볼셰비키의 보복 물결을 촉발했다. 러시아가 내전에 더욱 깊이 빠져들면서 수천 명이 처형되었다.
하지만 후유증은 평생 레닌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는 암살 미수사건 6년 뒤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죽기 전 레닌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오랜 기간의 혁명활동과 그에 따르는 중압감과 과로는 1921년 중반쯤부터 심한 두통으로 발전했다. 혁명을 반대하는 저격범이 쏜탄환을 몸에 지니고 있다가 4년이 지난 뒤에야 없앤 것도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1922년 5월, 처음 발작을 일으켰지만 일에서 손을 떼지 않았던 레닌은 1923년 3월 세 번째 정신착란을 일으킨 뒤 거의 식물인간이 되었다. 1924년 초 레닌이 사망하자 그의 시신은 방부 처리되어 모스크바 크렘린 근처 영묘에 안치되었다. 페트로그라드는 그를 기리기 위해 레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후계자 투쟁 끝에 이오시프 스탈린이 레닌의 뒤를 이어 소련 의 지도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