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1788~1824)은 어찌보면 왜 이리 유명한지 의아합니다. 그의 이름이 “Byronic”이라는 단어도 만들었습니다. 그 단어는 로맨틱 영웅을 상징합니다. 뿐만 아니라 버트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에도 그는 인용되었습니다. 사악한 귀족이던 종조부의 남작 작위를 승계한 이 시인이 “찬미할 자유란 독일 왕이나 체로키 인디언 추장의 자유이지,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향유할 수 있는 열등한 자유가 아니었다” 그는 그만큼 특별했습니다.
그의 두권의 시집을 출판했고, 1809년에 학위를 받은 후 그는 2년 동안 포르투갈, 스페인, 근동을 여행했습니다. 그의 경험이 담은 ‘차일드 해롤드의 순례’ 등을 출판하여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졌습니다.” 그의 시, 매너, 패션, 취향은 널리 모방되었다. 결혼과 이혼, 방탕한 스캔들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항상 자유주의 대의와 국가 독립을 열렬히 지지했던 바이런은 터키로부터 독립을 위한그리스 독립 전쟁을 지지했습니다. 그는 그리스에서 대의에 합류하여 군대를 훈련시켰고, 그곳에서 36세 생일 직후 사망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는 그리스의 국가적 영웅으로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