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전인 2012년, 변화무쌍한 격동의 한 세기를 살았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던 1917년에 태어났고,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는 1917년에 최초의 재즈 녹음을 남겼다.
홉스봄은 강렬한 기억에 남은 10대 시절의 두 가지 일화를 말했다. 1933년 독일 공산당의 집회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고 노래한 뒤 “무아지경에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왔던 일, 이후 런던으로 이주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재즈공연을 본 뒤 새벽녘까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 일이다. 첫사랑을 느낄 만한 열여섯 일곱 무렵에 재즈가 첫사랑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고…
나치가 권력을 잡을 무렵인 1933년, 그는 그렇게 재즈와 만났다. “내 인생의 3분의 2를 나는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끈끈한 교감을 나누며 살았다.”고 회고했다. 그재즈에 대한 홉스봄의 애정은 비평가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프랜시스 뉴턴’이라는 필명으로 본격적인 재즈 비평을 시작, 그 글들을 모은 책 <재즈 동네>를 남겼다.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출간을 허락한 유일한 재즈 책이다
홉스봄은 편견없이 지적인 방식으로 재즈에 대해 ‘왜?’라고 물은 거의 최초의 인물이다. 이책에서 그는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가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비범한 음악’ 재즈를 만들어 냈는지를, 그리고 재즈가 하층민들의 음악에서 교양인들의 음악으로 올라서며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는 인류사에 드물게 나타난 음악 가장 낮은 곳(‘평범한 사람들’ 흑인 노예의 음악)에서 가장 높은 곳(‘비범한 음악’ 엘리트의 음악)까지 이른 재즈의 역사적·사회적 의미와 오늘날 재즈가 맞고 있는 위기를 우리에게 일러준다.
홉스봄은 듀크 엘링턴의 평전에 대한 서평 형식을 빌려, 엘링턴이 20세기 예술가들 중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동시에 “상당히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로 묘사한다. 엘링턴은 밴드 단원들의 악상을 가로챘고 가족에겐 냉정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테크닉은 뛰어나지 않았고 악보를 읽는 것도 힘들어했다. 지적이지 않았고 다른 이의 음악을 듣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인간적인 결점에도 불구하고 엘링턴은 여전히 ‘위대한 예술가’였다. 엘링턴은 “서로 다른 사운드와 음색을 혼합시킴에 있어서 자연스럽고도 새로운 매혹”을 일으키고, “화음을 불협화음의 끝자락까지 밀어붙이는 미감”을 가졌고, 이를 곡으로 표현했다. 엘링턴의 밴드에는 유명한 연주자가 없었으나 엘링턴은 오히려 그들의 소리를 개성있게 조합해냈다.
재즈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미국 뉴올리언스의 흑인문화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나 소수자의 하위문화로 성장했다. 홉스봄은 미국에서 재즈는 뉴딜 급진주의와 좌파 운동과의 강한 연대 아래 성장했다고 본다. 정치적 좌파가 민속적 기반을 가지는 보통 사람들의 음악이자, 저항과 시위에 어울리는 재즈를 받아들여다는 것이다. 1950년대에 놀라울 만큼 확장세를 보이며 재즈의 황금시대가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1960년대 비틀즈의 성공이 세상을 뒤덮자, 미국의 재즈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블루스라는 같은 음악적 뿌리에서 나온 로큰롤이 젊은 층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재즈는 나이든 사람의 음악처럼 되었다. 홉스봄이 보기에, 로큰롤은 재즈와 달리 결코 소수자의 음악이 아니었고, 전체 세대의 음악이었다. 점차 미국의 재즈는 회고적으로 변화해 갔다.
반면 유럽에는 적지만 안정적인 재즈팬이 생겨 방황하는 미국 재즈의 거장들을 오랜 시간 지켜냈다. 유럽의 재즈 수용사는 흥미롭다. 미국의 재즈는 대서양을 건너 지식인 계급을 위한 감상 음악이자 노동계급을 위한 혁명적인 사교춤 음악으로 자리잡는다. 홉스봄은 특히 유럽에서의 재즈가 민중에 뿌리를 내렸다는 점에 주목한다. 음악잡지 ‘멜로디 메이커’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 음악(재즈)은 연주장 1층의 1등석뿐만이 아니라 꼭대기 층 맨 뒷좌석까지도 매료시킨다. 재즈에서는 좌석 등급의 구분이 없다.”
1990년대 초 홉스봄은 암울한 재즈의 미래를 슬퍼한다. 그는 재즈가 “클래식 음악의 또 다른 종류라는, 구제받을 길 없는 음악으로 변모”하고 있지는 않은지 회의하기도 한다. 소수자의 음악 재즈의 네트워크는 이제 다 해지고 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그래도 그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끝까지 마르크스주의였던 그답게 재즈에 대해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재즈의 잠재력이 고갈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 게다가 그냥 재즈를 들으면서 재즈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헤쳐 나가도록 내버려 둔다고 한들 무엇이 잘못이겠는가?”